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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는 Feb 19. 2023

비혼주의자가 된 이유 #2

로맨스 타령하는 결혼 만능주의 사회


비혼주의 vs 비혼


21살부터 나를 ‘비혼주의자’로 정의했고, 개인적으로는 ‘비혼주의’를 기존의 ‘독신주의’와 같은 의미로 쓰고 있지만, 요즘 세상에서 ‘비혼’은 그저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를 나타낼 뿐이다.


따라서 자신을 ‘미혼’이 아닌 ‘비혼’으로 표현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중에 결혼을 한다 해도  ‘내 저럴 줄 알았지! 그전엔 비자발적 비혼이었네!’ 라며 조롱하는 시선은 잘못이다.


혼인을 통해 서류상 기혼이 되는 데 사실상 자격 제한이 없으므로*, 비혼에도 어떠한 자격이나 신념을 강요해선 안 된다. 나 또한 내 주위 비혼들을 확고한 비혼주의자로서 ‘칼을 빼 든 가부장제의 배격자’로 보기보단 그저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의 성인으로 본다.


*물론 직업, 인성, 경제력 등 결혼 시장에서 선호되는 배우자의 조건들은 있겠지만, 사실상 저게 좀 모자라다고 해서 서류상으로 등록 자체가 안 되는 건 아니니까-ㅎ



나도 남이 비혼주의자가 된 이유는 궁금해.


그러나 본인을 ‘비혼주의자’라고 명명하는 이들에겐 굉장한 동지 의식을 느낀다. 내가 비혼주의자가 되기로 한 이유들과 별개로, 저 사람이 비혼주의를 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지, 비혼주의를 통해 어떤 삶을 추구하는지에 어쩔 수 없이 호기심이 생긴다.


사실 난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 이유는 궁금하지 않다. 결혼은 매우 흔하고 역사적으로 오래된 의식이니까. 그러나 결혼을 아예 하지 않기로 결심한 비혼주의자들에겐 다양한 생각이 있기 마련이다. 그 삶을 엿보고 싶은 욕구가 드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래의 인간들처럼 선입견을 갖고 무례하게 묻진 않는다.


내가 비혼주의자로 날 소개할 때마다 겪는 선입견들이 있다.


”문는이는 예전에 남자한테 데였나 보다.“*

“문는이는 가정사가 평범하지 않은 가 봐.”

“문는이 사실 동성애자 아니야?“


*‘데이다’는 완곡한 표현으로, 여기엔 연애의 상처뿐만 아니라 성폭력 등의 부정적인 추측도 포함된다. 팍씨.


결혼 만능주의 사회 대한민국


사람들은 비혼주의의 이유를 부정적인 사실과 연관 지어 생각하곤 한다. 이는 우리 사회가 결혼 만능 주의 사회라 그렇다. 어른들은 성인들이 가진 모든 문제의 해결책으로 결혼을 권한다.


경제력이 부족하면, “하나보단 둘이 더 잘 모으지. 결혼해~” 하고, 요리나 집안일을 잘 못하면 “널 챙겨줄 배우자를 만나면 되지. 결혼해~“ 한다. 하다못해 배우자를 만나면 살도 빠지고 건강해진다. 결혼을 통해 정상 가정을 이루면 필연적으로 행복할 거라고 단정한다.


‘로맨스의 해피 엔딩은 결혼’이란 공식이 드라마, 영화 등에서 흔하게 그려진다. 나는 애초에 이 공식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어렸을 때부터 어렴풋이 느껴왔다.


낭만적 로맨스의 허점


내가 어릴 때 제일 좋아했던 디즈니 만화는 ‘인어공주’다. <인어공주 1>에서 주인공 에리얼은 인간이 되고 싶어 바다의 왕인 아버지의 반대에도 인간 세상으로 나가 생고생을 한다. 반대로 <인어공주 2>에선 에리얼의 딸이 육지 위의 삶이 아닌 바다 아래 세상을 열망한다. 그 지점에서 인어공주 에리얼 또한 중2병 사춘기 딸의 변덕을 겪는 엄마가 돼 갈등을 겪는다.


어릴 때부터 미디어에 의해 숱하게 노출 돼왔던  모든 낭만적인 로맨스의 끝엔 사실, 결혼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 지가 과제로 주어진다. 누군가는 결혼을 통해 자신을 닮은 아이를 낳아 기르는 기쁨을, 누군가는 한 가정을 오롯이 제 힘으로 지켜나가는 뿌듯함을 느낄 것이다. 그 삶 모두가 제각각 유의미하다. 그러나 로맨스의 끝 이후의 삶을 어떻게 의미 있게 만드는지는 개인 역량에 따른 것이다.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로맨스는 로맨스의 끝 이후에 제기되는 성인으로서의 가정에서의 역할과 의무, 책임감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오로지 별개의 세상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상대의 세상을 받아들여 동화되면서 설레는 과정만을 그릴뿐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이런 낭만적인 로맨스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제주라는 좁은 섬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을 얼마나 볼 수 있을지를 기대했다. 한 사람으로서 내가 가진 재능과 역량을 얼마나 이 사회에 펼쳐낼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나는 늘 세상을 좋은 쪽으로 변화시키고 싶은 ‘낭만적 이상주의자’였는데, 내 낭만주의 삶에서 연애나 결혼은 오히려 내가 바라는 변화를 해치는 쪽에 가까웠다.



생각보다 할 말이 많아서

(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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