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뜨거운 여름이지만, 입추가 지나고 나니 낮이 제법 짧아졌다. 출근하는 시간은 늘 동일하여도 완연한 아침이 아닌 새벽이 되어 가는 중이다. 아침이 늦어지니 조금 늦게 눈을 뜰 법도 한데, 아이들은 곁에서 엄마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다 싶으면 화들짝 일어나 엄마를 찾아 와락 안겨온다.
새로운 곳에서 일을 시작한 지 두어 달 남짓, 적응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급한 일정의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줄줄이 야근을 소시지처럼 늘어뜨리는 하루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주에는 새벽까지 일을 했었더라지. 일의 상황은 이해되지만 그것은 엄마 일터의 입장일 뿐, 아이들에게 이 상황이 이해될 리 없다. 아침에 10분 남짓 겨우 엄마와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저들에게는 엄마 없는 하루가 주어진다.
한편, 회사에서는 일정은 빠듯한 데 가는 길이 꽤나 험난하다. 맨땅에 헤딩하듯 작은 돌부리 정도는 투박한 손으로 파바박 옮길 수 있는데 엊그제, 보이던 길 사이에 균열이 생기더니 급기야 땅이 갈라져 절벽이 되어 버렸다. 으쌰으쌰 모두가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데, 급 정거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기로에 섰다. 다리를 만들어 건너갈 것인가, 멈추고 돌아설 것인가. 의도치 않은 시간의 공백이 생겼다. 큰 갈림길인 만큼 쉬이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며칠 만에 '덜 늦게' 들어갔다. '다녀왔습니다!' 외치며 들어가니 아이들이 신이 나서 반겨준다 '안녕히 다녀왔어요(3돌 B)' '엄마 다녀오셨습니다(4돌 J)' 귀여운 녀석들. 덜 늦게 퇴근해도 자기 전까지 1시간 남짓, 아침 10분, 저녁 1시간이 겨우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다.
다음날 아침, 지난밤 비가 와서인지 꽤나 새벽 같다. 어둑해서인지 아이들의 기상이 늦다. 조용히 현관문을 나서려는데, J가 황급히 일어나 헐레벌떡 나와 안긴다. 그리고 간절히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오늘은 꼭 일찍 와야 해. 회사 가서 잊어먹지 말고 일찍 와야 해! 늦지 말고 어제처럼 해 자기 전에 와야 해. 잘 때 엄마랑 같이 들어가고 싶어'
눈물 글썽이며 간절하게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하는 아이가 짠하다. 꼭 안아주며 그러겠노라 하고 문을 나섰다. '어제처럼'이라는 단어에 괜히 마음이 더 짠하다. 어린이집 하원시간도 아니고, 같이 저녁을 먹자는 것도 아니고, 자기 전에만 오라는 말을 저렇게 표현하는 걸 보니, 제 딴에도 본능적으로 엄청 양보해서 저 단어를 뱉은 거다. 매일아침 출근할 때마다 일찍 오라는 아이의 말은 같은데, 한 단어에서 풍기는 짠한 마음이 꽤나 묵직하게 다가왔다.
나는 일을 좋아한다. 집중해서 일하는 내 모습을 좋아한다고 보는것이 조금 더 가깝다. 한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 이곳에 오기 전, 쉬는 몇 달 동안 일 할 곳이 없는 상태를 견디는 것이 쉽지 않았다. 사회의 경제활동에 단돈 만원이라도 보탬이 되는 쓰임새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일이 많고 바빠도 (아직까지는) 즐거이 일하고 있다. 더욱이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일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사람들이다. 상황이 힘들어도 결국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 팀이 있기에 서로 의지하며 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오늘은 말 그대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하루'였다. 어떤 길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해야 할 일이 달라지겠지만, 일단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그것만으로도 벅찬 시간이었다. 너덜너덜한 하루의 끝자락에서 팀장님이 조심스럽게 제안하셨다. '오늘 시간 되는 사람 번개 하자. 소주 한잔 해야겠다.'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전화드리겠다고 하고 일단 마무리해야 할 일을 마치겠노라 했다. 했는데, 아침에 눈물 글썽이며 나에게 갈급히 외치던 아이 얼굴이 떠올랐다. '엄마, 나 자기 전까지 와야 해! 늦지 말고 꼭!'
입사하면서 저녁 회식은 참여하지 않는 MZ 스러운 당당한 직원이 되겠노라 다짐했지만, 오늘 같은 날은 가야 했다. 사실 가고 싶었다. 맛있는 것도 먹고, 회포도 풀고, 살짝 풀어진 분위기에서 마음도 나누며, '지랄 같지만 으쌰으쌰 해보자.' 서로 다독이는 시간이 절실하게 필요한 타이밍이었다. 공과사를 칼같이 구분한다 해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30분만 있다 나와야지' 하며 동료와 걸어가다 무심결에 꺼낸 아이 이야기에 결국 방향을 돌려 지하철로 향했다.
나는 엄마다. 아이의 큰 우주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오늘은 엄마로서의 자아가 직장인으로서의 자아보다 위에 섰다. 동료도 중요하지만, 아이와의 약속보다 우위에 설 수 없다. 단순하게 '아이냐 동료냐'의 질문을 가정은 생각해 볼 가치조차 없다. 그러니 나는 회식에 못 간 것이 아니라 안 간 것이다. 내 아이와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그럼에도 마음이 무겁다.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자아와 엄마로서의 자아가 양 옆에서 나를 아련하게 바라본다. 오롯한 내 시선을 앗아가기 위해 바동댄다. 그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느낌이 든다. 공생할 방법은 진정 없는 걸까. 내 욕심인 걸까.
'다녀왔습니다!'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마냥 해맑다. 잠시 반기는 듯하더니, 이내 신경도 쓰지 않고 저들 놀이에 푹 빠진다. 그러다 엄마를 졸라 냉장고에 우유 하나를 얻어내고선 물 대신 쫍쫍 빨아먹는 아이를 보니 마냥 이쁘다. 고슴도치가 되어 아가를 감상하다 보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도 같다. 자아고 뭐고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 그저 예쁜 아이와 있을 때는 저들의 귀여움에 흠뻑 취하고, 일을 하고 있을 때는 있는 힘껏 최선을 다 하고, 그거면 되지 않을까. 아니, 공생이고 나발이고 사실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인 걸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