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온 더 비트> 후기
거의 1년 반 만에 연극을 봤다. 마지막으로 본 연극이 2024년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였으니 정말로 오랜만으로 본 것이다. 딱히 이유는 없었고, 그냥 끌려서 예매하게 됐다. 세 명의 배우 중 누구로 볼지 고민했는데, 최근 영화 <장손>에서 강승호 배우의 연기를 좋게 봐서 강승호 배우의 회차를 예매했다.
나보다 먼저 이 연극을 본 지인의 후기를 듣자 하니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보러 가는 게 좋을 거라 해서 정말 ‘배우가 드럼을 친다’라는 이 사실 하나만을 알고 극장으로 향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인의 말이 맞았다. 모르는 채로 가서 더 잘 즐길 수 있었다. 그러니 볼 생각이 있는 사람은 최대한 내용을 모르는 채로 가는 것을 추천한다(이 글도 연극을 보고 난 후 읽는 것을 추천한다).
주변의 모든 소리를 인지하고 이를 리듬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외부의 자극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뇌에서 바로 리듬으로 변환시키는 아드리앙을 보면 저절로 그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내 생각에 강승호 배우는 자신이 구축한 아드리앙의 세계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데 완벽하게 성공한 것 같다. 그의 몸짓과 대사에 집중하면서 나 역시 짜릿함을 느꼈으니.
드럼과 함께 있을 때의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의 아드리앙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그에게 드럼 ‘티키툼’은 자신의 작은 세계이자 챔피언이다. 그를 둘러싼 현실은 그를 지우고 축소하려고 한다. 이해는커녕 그의 존재 자체를 문제로 여기는 듯하다. 존재 자체가 문제가 되는 삶. 베르나르는 특히나 더 아드리앙을 그리 생각한다. 그리고 아드리앙을 그렇게 바라보는 시선은 그를 더 사회에서 동떨어진 인간으로 만들어버린다.
고스트 노트. <온 더 비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고스트 노트를 빼놓을 수 없다. 고스트 노트는 귀에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연주되는 음표를 말한다. 드럼을 칠 때 강조되는 노트 아래에 깔려 의식도 못할 만큼 작게 연주되는 노트들. 극 중에서 고스트 노트에 대한 해석은 매우 다양하리라고 생각한다.
극 중에서 아드리앙은 ‘정적은 소리만큼 중요하다’라는 대사를 내뱉는다. 아무리 아름다운 음이라도 그 어떤 정적 없이 지속된다면 사람들은 익숙해지거나 불쾌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아드리앙의 경우, 청각적으로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능력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매우 뛰어나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음이 고스트 노트로 들렸으리라 생각된다. 모든 소음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 아드리앙은 그것으로 리듬을 만들며 희열을 느끼는 동시에 끊이지 않는 자극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스트레스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 둘을 굳이 구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강한 희열과 스트레스는 궤를 같이하고, 이는 결말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한편, 고스트 노트는 아드리앙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이는 그의 삶을 은유하고 있다. 연극을 보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서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혹은 축소하려고 하는 존재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무대 벽에 쓰인 수많은 ‘Je vous vois’의 의미를 깨닫는다. 네가 보여.
세실, 아드리앙과 세계를 연결하는 인물이다. 아드리앙의 세계 속에 유일하게 들어온 세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가족도,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했던 아드리앙이 처음으로 타인과 음악을 통해 소통할 수 있음을 느꼈을 때 그 감정은 어땠을까? 세실과 같은 시선을 가진 이가 주변에 더 있었다면, 그의 인생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을까? 아드리앙의 가족들이 그를 억지로 끄집어내어 현실에 맞추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의 세계를 이해하려고 시도했다면 어땠을까? 이런 가정은 무의미함에도, 마지막 장면 전 아드리앙의 “차라리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 역시 만약 그랬다면,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을 되뇌게 되는 것이다.
이 극은 커튼콜까지 보아야 비로소 완벽히 마무리된다. 아드리앙이 내내 갈망했던 것들이 바로 거기에 있다. 타인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체로 존재하고 있음을 온 힘을 다해 표현한다. 결말부의 씁쓸함 때문에 더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온 더 비트>라는 극의 후기를 문장으로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연극은 비언어적 표현과 그 순간의 느낌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추상적인 부분들을 나의 언어로 바꾸어 설명하고자 하면 오히려 그 빛이 바래는 느낌이다. <온 더 비트>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관객이 아드리앙의 이야기를 직접 마주해야만 온전히 전해진다.
그러니 더 이상 문장을 추가하지 않고 여기서 끝맺음하려 한다.
+ 커튼콜에 삽입된 곡은 다음과 같다
Rise up – Imagine Dragons
https://www.youtube.com/watch?v=x12CWu3V0lg&list=RDx12CWu3V0lg&start_radio=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