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은 언제나 생명의 무게를 가르쳤다
충북의 한 마을.
구불구불한 논길을 따라 들어가길 약 20여 분, 도착한 곳에 주택 한 채가 있었다.
겉보기엔 평범한 농가였지만, 그 안에는 누군가의 욕망과 어떤 생명의 절망이 동시에 숨 쉬고 있었다.
이곳에서 사육되던 반달곰은 1970년대 정부가 농가소득 보전 차원에서 사육을 허가한 개체였다.
도살 또한 일정 조건하에, 약재용으로만 제한적으로 허용되었고, 식용은 명백한 불법이었다.
그러나 현장에선 이미 모두 알고 있었다.
이 집은 ‘곰요리’를 먹으러 오는 단골들로 유명했고, 공무원, 지역 유지, 사업가들이 비밀리에 접대를 받는 장소로도 알려져 있었다.
우리는 일반 손님으로 가장해 음식을 주문했다.
나는 방송 진행자로 얼굴이 알려져 있어, 지인 두 명을 투입했다.
얼굴을 감춘 카메라와 녹음장비를 소지한 채, 낮은 자세로 식탁 앞에 앉았다.
잠시 뒤, 상 위에 차려진 음식이 나왔다.
곰고기 탕과 장조림, 각종 반찬, 동동주 한 사발.
가격은 한 상에 20만 원.
지방의 농가에서 먹기엔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곰은 식재료가 아닌, 누군가에겐 권력과 돈을 과시하는 수단이었다.
며칠 뒤, 그 집에서 불법 도살이 이뤄질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했다.
우리는 긴장 속에서 다시 그 집을 찾았다.
촬영 장비는 이미 분해되어 있었고, 카메라 렌즈는 틈 사이를 뚫고 돌아가기 시작했다.
녹음기는 배낭 속에서 묵묵히 모든 소리를 받아 적고 있었다.
그날, 그 반달곰 중 한 마리가 도살당했다.
쇠사슬이 흔들리는 소리, 바닥에 떨어지는 피, 그리고 그 순간의 정적.
나는 온몸이 떨리는 걸 느꼈다.
카메라 뒤에 있었지만, 그 순간 나는 PD가 아니라 한 명의 인간이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 생명을 기록하는 것이 정당한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보는 것만이 최선인가?”
자책과 분노, 책임감과 무력감 사이에서 나는 방황했다.
그리고 그날의 장면은 다시 편집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편집 도중 나는 몇 번이나 화면을 멈췄다.
곰의 눈빛이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 같았다.
화면을 꺼도, 눈을 감아도, 그 눈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방송이 나간 후, 사회는 요동쳤다.
시청자들의 항의와 탄원, 동물보호단체의 집회, 환경부의 현장 조사.
지방지 신문은 물론, 중앙 각 방송사도 일제히 후속 보도를 이어갔다.
결국 해당 사육자는 처벌을 받았다.
사람들은 칭찬했고, 언론은 “의로운 보도”라 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묻는다.
“그날 그 반달곰 한 마리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나는, 과연 이긴 것인가?”
기록은 때로 너무 늦게 온다.
그 생명은 지금 없지만, 그 눈빛은 내 기억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나는 그 눈빛에 빚을 지고 있다.
그러나 곰의 밀도살과 밀거래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더 깊은 진실을 좇아 중국 연변으로 건너갔다.
그곳의 시장과 산골 마을에서는 반달곰이 아직도 불법적으로 사육되며, 쓸개즙을 채취당하는 현실이 펼쳐지고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쓸개즙을 구매하러 오는 주요 고객이 한국인 관광객이라는 점이었다.
연변 시내에 걸려 있던 한 간판이 잊히지 않는다.
“야생동물을 통한 경제적 부의 획득”
그 문장 하나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탐욕은 국경을 넘고, 생명의 고통은 언어를 가리지 않았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단순한 고발자가 아니라,
묻고, 듣고, 증언해야 할 기록자가 되어야 했다.
그날의 눈빛은 내게 계속 말하고 있었다.
“기억하라, 그리고 다시는 외면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