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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탈 Dec 10. 2022

쪽팔리지 않는 삶

적어도 자식에게는

군대로 도망을 갔다. 

전역 후에는 일에 미쳐 살았다. 아니 미친 척 살았다. 

애써 외면했다. 

어느 날 문득 가슴 한편에 도사리고 있던 부채 의식이 살을 헤집고 나왔다. 

부끄러웠다.

적어도 쪽팔리게는 살지 말아야 하는데 말이다.


독재정권에 맞서 자신을 불사르던 친구들을 뒤로하고 군에 입대했다. 

이왕 가는 군대라면 하는 마음으로 장교 계급장을 달았다.

세상은 여전히 밝음과 어둠이 뒤섞여 혼란스러웠지만 군대 안은 평온했다.

벙커 앞으로 난 창문을 통해 보이는 세상만 보았다. 

벙커 뒤쪽에 숨겨진 진실은 보지 못했다. 


전역 후에는 먹고살아야 한다는 핑계로 일에 미치려 노력했다. 

정체된 삶에 쉽게 실증을 느끼는 성향 탓에 삶이 결코 평탄치는 못했지만 일에 미칠 수 있어 감사했다. 

그렇게 시간이 쌓여 지극히 평범한 삶에 자족하며 나도 모르게 가해자 편에 서있었다.

무뎌진 신경 탓에 더 낮은 곳을 보지 못했고 진실과 마주하지 못했다. 


어느 날 가슴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그간 애써 외면했던 세상과 친구들에게 진 부채 의식이 또렷하게 살아났다.

그러나 이미 소심한 가장이자 직장인으로 변해있는 자신에게 절망했다.

한때는 부채를 털어내려 야학에서 늙은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고, 헐거워진 지갑을 털어 더 낮은 곳을 향한 후원도 해봤지만 부채 의식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의로운 척 글도 써봤지만 부족한 필력 탓에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고 세상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그 와중에도 세상은 더 낮고 그늘진 곳에 서있는 약자들에게 가혹했다. 

어느 누구도 그들의 외침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루저들의 푸념, 낙오자의 변명쯤으로 치부했다. 

오히려 부끄러움을 모르는 가해자들에게 '그럴 수 있지 뭐'하고 보험성 용서를 남발했다.

향후에 있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부끄러운 짓거리에 미리 용서를 해두는 것이다.

분명 정의로운 세상이라 할 수 없으리라.


부끄럽다.

정의롭지 못했던 삶이 부끄럽고, 더 낮은 곳을 외면했던 삶이 부끄럽고, 어른이라서 부끄럽다.

하지만 용기를 내보련다. 

적어도 우리 자식들이 살아갈 세상에서 그들에게 창피하게는 살지 말아야겠다.


사족) 

곶감 만든다는 핑계로 몇 달 동안 글을 쓰지 못했고, 부끄러운 반성으로 다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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