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는 Apr 15. 2024

성대결절이 재발했다.

누구나 직업병 한, 두 개쯤은 당연히 갖고 있겠지ㅎ

말이 많아서 성대결절입니다(_ _)


음. 오늘은 목이 많이 아프군. 말을 줄여야겠다. 음? 목을 쉬었는데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네? 흠 인후통이 왔나 보다. 몸살이 심해지기 전에 항생제를 받으러 가야지!


6년째 같은 이비인후과를 다녔기에 익숙하다. 담당선생님의 부재로 다른 쌤에게 진료를 받았다. 내 기록이 차트에 잘 적혀 있는지, 내게 일을 계속하려면 발성법을 바꾸라 하신다. 담당쌤은 내게 마이크를 쓰라 했는데, 이 분은 아예 발성법을 바꾸라시네. 하하. 정말 고질병이다 싶다.


몸이 아플 때마다 과거에 쓴 글을 찾아본다. 이상하게 예전에 쓴 글을 보며 나로부터 위로를 받는다. 아래 글은 2019년 4월 6일에 썼던 글이다.




몸에 대한 사색

비록 사고로 인한 인대파열로 좋아하는 술도 못 마시고, 하고 싶은 운동도 3개월은 금지당했지만 나는 요즘 사는 게 참 재밌다. 앞으로 2주 후, 한 달 후, 세 달 후의 변화가 매우 기대된다.


티는 안 나지만 사실 내 오른 손목은 근육이 다 닳아서 정상인보다 약하다.

그래서 10분 이상 필기를 하지 못하고, 무거운 것을 드는 것은 되도록 지양한다. 날씨가 궃으면 어김없이 손목이 쑤시고, 날이 추워지면 더 약해져 그 좋아하는 요가도 여름에만 하고 겨울엔 쉰다. 통증이 심할 땐 쇠숟가락을 들지 못할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치료를 위해 아픈 근육 강화 주사도 주기적으로 맞아보고 병원도 꼬박 반년을 넘게 다녔지만 결국 불치 판정을 받고 나는 손목에 대한 욕심을 내려놔야 했다.

그때 당시 나는 신림동 고시촌에서 홀로 자취하던 수험생이었다.


미련한 자존심과 성과에 대한 욕심, 나를 믿고 계신 부모님에 대한 죄송스러움에 번번이 깁스를 하라는 의사의 말을 무시했고 결국 유효한 치료시기를 놓치고 오랜 시간을 고생해야 했다.


그렇다고 합격했나? 놉. 그것도 아니었다.


육체의 통증은 심리적 우울을 가져왔고, 나는 필사적으로 집중해야 할 시기에 번번이 흔들렸고 그래서 실패했다. 그때 나는 가진 건 쥐뿔도 없으면서도 쉽게 내려놓질 못하는 사람이었다. 바보같이 나의 큰 자산이 건강이라는 것을 미처 몰랐다.


그 후로도 몇 번 더 크게 아프고, 하고 싶은 일을 강제로 포기하는 날들을 겪으며 나는 내려놓는 법을 배웠다. 더불어 계속되는 몸의 통증을 지속적으로 무시하는 법도. 그래서 지금의 나는 몸은 만신창이지만 통증에 대해 담담하다. 하지 못하기에 육체적인 활동에 대한 갈망도 크다. 그래도 좋은 점은 있다.

유리몸을 갖고 있으니 컨디션이 좋을 때 마시는 술이 너무 맛있고, 격한 운동을 하고 난 뒤 덜 아픈 몸에 뿌듯하고, 성대가 괜찮아진 날 부르는 노래가 더 흥겹다. 비록 여행 중 맞아서 인대파열이 되고 오른쪽 다리를 쓰지 못하지만 이 정도인데 감사함을 느낀다.


잘 안 풀리는 수험생활로 힘들어하던 내게 이런 조언을 해준 선배가 있었다.


“오른손을 못 쓰면 그냥 왼손으로 써.”

당시엔 남일이라고 참 쉽게 말한다 싶어 섭섭하게 느꼈지만 그때의 조언을 이제 실천해보려 한다.


왼손과 왼다리.


나는 3개월 뒤, 새로운 운동을 배우기로 다짐했다. 천천히 조금씩 내가 독학으로 스페인어를 공부했던 것처럼 한번 시작해보려 한다.

그러니 나는 이제 최선을 다해 욕심을 내려놓고 치료에 집중할 것이다. 더 역동적인 미래를 생각하며 인내하고 행동을 조심하며 속으로 이를 갈고 있다.


때문에 요즘 너무 인생이 재밌다. 다가올 미래가 매우 기대된다. 그리고 이렇게 더 단단해지려고 노력하는 내가 참 좋다. 그래서 나는 요즘 불운 속에서도 소소한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그저 바라는 것은 제-발(!) 이 이상 더 다치지만 않는 것이다. 부디부디부디 제발 내게 행운이 깃들기를, 살짝 욕심내본다.


2019. 04. 06.



뭐든 생각대론 되지 않는 법ㅋ

첨언하자면 저 때 나의 바람과 달리, 나는 인대파열에서 회복된 후 과도한 조깅으로 허리디스크가 터져 2년간 뛰지 못하는 몸이 되었다. 한 달을 꼼짝없이 중력에 영향을 받는 몸이 되어 누워지내며 느낀 건, 몸에 대한 집착이 오히려 병을 키운다는 것이다.


영어 선생으로서 학생들에게 ‘시제‘를 가르칠 때 빵의 단면을 떠올린다. 과거, 현재, 미래 시제는 그 시간선이 빵 덩어리로 이어지지 않고 딱 빵 한 조각 잘라낸 ’단면‘으로써 파악해야 한다.


질병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진 질병이 현재-미래에 걸쳐 쭈욱 영향을 미치기보다 그저 빵 한 조각의 단면처럼 지금 존재하는 사실로만 받아들여야 한다. 병이 내 일상을 흔든다고 거기에 맞춰 쉐킷쉐킷 내 몸을 흔들다 보면 나의 멘탈까지 흔들려버린다.


지금 내가 겪는 질병에 잘 대처한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그 고통이 점점 희미해지고, 결국 회복된다는 사실을 여러 과거의 경험을 통해 내 몸으로 증명해왔다. 고질병이 나의 일상을 압도하지 않게끔, 신체적 불편으로 내 소중한 일상이 어그러지지 않게끔. 나는 아플 때마다 고통에 덤덤하려고 노력한다.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이 방법이 효과가 있다.

생강차를 마시고, 목에 손수건을 두르고, 성대 마사지를 해주며 오늘의 아픈 내 몸을 도닥인다.


최근에 좀 열심히 살았구나? 기특한 나 자신. 지금은 좀 쉬어도 돼. 비록 자본주의 사회는 아픈 몸을 혐오하지만, 나만이라도 내 자신을 아끼자.


오늘도 나만의 주문을 외며 빠른 쾌유를 바란다. (찡긋)



24. 04. 15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섬에서 태어났고 섬으로 자랐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