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속에서 깨달은 것들,생명 앞에 멈춰 선 나의 기록
백두산. 중국에서는 장백산이라 부른다.
나는 그곳에 있었다. 무릎까지 빠지는 폭설 속, 눈앞이 보이지 않는 흑풍구 계곡의 칼바람 속에서.
중국 연변에서 기차로 4시간, 다시 지프차로 험로를 달려 도착한 이도백하. 이미 입산 금지 경고가 내려졌지만, 나는 밀렵 취재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까지 왔다. 도문, 훈춘, 서시장, 하동촌까지 10일 넘게 중국 밀렵 실태를 기록해온 나와 촬영팀은 마지막 퍼즐 조각을 백두산에서 마무리 짓고자 했다.
하지만, 백두산은 그날 우리를 멈춰 세웠다.
눈보라와 칼바람, 눈에 덮인 계곡들.
더는 나아갈 수 없었다.
‘이곳을 끝으로 철수하자’는 결정을 내릴 때, 나는 그저 촬영 실패의 좌절이 아니라 경건함을 느꼈다.
우리가 발을 들이려 했던 그곳은 수많은 생명들의 안식처였다.
백두산 일대에는 반달가슴곰, 시베리아 호랑이, 멧돼지, 노루, 고라니, 산토끼는 물론, 백두산호랑이(아무르호랑이)의 마지막 흔적도 숨 쉬고 있다.
하늘을 나는 황조롱이와 수리부엉이, 계곡 사이를 흐르는 담비와 삵, 그리고 멀리서 울음소리로 존재를 알리는 늑대들까지.
이 생명들이 눈보라 속에서 잠시 멈춘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백두산은 단순히 높은 산이 아니다.
그건 살아 숨 쉬는 거대한 성경(聖境)이다.
백두산 천지를 중심으로 뻗어 있는 주능선과 노송 군락, 천년 설화처럼 쌓인 눈꽃은 나에게 자연의 신비와 생명의 경건함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이 취재는 방송 후 큰 반향을 불러왔다.
밀렵 실태의 심각성과 생태계의 경고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이 시리즈로, 나는 환경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그러나 가장 값진 보상은 카메라에 담지 못한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야생동물을 담기 위해 들였던 노력보다,
그들을 침묵 속에 존중했던 그 결정이 나를 더 깊게 만들었다.
누군가 말했다.
“기록하는 자는 본질을 꿰뚫을 책임이 있다.”
나는 이 말의 의미를 백두산 눈보라 속에서,
흑풍구의 칼바람 속에서,
거대한 침묵의 생명 앞에서 온몸으로 배웠다.
가마우지, 황소개구리, 블루길, 붉은귀거북처럼 이미 생태계에 침입한 외래종들은 인간의 방심과 탐욕으로 인해 자연을 교란시켜왔다.
동굴을 개발하고, 하천을 막고, 숲을 깎아내는 행위는 결국 인간 자신을 옥죄는 것이다.
해외 선진국들은 국가 차원에서 야생동물 서식지 출입을 제한하고, 동굴 탐사 인원도 철저히 통제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관광지 수익 앞에 생명을 내어주고 있다.
백두산은 내게 속삭였다.
“모든 생명은 너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그러나 너는 들을 수 있다면
나는 취재를 멈춘 그날, 촬영을 접고 백두산 눈 속에 오래 서 있었다.
얼어붙은 발끝과 마른 입술 너머로, 나는 되뇌었다.
“자연을 찍지 못해 다행입니다.
당신들을 훼방 놓지 않아 미안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 기록을 시작했다.
다만, 카메라보다 먼저 내 마음이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