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열심히 해도 돼?

영화 <린다 린다 린다> 후기

by 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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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만에 재개봉한 영화, <린다 린다 린다>를 봤다. 내용은 제쳐두고서라도 일단 20년 전 배두나 배우의 모습을 극장에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만족스러웠다. 전반적으로 큰 갈등이나 사건 없는 평이한 전개였음에도 상영시간 내내 집중해서 봤다. 과연 이 영화의 어떤 점이 관객을 끌어당기는 걸까?


친구가 말하길, <린다 린다 린다>는 일본 걸즈밴드 컬처의 시초라고 한다. 청춘, 여름, 고교, 걸즈밴드. 이 키워드를 다 가진 작품을 내가 무시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찾아보니 내 스케줄과 상영 스케줄이 맞는 극장이 딱 하나 있었는데, 언젠간 가봐야지, 하면서 미루고 미루던 독립 극장이었다. 20년 전의 고교 걸즈밴드 청춘물을 독립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라니, 고민조차 하지 않고 이틀 뒤 날짜로 바로 예매했다.

영화를 보러 온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다. 작은 상영관에서 혼자 영화를 즐기는 기분이 짜릿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박수 치고, 추임새를 넣고, 인물들과 함께 웃기도 하고. 어쩌면 혼자 관람해서 배로 즐거웠던 것 같기도 하다.


플롯은 단순하다. 고교 축제 공연 3일 전, 여학생 밴드의 기타는 부상으로, 보컬은 탈퇴로 공석이 두 자리나 생겨버린다. 남은 세 소녀들은 이대로 무대를 포기할지, 아니면 어떻게든 보컬을 구해서 레퍼토리를 바꿀 지 선택해야 한다. 기타(원래는 키보드)를 맡기로 한 케이는 말한다. 지금 우리 앞으로 딱 걸어오는 사람이면 누구든 보컬로 하자고. 가장 먼저 걸어오는 건 중년의 남성. 소녀들은 다음 타자를 기다린다. 그때 저 멀리서 한국인 유학생 '송(배두나)'가 짐을 나르며 계단을 내려온다. 송, 너 보컬 할래? 응. 그렇게 새로운 멤버로 밴드를 급조한다.


이름마저도 '송'인 그가 밴드의 얼굴인 보컬이 됐다. 그럼 이제 관객들은 기대를 하게 된다. 갑자기 들어온 보컬이지만, 노래는 잘 하겠지? 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송은 노래도 그냥저냥, 일본어도 그렇게 잘 하는 편은 아니다. 블루하츠 노래의 가사를 읊는 것 마저 송에게는 도전이다.

남은 시간은 3일. 하지만 어떻게든 무대에 오르기 위해 노력한다. 그 장면마다 청춘의 열기가 그대로 전달된다. 개인적으로 감독의 카메라 샷이 빛났다고 생각한다. 소녀들의 열정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화면으로 장면을 구성하고, 굳이 유사한 경험이 아니더라도 청춘의 향수를 불러오게 한다.


이 영화의 또 다른 포인트는 한국어와 일본어가 교차되는 지점에 있다. 송에게 고백하는 마키라는 남학생은, 미숙한 한국어로 진심을 전한다. 사랑합니다. 송은 거기에 일본어로 대답을 한다. 싫지 않지만, 좋지도 않아. 나는 친구들한테 가고 싶어서. 서로 다른 언어와 미묘한 엇박의 장면이다. 한편, 잠을 깨기 위해 화장실로 간 케이를 마주한 송은 또 다시 한국어로 말한다. 밴드 하자고 말해줘서 고마워. 케이는 그 말을 알아들으며 웃음 짓는다. 서로 다른 언어, 하지만 이번에는 박자가 맞았다. 그때 우리는 느끼게 된다. 송은 이 순간에 진심을 쏟아 붓고 있다는 사실을.


다들 학생 때 어떤 사유로든 밤을 샌 경험이 한번 쯤은 있을거다. 이 소녀들도 그렇다. 공연 전날에 막바지 연습을 하느라 밤을 새고, 그러다 결국 공연 시간이 지나서 깨어나버린다. 설상가상, 밖은 폭우가 몰아치지만 허겁지겁 악기를 챙겨서 무대로 달려간다.

그 시각, 텅 빈 무대는 다른 학생이 채우고 있다. 바로 처음에 손가락 부상으로 밴드를 빠지게 된 모에였다. 무대에 오르기 전, 술을 한잔 들이키고 긴장을 가라앉힌 후 반주도 없이 혼자 노래를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도 참 좋았다. 올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밴드 멤버들을 위해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주는 친구. 비중은 적었지만 울림을 준다. 친구들이 모두 졸업하고, 혼자서는 재미 없으니 무대에 서지 않겠다던 다카코도 기꺼이 기타를 든다.

쏟아지는 폭우로 인해 학생들은 점점 체육관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밖에 있던 구경인들도 전부 실내로 들어와 이내 공간이 금세 차버린다. 택시를 타고 급하게 학교로 들어오던 와중, 드럼의 쿄코는 우산을 들고 자신을 찾는 카즈야를 마주한다. 아차, 할 말이 있다고 공연 전에 보자고 해놓고 자느라 약속을 놓친 까닭이다. 친구들은 쿄코에게 시간을 주고 먼저 들어간다. 모에와 다카코, 둘이 무대를 마무리짓는 동안 셋은 악기를 점검한다. 그때 케이와의 갈등으로 보컬을 탈퇴했던 린코가 한마디를 던진다. 잘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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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의 송, 기타의 케이, 베이스의 노조미가 먼저 무대에 오른다. 드럼의 쿄코가 뒤늦게 들어온다. 그래서, 말 했어? 케이는 쿄코의 고백 여부가 궁금하다. 쿄코가 대답한다. 아니. 케이는 그저 웃는다.

물에 빠진 생쥐들이 맨발로 무대를 시작한다. 송이 밴드의 이름은 "파란마음입니다"하고 소개를 한다. 놀랍게도, 3일만에 보컬과 연주를 마스터하고, 완벽한 무대를 해내는...

건 당연히 아니다. 송은 여전히 일본어도 그냥저냥, 노래도 그냥저냥이다. 여전히 미숙한 그대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환호한다. 강당 전체는 "린다 린다, 린다 린다 린다"를 외치는 청춘들의 목소리로 가득 찬다. 이때 나는 이전 장면에서 송과 케이의 대화를 불현듯 떠올리게 된다. "나 열심히 해도 돼?" "응, 열심히 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내게는 완벽히 준비하지 않은 무엇을 남들에게 선보임에 대한 큰 공포가 존재한다. 혹자는 이걸 완벽주의 성향이라고 하던데, 글쎄, 그거랑은 좀 다른 것 같기도 하다(왜냐하면 그런다고 해서 딱히 완벽히 끝내거나 준비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걱정만 하다가 시간을 보낼 뿐). 그래서 <린다 린다 린다>를 보며 더 뭉클해졌는지도 모른다. 잘 하지는 못해도 열심히 하는 송, 완벽하지도 않고 어찌 보면 좀 허술하기도 한 '파란마음'의 무대를 진심으로 환호하는 사람들, 완벽히 마무리 짓지 못한 채 얼기설기 펼쳐 둔 각 인물들 간의 관계(송-마키, 케이-린코, 케이-토모키, 쿄코-카즈야). 이 어설픈 마무리야 말로 <린다 린다 린다>에 가장 잘 맞는 결말이지 않을까.


깔끔하게 마무리 짓지 않아도 좋다. 순간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어서 즐거웠다. 함께 불러보자. 린다 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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