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4 회 서울레코드페어에 다녀왔다 -
차곡차곡 일상
일요일 낮 펍지성수라는 곳에 다녀왔다.
며칠 전 노래를 듣다 '서울레코드페어'가 10월 말 성수에서 열림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이게 뭔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음반이 주인공인 국내 최초의 음악 축제란다. 턴테이블 위 바늘의 탁탁 튀는 소리와 가수의 목소리가 어우러진 음반들의 향연이랄까. 2011년에 시작되어 올해로 14번째를 맞이한 행사이다. 한정반이나 최초공개반을 전시. 판매하고 중고나 희귀 음반 등 다양한 콘텐츠도 공개하며 음악 팬들과 창작자들이 소통할 수 있는 장(場)인 것이다.
사실 난 음악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 들으면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는 정도로 주위에서 노래 제목을 물으면 막상 제대로 말을 못 한다. 팝, 클래식, 재즈 어느 것을 들어도 마찬가지다. 어디서 어느 영화에서 들은 것 같은데 제목을 모를 때의 답답함이란... 그래서 요즘은 (몇 곡 안 되지만) 내가 알고 있는 클래식과 제목을 매치시켜 기억하려 노력(?)하고 있다. 15곡이 수록된 어느 유튜버의 힐링 클래식을 들으며 제목을 중얼거리며 외운다.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뮤지크..' 뭐 이리 읽는 것도 어려운지. 설거지하다 말고 또박또박 발음해 보고 다시 돌려 듣고 하기를 반복한다. 시험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라고.
암튼 이런 '나'이지만 이 가수의 노래만큼은 제목도 가사도 기가 막히게 외운다.
바로 나의 매거진에도 자리 잡은 이승윤가수다. 사실 '서울레코드페어'를 알게 된 것도 이 가수의 노래를 듣다 잠시 홍보영상을 봤기 때문이다. 3집 앨범 '역성'의 LP판을 판매한다기에 솔깃해서 봤으나 이건 사전예약을 받은 모양이다. 아쉽지만 할 수 없지. 펍지성수는 따로 예약할 필요 없고 다른 굿즈도 있겠지 싶어 일단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다행히 시험 끝난 딸아이가 동행해 준단다. 같이 수다 떨 친구가 있어 든든했다.
기대감에 가슴이 벅차오른 그날이 일요일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마른 운동장에 인 흙먼지를 가라앉히려는 듯 차분하게 부슬부슬.
사전예약자가 아니면 12시부터 입장 가능했다. 일찍 도착한 덕분에 잠시 커피를 마시고 와도 늦지 않을 시간이었으나 현장감을 맛보고 싶어 비를 맞으며 서 있었다. 30분 후, 드디어 입장. 곧장 1층의 20번 부스로 향했다. '끝을 거슬러'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우리가 지을 찰나들이 가질 주인공은 너너너 너너너~
널 데리러 널 데리러 다시 돌아가 난 다시 돌아가~
널 그리러 널 그리러 그리로 돌아가 그리로 돌아가~
수백 번의 끝을 거슬러~"
나의 독백에 옆사람의 흥얼거림이 더해져 묘한 기운이 흘러나왔고 그건 나에게 '용기'라는 것을 내게 했다.
"작년 콘서트 때도 뵀고, 팝업스토어에서도 뵀었어요. 이승윤가수 팬이시죠? 반가워요^^"
"어머 어떻게 아셨어요! 반가워요. 12월 콘서트에도 오실 거죠? 블루스퀘어에서 또 뵈어요."
스쳐 지나가는 이와의 내적 친밀감이 한껏 솟은 순간이었다.
한 사람의 가수를 노래를 좋아하고 그 감흥을 누군가와 공유한다는 건 잔잔한 일상에 긍정적인 심박수를 높이는 가슴 설레는 일이다.
몇 바퀴를 돌다 딸아이는 그토록 갖고 싶어 하던 존메이어 가수(의 음반)를 조우했다. 집에 올 때까지 그 음반을 가슴에 품고 있더라. 우리 집엔 턴테이블이 없는데 이 친구는 가끔 음반을 산다. 언젠가 자기 집에 장비를 갖춰놓고 음악을 들을 거라며 그때 나더러 놀러 오란다.
상자마다 빼곡히 꽂혀 있는 음반들이 즐비했다. 음반을 싼 비닐 위로 빗방울이 흘러내렸지만 '시인과 촌장'도 '스콜피온스'도 '마츠다세코'도 젖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나는 나이를 먹었으나 그들은 팬들을 위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봤던 모습 그대로 있어줘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이승윤가수 역시 시간이 흐를수록 수백 번의 끝을 거슬러 가는 그런 가수로 남아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먼 훗날 한 할머니가 턴테이블에서 탁탁 튀는 바늘소리와 함께 '끝을 거슬러'와 '역성'을 따라 부르는 그날까지.
"LP판을 내고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 체스판 위에서 살고 있지만 그래도 체스판에서 벗어나 보기도 하자. 역성이 태동하려면 사소한 이야기들이 필요하다." 토크쇼에서 이야기한 그의 말이 며칠이 지난 지금도 가슴에 와닿는다.
그래, 때로는 체스판 위의 때로는 체스판을 벗어난 우리들의 사소한 이야기를 모아 각자의 서사를 만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