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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서 May 30. 2022

이상형이 '예쁜 여자'라고 했을 때 그녀의 반응

나와 다른 관점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가끔 서로의 이상형을 물을 때가 있다. 이 질문을 받게 되면 순간 망설이게 된다. 왜냐하면 내 이상형이나 내가 사람을 볼 때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이 다 있지만 굳이 내 취향을 밝히는 것에 대한 머뭇거림임과 동시에 내 이상형을 얘기했을 때 상대방의 반응이 어떨지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은 가장 공식적이고 모호하면서도 대부분은 공감하는 대답을 한다.



느낌이 오는 사람이죠.

'느낌이 오는 사람.' 이 얼마나 모호하고 정답 없는 대답인가. 그렇다면 느낌이 오려면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없어도 가능하다는 것인가. 사실 그렇지 않다. 분명 이 느낌이라는 것은 내가 평소에 선호하는 부분을 상대방에게서 발견함으로써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부분'에 대해 시시콜콜 말하고 싶지 않아 그냥 에둘러 '느낌'이라는 포괄적인 그물에 다 담아버린다.




"오서 씨는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오래전에 살짝 친해진 여자분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난 느낌이라는 그물에 에두르지 않고 필터링 없이 내 생각을 답했다.


"예쁜 여자요."

이 대답을 듣자 그 여자분은 날 '뭐 이런 천박한 놈이 다 있지?'라는 정색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다니 말했다.


"아니, 오서 씨. 어떻게 사람을 얼굴만 보고 판단해요? 그건 아니죠."

그녀는 마치 정답을 정해놓고 내가 그 정답을 맞히지 못했다는 듯이 한심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난 그런 그녀의 반응에 당황했지만 나 역시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그녀 씨는 이상형이 뭔데요?"

그러자 그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 교훈을 준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마치 어린아이를 지도하는 사람처럼.


"당연히 성격이죠. 전 성격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오서 씨, 사람은 외모가 다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앞으로 성격을 보세요."

난 그녀의 반응과 가르침에 결코 공감할 수 없었다. 성격을 보라고? 그럼 당신은 정말 상대방의 성격만 좋으면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인가? 난 그녀에게 못마땅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럼 그녀 씨는 상대방이 성격만 좋으면 다른 건 아무것도 안 본다는 건가요? 성격만 좋고 잘 맞으면 상대방의 경제력, 학력, 가정환경, 집안 배경 이런 건 따지지 않는 정말 마음만 보는 사람이라는 거죠? 성격만 좋으면 직업이나 능력이 없어도 되고 학력도 낮아도 되고 다른 조건들도 어떻든 상관없다는 거네요?"


"에이, 그런 뜻이 아니죠. 다른 걸 아예 안 본다는 게 아니라 성격이 외모보다 중요하다는 거죠. 제 얘기를 이해 못 하신 거 같네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건 좋지 않다는 얘기예요."


"결론적으로 그녀 씨는 성격이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 배운 사람이면서 직업은 있어야 하고 능력도 갖춰져야 한다는 얘기잖아요? 그럼 저보다 그녀 씨가 더 속물스러운 거 아닌가요? 전 상대방의 외모만 보는데 그녀 씨는 상대방의 많은 걸 따지고 계산하는 거잖아요? 차라리 눈으로 보이는 그 모습만 보고 좋아하는 제가 더 순수한 거 아니에요?"

그녀는 내 반박을 듣고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그리고 난 차분히 그녀에게 얘기했다.


"그녀 씨, 사람이 사람을 보는 관점은 다 다른 거지 나쁘고 좋은 건 없다고 생각해요. 예뻐서, 잘 생겨서, 키가 커서 좋을 수도 있고 그녀 씨 말대로 성격이 잘 맞아서도 그럴 수 있죠. 또 직업이 좋고 돈을 잘 벌어서 좋아할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왜 사람들은 상대방의 외모나 돈을 보고 좋아하면 비난하는지 모르겠어요. 그건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의 관점이고 가치관인데 말이죠.


그러자 그녀는 그래도 자신의 논리가 맞다고 우기고 싶었는지 나에게 훈계를 이어갔다. 난 더 이상 이 논리에 맞지도 않는 훈계를 듣고 싶지 않아 그녀에게 일침을 날렸다.


"제 대답에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가 그녀 씨 스스로가 외모에 자신 없어서... 는 아니죠? 보통 제가 이상형이 예쁜 여자라고 하면 딱 두 가지 반응이 있어요. 첫 번째는 '역시, 남자는 다 그렇지.'라는 식으로 인정하고 넘어가는 반응이고 두 번째는 지금 그녀 씨처럼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정색하는 반응이거든요. 보통 자신의 외모에 자신이 있으면 전자와 같은 반응을 하는데 아니면 후자처럼 나오더라고요."

이 얘기를 듣자 그녀는 뚜껑을 열어젖히고 나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며 쏘아붙였다.


"그러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관점이 다른 거니까 날 비난하지 말아 달라고요. 그녀 씨는 성격을 보세요. 난 외모를 볼 테니까. 나와 다른 생각을 한다고 그 사람을 비난하면 못. 써. 요."






그 누구도 상대방의 외모를 좇는 사람을 비난할 자격은 없다. 외모뿐만 아니라 내가 상대방의 어떤 면이 좋아하든 비난할 자격은 없다. 왜 직업이나 능력을 따지는 관점은 당연한 것이고 외모나 돈을 따지는 것은 천박한 관점이란 말인가. 직업이나 능력을 따지는 것도 종착지는 결국 돈 아닌가.


우린 이상형에 대해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누군가가 소개팅을 시켜준다고 했을 때 정말 묻고 싶은 것이 '예쁘냐', '잘 생겼냐', '키는 크냐', '돈은 잘 버냐', '집은 좀 사냐.'가 어쩌면 당연하지만 주선자에게 나 자신이 속물처럼 보일까 봐 쉽게 묻지 못하고 소개팅에서 또 시간 낭비만 하고 온다. 특히 친구가 아닌 나보다 어른이 주선자라면 더더욱 그렇다.


당연히 처음엔 외모에 끌려, 재력에 끌려, 키에 끌려 호감을 가졌지만 나중에 성격 차이가 많이 나는 관계로 헤어질 수는 있다. 그렇다고 성격도 안 보고 그 사람을 선택했다고 비난할 수 있느냐? 그렇지 않다. 성격을 파악하려면 그 사람과의 시간이 필요하다. 몇 년을 같이 산 가족도 성격이 안 맞을 때가 있는데 남녀는 오죽하겠나. 성격은 함께한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야 파악이 되고 파악이 되고도 안 맞는 부분이 생겨 서로 맞춰가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 내 이상형인 사람은 성격이 좋은 사람일 확률보다는 얼굴이 좋고, 몸매가 좋고, 능력이 좋고, 키가 크고 재력이 좋은 사람이 이상형이지만 성격도 잘 맞아야 오래 만날 수 있다는 논리가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


이제, 누군가가 이상형을 묻는다면 내 이상형에 대해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도록 하자. 그것이 외모든 재력이든 뭐가 됐든. 이상형은 이상형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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