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특별한 기관에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영화를 보고 특강을 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원작에서 빠진 내용도 있고 구성도 조금 다르긴 했지만 난 주말 내내 이 영화를 보고 또 봤다.
늦은 밤 세 명의 도둑이 경찰의 눈을 피해 도망치다 어느 허름한 잡화점에 숨어들며 영화는 시작된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마루코엔 이라는 아동복지시설에서 함께 자란 친구 사이로 우연히 돈 많은 여사장이 마루코엔을 없애고 그 자리에 러브호텔을 짓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해하여 그 사장 집을 도둑질한 것이다.
가게에 들어가 숨어있던 중 한 통의 편지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미야 잡화점이 30년 전 편지로 상담을 해주던 곳임을 알게 된다. 놀라운 건 그 편지가 과거로부터 날아왔다는 사실. 처음엔 장난으로 받아들였으나 과거로부터 온 편지에 두려움과 무서움을 느껴 다시 도망치다 때마침 지나가던 전차속에서 시간과 공간이 뒤바뀜을 느낀다. 나미야 잡화점으로 다시 돌아온 아츠야, 쇼타, 고헤이는 이곳이 (폐업했지만) 오래전시간을 초월해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곳임을 알고 조금씩 사연에 빠져든다.
편지를 다시 집어든다. 마츠오카 가츠로. 생선가게 뮤지션이 이야기다.
대학 졸업 후 가업(생선가게)을 물려받아야 하지만 중퇴하고 도쿄에서 3년째 음악을 하고 있다. 취미생과 원석의 사이에서 고민하다 나미야 잡화점에 편지를 보낸 것이다. 당연히 가업을 물려받아야 한다는 첫 번째 답장에 마츠오카는 다시 편지를 써 우체통에 넣는다. 자작곡 REBORN(재생)을 하모니카로 연주하며. 어떻게든 내 가능성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버지도 병원에서 힘을 주는 말을 남긴다.
"생선가게는 내 대에서 끝이다. 패배하더라도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네 발자국이라도 남기고 와"
그 말에 다시 도쿄로 돌아가는 마츠오카에게 세 명의 세 번째 답장이 전해진다. 그건
'당신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음악을 계속하는 건 결코 헛된 일이 아닙니다'라고 상대방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글이었다.
8년 후, 마츠오카는 마루코엔의 연말 행사에서 자작곡을 연주했고 옆에서 세리 라는 아이가 듣고 있었다. 갑작스런 전기고장으로 전차가 다닐 수 없게 되자 하룻밤 마루코엔에 묵게 된 마츠오카. 그날 밤 큰 화재로 세리의 동생 다츠도시의 목숨을 구하고 마츠오카는 결국 죽는다.
세월이 흘러 가수가 된 다츠도시의 누나 세리가 마츠오카를 생각하며 그 곡에 가사를 붙여 만든 노래가 유명해졌다. REBORN(재생)이라는 제목으로.
" 삶이 무엇인지 가르쳐준 당신을 잊지 않아요. 당신은 항상 내 곁에 있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으로 마음을 떨리게 만들어요. 당신을 대신해서 노래해요. 목소리가 나올 때까지"
"슬퍼하지 말아요. 고개 숙이지 말아요. 뒤돌아보지 말아요. 두려워하지 말아요. 멈추지 말아요. 포기하지 말아요" 자막으로 흘러나오는 노래 가사가 한 줄 한 줄 마음에 와서 자리잡는다.
1980년 생선가게 뮤지션에게서 만들어진 곡을세리의 음성으로 2012년 나미야 잡화점에서 휴대폰으로 듣고 있던 세 명은 과거는 현재로 이어지며 또한 미래로 흘러가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서 온 편지를 읽고 답장을 쓰면서 그들의 삶에 간접적으로 참여하게 되고 자신들의 과거와 마주하며 삶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각자의 삶에 대한 관점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조금 더 깊숙이 상담자들의 사연에 답장을 쓰며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등장인물 모두 상처받고 슬픈 사람들이 나오는데 각자의 상처를 극복하면서 같은 상처를 치유받는다. 이 사람들은 편지를 보내면서도 듣고 싶은 말을 정해 놓는다. 답정너 같은 느낌이다. 답을 구하는 게 아닌 내가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 주고 마음을 알아달라는 것. 거기에 따뜻한 말 한마디를 해달라는 것이었을 것이다. 이렇듯 우체통에 넣어진 각자의 사연은 시간을 초월해 마루코엔과 관련 있는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고 주고받는 편지를 통해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따뜻한 기적이 일어난다.
'좌절하지 말고 포기하지 마세요. 당신의 미래는 아직 백지입니다. 모든 게 당신에게 달렸습니다. 모든 것이 자유롭고 어떤 것도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멋진 상담 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마지막 답장이 나오는 장면을 몇 번이나 돌려봤다.
위안과 공감의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상대방의 행복을 바라는 나미야 유지, 그리고 30년 후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겠으나) 하룻밤 같은 장소에서 고민 상담을 이어가게 된 세 명이 만들어낸 잔잔한 기적이 우리의 삶에서도 오래 지속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