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결의 반칙- 두번째 반칙
2) 소수의 가치관에 대한 다수의 반칙
최근 발견한 사례 중 하나가 개를 무서워하면 이해 못 하는 사람이 다수이지만 뱀을 무서워하면 당연한 것처럼 이해를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뱀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반려동물로 키우기도 하는데 다수는 이런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건 어떤 동물을 무서워하는가의 문제가 아닌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소수이고 뱀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다수이기 때문이다. 다수가 좋아하는 걸 싫어하거나 다수가 싫어하는 걸 좋아하면 그 사람은 '괴짜'가 되어 버린다.
'내리실 역은 삼랑진역입니다' 소설을 통해 난 이런 소수가 겪는 다수결의 반칙에서 오는 상처와 치유를 얘기하고자 했다. 존중받지 못한 사람들을 등장인물화하여 그 인물들을 통해 어필하려고 노력했다. 이 소설이 조금이나마 다수결의 반칙을 줄여줄 수 있길 바라는 게 작가로서의 희망 사항이자 작은 바람이다.
앞서 1편에서 얘기한 것처럼 여러 조직에서 다수결의 반칙은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서글픈 사실은 이 다수결의 반칙이 조직에서뿐만 아니라 개인들 간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수에 속하는 범주는 '일반적'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일반적이지 않은 범주는 '비일반'으로 분류되고 그 비일반 속에는 '특이'와 '특별'이 속해있다. 여기서 '특별'로 분류가 되면 다행이지만 '일반적으로' 대부분 '특이'가 되어 괴짜화시키는 것이 다수결의 반칙 중 하나이다.
비혼주의. 예전에는 독신주의라 칭했으나 혼자 있고 싶은 게 아니라 '결혼'이라는 제도만 따르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비혼주의라는 단어도 함께 생겨났다. 결혼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이 있기에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다수는 이런 사람을 '특이'한 사람으로 치부하고는 한다. 요즘은 그래도 비혼주의자의 수가 늘면서 서로 이해하는 분위기가 예전보다는 많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비혼주의자들은 '결혼해라.'라는 잔소리를 지겹게 듣고 산다. 그래서 명절이 싫어지는 게 비혼주의자들이기도 하니까.
결혼을 하고 사는 사람의 수가 비혼의 그것보다 월등히 많다.
'다 결혼하고 너만 남았어.'
'우리 다 결혼하면 너 뭐 할래?'
'너 결혼하는 거 봐야 내가 눈을 감지.'
결혼을 한 사람들이 비혼주의자에게 건네는 레퍼토리는 마치 서로 짠 것처럼 같거나 비슷하다.
나만 남든 말든? 니들 결혼하면 나 할 거 없을까 봐? 내가 결혼하면 부모님 불로장생? 그래. 부모님은 나를 걱정한다고 치자. 그런데 나만 남는 게, 내가 할 거 없을까 봐 진짜 걱정해서 하는 말인지 의문과 의심이 생긴다. 예식 비용을 당신들이 내줄 것도 아닌데, 언제부터 날 그리 걱정했다고, 니들 사는 거 보면 더 하기 싫어지는데 왜 자꾸 기혼자들은 비혼주의자들의 가치관을 흠집 내는 것일까.
비혼주의자들이 결혼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에 대해 명확하게 얘기를 해도 다수의 기혼자들은 가치관을 왜곡하기 시작한다.
'콧대 높을 때 알아봤다. 이제 네 나이면 똥차인데 데려갈 사람이 없겠지.'
'혹시 어디 하자 있는 거 아냐? 그러니까 아직 결혼을 못 했지.'
'결혼할 돈이 없던지, 남자가 없던지.'
자신의 가치관에 따른 결정이고, 스스로가 살아갈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계획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비혼주의자들은 '특이'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눈초리와 비아냥 즉, 다수결의 반칙을 견뎌야 한다. 결혼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겠다는 건데도 다수의 기혼자들은 비혼주의자들의 가치관을 코 푼 휴지처럼 휴지통에 넣어버리고 이해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이런 반칙은 '딩크족'에게도 일어난다. 부부의 합의와 계획에 따라 아이를 가지지 않겠다는 딩크족은 비혼주의자만큼 가치관을 무시당하며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시부모님은 마주칠 때마다 '너희 무슨 소식 없니? 난 딴 거 안 바란다. 그저...'라며 우체부도 아닌 그들에게 자꾸 무슨 소식을 묻는다.
딩크족이라 둘만 잘 살려고 애를 안 가진다고 하면 '안 낳는 게 아니라 안 생기는 거 아냐?'라며 둘 중 한 명을 불임 환자로 만든다.
