평범한 회사원이 겪은 감옥 생활을 기록하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이뤄졌다. 적응의 시간 따위는 고려되지 않았다.
교도관은 문서 양식을 건네며 내 신상을 적으라고 했다.
· 키 : 180cm, 몸무게 : 76kg
· 학력 : 대졸
· 출신지 : 서울
· 직업 : 무직 (前 회사원)
· 가정환경 : 중상
· 종교 : 천주교
· 문신 유무(부위 표시) : 무
이내 변기도 아닌 오묘한 기계 위에 팬티를 내리고 쭈그려 앉게 되었다. 기계에는 ‘녹화되지 않습니다’라고 쓰여있다. 교도관이 설명하지 않아도 뭔지 알 수 있었다. 구속도 상상 못 했는데, 내가 항문에 담배를 숨기는 치밀한 계획을 세웠겠나. 치욕감에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치욕과 황당함이 슬픔이나 좌절감보다 저만치 앞서나가고 있었다.
“사람 병신 되는 거 순식간이네….”
내 뒤를 이어 20대 양아치와 50대 아저씨도 차례로 기계에 올라 똑같은 자세를 취했다.
· 교도관 : “자, 아저씨들 샤워하고 가십시다. 방에서는 온수 안 나오는 거 알죠?”
구치소에서 받은 팬티와 런닝을 벗고 사무실 한 켠의 샤워장에 들어섰다. 알몸으로 씻는 모습을 교도관들이 힐끔 쳐다본다. 동물원 원숭이가 따로 없다. 의외로 물은 따뜻하게 잘 나온다.
내가 씻기 시작하자 함께 구속된 아저씨도, 양아치 꼬마도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보더니 어느덧 비누칠을 시작한다.
‘오이비누는 군대 이후로 처음이다….’
먼저 구속된 사람들이 쓰고 두고 간, 반쯤 남은 오이비누로 거품을 낸 뒤 온몸을 손으로 문질렀다. 5분여 동안의 샤워가 끝나자 교도관은 모포와 식판, 두루마리 휴지, 칫솔, 플라스틱 숟가락과 젓가락이 담긴 플라스틱 리빙박스를 건넸다.
‘모포에 왜 이리도 꼬부랑 털이 많이 붙어있는 걸까. 이 털 주인은 나갔겠지?.’
· 교도관 : “자 이거 명찰 하나씩 받으셔. 박훈민씨는 6상8, 2172. 최경원씨는 7상12, 5671이고. 거기 조준용이 너는 6상5, 4134. 이거 방에 가면 사소가 옷에 붙여줄 거니까 잃어버리지들 마시고.”
· 양아치 : “‘6상’은 뭐고 ‘사소’는 뭐예요?”
· 교도관 : “6동 상층이란 거여. 상중하 3층 중에 3층이라고. 사소는 기결수 중에 잡일 해주는 사람들 있어. 밥 배식하고 물 나눠주고. 뭐 곧 다 알게 된다.”
교도관은 나와 양아치(조준용), 그리고 아저씨(최경원)를 구치소 내부로 인솔했다. 3분 여 동안 카드키로 창살 있는 철문 3개를 열었고, 계단을 통해 3층까지 올라왔다. 80년대에 지었다더니 드라마 ‘슬기로운 깜빵생활’에서 본 것보다 시설이 훨씬 안 좋다.
· 교도관 : “자 박훈민씨랑 조준용이는 ‘6상’이니까 여기로 들어가면 되고. 최경원씨는 ‘7상’이니까 나랑 옆동으로 가십시다.”
‘띠리릭♬’ 도↗미↗솔 전자음과 함께 ‘6상’ 복도의 철창살 문이 잠겼다.
‘젠장 시작이다. 어떤 사람들과 같은 방을 쓰나. 조폭한테 처맞으려나. 자기소개는 뭐라고 해야 되나….’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