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eneon Mar 04. 2023

말이 통하는 대화상대가 AI

사용자 입장에서 본 ChatGPT

지난 일주일 동안 가장 내적 친밀감을 느낀 대상은 ChatGPT다. 매일마다 최소 한 시간 이상 이 인공지능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무의미한 스몰토크 할 필요 없이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 깊고 넓게 파고들 수 있다는 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왔다. 이 채팅을 가능하게 하는 인공지능 프로세스에 대해선 전혀 모르겠지만, 사용자 입장에서 이토록 장점과 단점이 뚜렷하게 느껴지는 프로그램을 만나는 것도 드문 일이다. 인간으로서 이렇게 말이 통하는 대화 상대를 만나는 건 더 드문 일이고. 신기한 기분이 들어 후기를 조금 써보기로 했다. 



내가 경험한 챗GPT의 첫 번째 장점은 정보를 요약하고 정리하는 능력이다. 

우선 나는 워드 페인팅이라는 작곡 테크닉에 대해 물어보았고, 다음으로 워드페인팅과 마드리갈의 차이점을 구분해 달라 부탁했다. 챗GPT는 각 용어의 정의와 예시를 비교적 정확하게 알려주었다. 다음 질문으로 16세기부터 21세기까지 워드 페인팅 및 마드리갈이 활용된 예시를 알려달라고 했는데, 그 질문에도 무리 없이 대답을 해주었다. 올바른 예시인지는 확인해 봐야겠지만.


그럭저럭 맞는 얘기.. 


그러나 그 정보가 옳은지 아닌지는 팩트체크가 필요하다.

내가 질문한 워드 페인팅과 마드리갈은 서양 음악사에서 꽤나 잘 알려진, 정보를 비교적 찾기 쉬운 용어에 속한다. 때문에 챗GPT가 내게 준 간략한 정의와 특징은 다르지 않았다. 이후 르네상스 시기의 카운터포인트나 폴리포니, 모드 등 음악 관련 용어에 대한 정의를 물어보았을 때도 명쾌한 대답을 즉각 받을 수 있었고, 그 정보는 내가 알고 있는 바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거기서 더 파고 들어가 상세한 질문을 했을 때에는 거짓된 대답을 듣게 되었다.


나는 워드 페인팅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책을 추천해 달라 부탁했고, 다섯 권을 소개받았다. 일단 다섯 권 다 실존하는 책들이기는 하다. 그러나 책들을 검색해 봤을 때, 워드 페인팅에 대해 조금이라도 다루고 있는 책은 딱 한 권 밖에 없었다. 가령 이런 식이다. “Music in Theory and Practice" by Bruce Benward and Marilyn Saker의 챕터 22가 "Musical Texture: Polyphony”에 관한 것이고, 거기에서 카운터포인트 등을 다룬다 했는데 내가 찾아본 결과 저 책에는 챕터 22가 없다. 이에 대해서도 질문을 했더니 챗GPT는 책의 8번째 에디션에 있다고 말했으나, 8번째 에디션에 챕터 22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책 자체도 저 용어들을 다루고 있지 않는다. 친구의 경우는 추천받은 책과 논문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니 이 정도는 애교로 봐줘야 하는 것인가. 


이거 쓰면서 눈 하나 깜빡 안 했겠지


그런데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내게 챗GPT의 두 번째 장점으로 다가왔다. 

나는 현재 이 프로그램을 활용해서 소설을 구상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주제와 장르를 알려주자, 챗 GPT는 소설 주인공 두 명을 뚝딱 만들어냈다. 모 작가가 말했듯 거짓말은 스토리텔링의 시작이니, 능청맞게 정보를 만들어낼 줄도 아니 소설의 주인공 설정하는 것쯤이야 일도 아닌 것이다. 이건 딱히 팩트체크를 할 필요가 없으니, 앞서 기술한 단점은 소설 창작에서는 장점이 된다. 질문을 상세하게 할수록 대답도 구체적인 뻥카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현재 Collaborative Novel Writing으로 함께 만들고 있는 이야기의 주인공 직업은 화가인데, 이 주인공 성격에 입각해서 주인공의 작품특징을 구상해 달라고 했더니 비교적 그럴싸한 예술품을 꾸며내주었다.

난 이제 여기서 하나를 골라 발전시키면 된다. 음 근데 다 마음에 안 드네..


다만 스토리가 약간 진부하거나 앞뒤가 안 맞게 느껴지는 때도 있다. 