이상하게 처음 보는 사람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는 듯 '애는 몇 살이에요?'라고 묻고 '없다.'라고 답하면 분위기가 더 이상해진다.
예전에는 다양한 대화가 가능했던 친구들이 애 얘기만 해 할 얘기가 없는 건 그나마 참는데 '넌 애가 없으니까 몰라. 네가 부럽다.'며 마치 애가 없으면 세상 물정 모르고 자신은 어른인 것처럼 비아냥 거리는 건 참을 수가 없다. 마지막에 부럽다며 훈훈한 마무리로 치장하지만 이미 뚜껑은 열렸다.
요즘같이 인구 감소가 심각하다며 국가에서조차 난리를 부릴 때면 딩크족의 스트레스는 더욱 심해진다.
'애국 좀 해라.'
'너 같은 사람들 때문에 인구가 줄잖아.'
언제부터 그렇게 애국자였는지 모르겠지만 농담으로 하는 이런 말들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애국? 베이비부머 시대엔 제발 그만 낳으라며 '아들딸 구별 말고 하나 낳아 잘 기르자'라고 그렇게 캠페인을 해 대더니 이제 모자라니까 제발 낳으라고 하는 국가를 왜 위해야 하는지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대체 누구를 위해 싸워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군인처럼, 대체 누구를 위해 애를 낳아야 하는지 모를 것 같은 게 딩크족의 심정이다.
애를 낳으라고 종용하는 사람은 양육비를 내주겠다고 하던지, 자신이 키워주겠다고 하던지, 적어도 자신이 일정 부분을 책임질 각오가 아니면 그들의 가치관을 존중하라고 전하고 싶다.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을 거라면, 남의 인생과 계획에 조금도 끼어들지 않아야 한다. 나와 인생의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존중하지 못한다면 당신도 언젠가 존중받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성소수자. 성소수자는 이미 '소수'라는 게 명칭부터 박혀있다. 난 성소수자도 아니고 그들을 추종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비난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한다. 난 성소수자가 아닌 성다수자이지만 다수결의 반칙은 범하고 싶지 않다. 성다수자들에겐 성소수자가 '특이'한 사람들로 보이겠지만 이것 역시 그들의 선택이고 가치관이다.
성소수자가 요즘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고 우리 주변에 분명히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들은 이상하게 보일 수 있는 '소수'이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관을 꽁꽁 숨겨왔을 뿐이다. 세상이 많이 바뀌어 요즘은 커밍아웃이 많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숨어있는 성소수자는 많다고 한다.
나도 동성이 나를 좋아한다고 표현한다면 정말 감당이 안 될 것 같다는 상상을 한다. 그래서 오히려 그들끼리 알아보고 그들끼리 표현할 수 있도록 성소수자들이 스스로를 드러내고 알릴 수 있는 분위기가 더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기 위해선 이런 소수의 가치관을 존중할 수 있는 다수가 되어야 한다. 지금의 성소수자들은 단순한 소수가 아니라 비일반이자 비정상으로까지 보는 성다수자가 많아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결혼도, 출산도, 성도 모두 개인의 가치관이기에 다수결의 원칙처럼 여겨질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 한다고 해서 해야 하는 게 아니요, 다 하는데 안 한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이런 소수가 가진 가치관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 바로 다수결의 반칙임에도 우리는 여전히 많은 반칙을 범하고 있다.
최근 발견한 사례 중 하나가 개를 무서워하면 이해 못 하는 사람이 다수이지만 뱀을 무서워하면 당연한 것처럼 이해를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뱀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반려동물로 키우기도 하는데 다수는 이런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건 어떤 동물을 무서워하는가의 문제가 아닌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소수이고 뱀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다수이기 때문이다. 다수가 좋아하는 걸 싫어하거나 다수가 싫어하는 걸 좋아하면 그 사람은 '괴짜'가 되어 버린다.
'내리실 역은 삼랑진역입니다' 소설을 통해 난 이런 소수가 겪는 다수결의 반칙에서 오는 상처와 치유를 얘기하고자 했다. 존중받지 못한 사람들을 등장인물화하여 그 인물들을 통해 어필하려고 노력했다. 이 소설이 조금이나마 다수결의 반칙을 줄여줄 수 있길 바라는 게 작가로서의 희망 사항이자 작은 바람이다.
스포츠에도 잦은 반칙이나 심한 반칙은 퇴장이라는 벌칙이 내려지는 것처럼 더 이상의 반칙은 범하지 말자. 그리고 다시 한번 기억하자. 누구나 언제든 내일의 소수가 될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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