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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 시 작 Nov 28. 2024

버스 잘못 내려 가게 된 벳푸
'다케가와라 온천'

- 여행이란 이런 건가 보다. 소박한 후쿠오카 여행 -

차곡차곡 여행


경험하지 않은 일 하기 제 2 탄이다.

해외여행을 그리 많이 다닌 건 아니지만 그나마 자주 간 곳이라 하면 일본이다. 아이 데리고 가기에 가깝기도 하고 아무래도 하는 일과 관련이 있어서다. 갈 때마다 남편과 아이는 온천과 놀이공원을 가고 싶어 했다.  그럴 때마다 난 "그런덴 가는 거 아냐. 보는 거야."로 일축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때도 말했지만) 고도근시라 앞이 잘 안 보이는 게 불편하고 뜨거운 물에 들어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들은 피로가 풀린다는데 난 되레 쌓이는 느낌이다. 

그럼 놀이동산은? 놀이기구를 무서워한다. 고2 때 청량열차와 거북선(그때 당시 놀이기구들 이름이다)을 연이어 탔다가 머리가 뱅뱅 돌아 고생한 적이 있어서다. 어릴 때 딸아이도 놀이기구 타는 걸 무서워하기에 나와 비슷하겠지 싶어 그냥 밀어붙였다. 다른 나라에서 아프면 힘들다는 이유로. 

이젠 친구들과 가더라. "하나도 안 아프고 재미있던데" 하면서 말이다.




며칠 전 잠깐 후쿠오카에 갔었다. 

세 명이긴 하나 구성원이 바뀌었다. 언니와 올케언니로. 예전부터 일본 온천 구경 가자는 걸 아이 학업 끝나고 가자고 미뤄댔다. 근데 재수까지 끝나고 벌써 2학년이 됐으니 더 이상은 명분이 없었다 ㅎㅎ.


오후 2시 공항에 도착했다.

인천에서 후쿠오카까지 1시간 20분. 집에서 공항까지 가는데 1시간 40분이나 걸렸구만. 늘 느끼는 거지만 참 가까운 나라다. 1990년 처음 가 본 일본이라는 나라는 미지의 세계 그 자체였다. 울퉁불퉁하지 않은 매끈한 도로, 깨끗한 거리, 친절한 사람들을 보며 감탄했었다. 근데 그네들과 같이 일하며 알게 되었다.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걸. 


입국심사 전 잠시 추억에 젖다 습기를 머금은 축축한 공기와 여기저기서 들리는 한국어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호텔까지 가는 방법도 알아야 하고 벳푸에 가는 교통편도 예약해야 하기에 잠시 언니들을 대기하게 했다. 

공항직원 왈 호텔까지 멀진 않지만 셔틀버스로 국내선으로 이동해서 지하철을 타고 텐진역으로 가란다. 택시로는 요금이 꽤 나올 테니 이 방법이 가장 좋을 거라고. 하지만 결국 택시로 호텔까지 갔다. 오르락내리락 이 힘들다는 언니들 덕분에. 난 택시 안에서 표를 한 장씩 나눠주었다. 벳푸 기타하마 라고 쓰여 있는 고속버스 티켓이었다. 

이렇게 세 아줌마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다음날 아침 언니들의 표정이 무진장 밝았다. TV에서만 보던 가마도 지옥온천 같은 데 간다고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온천을 좋아하진 않지만 나 역시 벳푸는 처음이라 기대감에 마음이 설렜다. 여기까진 좋았다.


고속버스를 타고 2시간을 넘게 달렸다. 종점 전전 정류장에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가마도 지옥온천이나 효탄온천에 가실 분은 여기서 내리시라고. 분명 안내소직원은 종점에서 내리다 했는데... 직원의 말에 내 감을 얹어 그냥 끝까지 갔다. 벳푸 기타하마~ 드디어 도착. 근데 버스 안에 남은 이도 내린 이도 우리 셋뿐이었다. 


아뿔싸. 길치인 내 감을 믿는 게 아니었는데... 내려서 물어보니 유명한 온천들은 전전 정류장에 있는 게 맞단다. 순간 아줌마 셋이 빠르게 머리를 맞댔다. 다시 거슬러가기엔 30분 이상 걸리고 하니 조용한 이 시골동네에서 온천을 찾아보기로 말이다. 물어물어 찾아간 작은 마을 안내소에서 우린 뜻밖의 행운을 만났다. 그 동네에 100년 된 온천이 있다는 거다. 이름은 '다케가와라온천'. 

고즈넉한 동네에 덩그러니 탕 하나 놓여있는 백 년 된 온천에서 우린 피로를 풀었다. 동네주민들만 가는 곳이라 그런지 사람도 거의 없었다. 하긴 평일 대낮에 올 사람도 많진 않겠지. 역사가 느껴지는 오래된 나무바닥, 몇 대째 이어 내려옴직한 주인장의 모습, 대정 12년(1924년)이라 쓰여 있는 낡은 신문 등을 보며 우리만의 여행을 만들었다. 570엔(약 5700원. 입장료 300엔, 수건 100엔, 우유 170엔)으로 처음 즐겨 본 일본 온천여행. 은근 괜찮은데~


호텔조식을 신청하지 않았기에 우린 매일아침 때꺼리를 찾으러 다녔다. 어제는 편의점에서 먹고 3일째 아침은 '스키야'라는 덮밥집에 들어갔다. 동네에 있는 작은 집이다 보니 자리도 비좁고 주인장 사투리가 심해 처음엔 좀 알아듣기 힘들었으나 그 지방 본연의 맛을 즐기기엔 제격이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걷다 '게고신사'라는 작은 신사에도 잠시 들러보고 골목 사이사이에 있는 가게들도 구경했다. 일본의 아기자기한 소품을 구경하기엔 대형백화점이나 쇼핑센터보단 작은 가게들이 훨씬 좋았다. 오후부터 비가 꽤 내려 다행히 온도가 내려간 듯했다. 일본도 이상기온인 건 마찬가지였다. 맑으면 맑은 대로 비가 내리면 내리는 대로 있는 그대로의 후쿠오카를 느낄 수 있었다.


비도 오고 멀리 가기도 귀찮고 해서 걷다가 '젠'이라는 제면소에 들어갔다. 들어가서 보니 이 집 역시 자루소바로 유명한 전통 있는 집이었다. 자루소바 300엔(약 3000원), 새우튀김을 곁들인 세트 550엔(약 5500원). 맛에 감탄하고 가격에 미소 지은 저녁식사였다. 이만 살짝 닿아도 뚝뚝 끊기는 부드럽고 투박한 소바면 덕분에 우린 다음 여행까지 약속했다. 




여행 떠나기 전 블로그며 인스타를 검색하며 맛집도 갈 곳도 찾아놨는데 가지 않았다. (길을 잘 몰라 못 간 것일 수도 있다) 대신 어쩌다 들어간 동네 덮밥집, 버스를 잘못 내려 우연히 가게 된 오래된 온천, 비가 와서 충동적으로(?) 들어간 소바집 둥에서 소박한 현지체험을 하고 왔다. 


시간이 지나면 그곳의 이름과 위치 그리고 가격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지겠지. 하지만 언니들과 함께 한 여행의 추억은 마음속에 남을 것 같다. 아주 오래오래~


* 오늘의 단어는 

온천 おんせん(오ㄴ세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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