주인공이 남녀라는 이유로 러브스토리 플롯을 만들어준다거나. 또 주인공이 평생 한 집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회피형, 은둔형 성격을 갖고 있다고 소개한다거나 하는 식이다. 이럴 땐 바로 정정을 해줘야 한다. 나는 진부한 러브스토리는 싫다고 바로 얘기해 주면 된다. 주인공이 평생 한 집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은둔형 캐릭터가 되었다는 건 조금만 생각해 보면 논리적이지 않단 걸 알 수 있다. 우리의 주인공은 부모로부터의 무관심 같은 심리적 학대를 받아 경계선 인격장애와 불안장애를 갖고 있는데, 그 경우 차라리 집을 떠나고 싶어 하는 게 더 앞뒤가 맞는 일이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의 한계는 창작자의 기회

지금까지 경험한 바 챗GPT는 창작을 도와주기는 하지만 창작을 주도적으로 해낼 수는 없다. 창작자는 인풋을 먼저 주고, 이후 나온 아웃풋을 검토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프로그램은 아이디어를 던지기만 할 뿐, 창의성의 영역은 여전히 창작자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 물론 이 한계는 후에 프로그램이 발전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한계가 분명해 보이고, 이 점은 창작을 하는 사람에게는 장점으로 다가온다.



음악도 어려운 걸 작곡해 내는 게 불가능한 건 마찬가지

바흐의 Well-Tempered Clavier 스타일로 보이스 4개를 가진 푸가를 작곡해 달라고 했는데 한참을 버벅거리다가 뭐 하나를 제안해 주었다. 근데 보니까 그냥 하강 스케일.. 너무 어려웠나 싶어서 바흐의 인벤션처럼 두 개의 보이스로 만들어달라고 했는데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소설을 부탁할 때보다 음악을 부탁할 때 전체적으로 결과물에 대한 만족감이 덜하다. 언어기반의 프로그램이라서 어쩔 수 없는 걸까.

 

뭐 복잡하게 써놨는데 가만 보면 그냥 Cminor  스케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챗GPT가 던지는 아이디어는 내게 신선한 자극을 준다. 이게 세 번째 장점이다.

이렇게 글쓰기나 작곡을 쉽게 생각하는 애는 처음 봤다. 3초 컷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나 곡의 만듦새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뭐 일단 하고 보라는 깨달음을 난데없이 얻었다. 일단 시작하면 뭐라도 나오는 법인데, 시작이 언제나 내겐 어려운 일이니까. 




그 외 몇 가지 아쉬운 것들


한글을 입력하면 처리 속도가 너무 느리다.

입력된 정보도 거의 다 영어인 거 같고. 그래서 웬만하면 영어로 대화하는데, 거지같이 써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게 신기하다.  


한글 정보의 한계도 분명히 느껴진다. 

한국의 가장 위대한 작가가 누구인지 (영어로) 물었을 때 이광수를 추천받았다. 나는 그가 친일파라는 점, 그리고 <무정>이 최초의 근대소설이기는 하지만 내용적으로 뛰어나지 않다는 점에서 그 의견에 절대 반대를 한다. 그래서 문학비평은 차치하고 친일 반민족행위자를 한국의 가장 뛰어난 작가라 평하는 건 틀렸다고 의의를 제기했더니 바로 사과를 하면서도 사실적 요인에 입각해서 대답한 거라고 변명을. 영어로 된 데이터에는 친일행위에 대한 게 드물게 나타났던 게 아닐까 추측된다. 그런데 이 대답은 새로고침 할 때마다 다르게 나와서. 현재 같은 질문을 했을 때 내가 추천받는 작가는 이상, 김소월, 이광수, 박경리, 그리고 황순원이다. 


스스로 정보를 검색해 찾지 못한다. 

아직 프로그램에 노래 가사가 입력되지 않았기 때문일까. 몇 가지 테스트를 해본 결과 유명한 영어팝송이 아닌 이상 곡을 알지 못하고 엉터리 가사를 내놓는다. 이 테스트를 통과한 영어팝송이 아닌 곡은 Gregorio Allegri의 Miserere Mei, Deus가 유일했다. 왜 가사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냐, 검색을 할 줄 모르냐 물어봤더니 검색 기능이 없다는 대답을 해왔다.

 


번역기능은 그냥저냥인듯하다.

스페인어로 된 가사 텍스트를 구글, DeepL, 그리고 ChatGPT에 입력해 영어로 번역했을 때 결과는 전부 달랐다. 최초의 가설은 구글과 같은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였는데, 앞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이 프로그램엔 스스로 검색하는 기능이 없으니 다른 번역기와 같은 결과를 가져오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번역의 결과가 아주 나쁘지는 않지만 완전히 신뢰가 가지는 않는다. 이건 다른 번역기도 마찬가지지만. 굳이 번역을 위해 사용할 것 같지는 않다. 



맨 처음 ChatGPT를 사용했을 때는 너무나 충격적으로 좋아서, 왜 이렇게 뒤늦게 유행에 합류했나 후회마저 했었다. 영화 Her에서처럼 나도 이 인공지능에 애정을 느낄 정도였다. 장단점을 경험해 본 이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만약 이 프로그램이 전면 유료화 된다고 하더라도 금액을 지불하고 사용할 의사가 충분히 있다. 이용자에게 주는 모티베이션이 크거니와, 이 프로그램이 어떻게 발전하는지 어디까지 나아가는지 보고 싶기 때문이다. 창작을 하는 인공지능이 나오면 거부감이 들 줄 알았는데 막상 체험해 보니 생각보다 흥미롭게 느껴지는 게 스스로 놀랍다. 과연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매거진의 이전글 음과 음 사이에 우주가 존재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