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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사탕 Jun 21. 2023

희망의 시작은 알람 없이 찾아온다

마음이 힘들수록 더욱 책 읽는 것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지금이 아닌 다른 곳으로 타임슬립을 한 것처럼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힘들수록 더욱 책이라는 물건에 집착을 해왔던 것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멋진 남자주인공을 내 멋대로 설정할 수 있었고, 책장을 넘기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에 빠지게 되니 현실 도피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이었다. 아이와 함께 낮잠을 자는 시간은 나의 체력을 충전시켜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마저 포기한 채 숨죽여 한 장 한 장 넘기며 상처받은 나를 위로해 주었다.


남편에게는 책 변태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으나 개의치 않았다.

정적인 듯 보이는 그 행위들이 나를 소리 없이 치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더욱 손에서 놓지 못했을 것이다.



독서를 통해 여기저기 난 마음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가기 시작했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어둠에서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나조차도 모르게 말이다.


시야가 달라지기 시작하니 점차 주변 환경도 바뀌기 시작했다.


매번 암울함의 연속이라 생각했는데 남편에게 용기를 주는 말 한마디를 건네기도, 겁이 나서 쳐다도 보지 않던 사소한 일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였을까.

불평이 줄어드니 작은 집에 갇혀있던 가족의 시간이 더 이상 감옥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재도약의 시간이라 여겨졌다. 일상이 완전히 뒤바뀌어 어그러졌다고는 하나 기존 내가 생각하던 상황 속에서는 얻지 못할 충전의 찰나로 여겨졌다.


남편은 다시 힘을 내어 재취업에 성공했다.

사업의 실패와 코로나라는 적 앞에서 힘들었을 테다. 그러나 가장이라는 무게 때문에 오롯이 힘겨움을 표현하지 못했던 그였다. 다행히 여러 군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연락이 오기 시작하며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모습은 감격스러웠다.


독서는 그저 한낱 글자를 읽는 행위만을 말하지 않는다.

한 자 한 자 모여 뜻과 의미를 만들어 냈고, 여기저기 상처가 나 너덜거리는 내 심장에 밴드를 붙여주었다. 혹여나 덧날까 나보다 더 내 마음을 알뜰살뜰하게 보살펴 주었다. 예전보다 훨씬 단단해진 내가 그 결과였다.


힘차게 치고 나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적어도 어두컴컴한 상황에서 암막커튼이나 치워달라 그렇게 애원했는데 책은 나에게 그렇게 해 주었다.

창 밖의 빛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창문을 열어젖힐 힘을 채워 손으로 직접 문을 열고 나갈 수 있도록 가르쳐 주었다.


이 고마움을 어찌 다 표현할까.

단순히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렸을 뿐인데.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울면서 저자를 그토록 헐뜯고 비난하던 나였는데.

내 욕받이를 다 하고도 보듬어주니 내 세상 모두가 달라졌다.


작은 용기에 힘입어 꼼지락 거리기 시작한 것은 말 그대로 미라클의 시작이었을 뿐이었다.

남편의 재취업 소식은 너무 많은 감사함의 출발이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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