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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uone May 15. 2023

비전공자 디자이너로 살아남기

나이 30에 디자이너 되기

 뒤늦은 사춘기로 질풍노도의 20대를 보내고, 소제목처럼 취준시장 기준 적진 않은 나이에 직종 변경을 하고 지금 다니는 회사에 정규직 디자이너로 입사를 했다. 사실 그 이전에는 계약직과 아르바이트가 대부분인 생활이라서 사실상 정식 입사는 처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비전공자, 심지어 고졸, 나이는 (취준시장 기준)많음, 딱히 특정 직종에서 경력을 쌓다가 온 것도 아님, 자격증 없음, 외국어 능력 없음 등등... 면접 자리에서 정말 할말 없을만한 저스펙 그 자체.



그런데 저는 지금 디자이너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대단히 이름 날리는 회사의 대단히 이름 날리는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디자이너로 일을 하며 연봉도 회사 테이블 내 최대치로 협상도 한 번 했고, 외주도 받았다.

 이건 그러니까 "당신도 할 수 있어요" 라는 요지의 글이다.


 물론 디자이너가 될(대기업에 가고 멋지게 이름을 날릴 수 있을) 수 있을까요, 라고 묻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중소기업에도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입사를 희망하니까.


대기업도 사실 갈 수 없다고 확답할 순 없지 않나 싶은데 그 세계는 저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아무튼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내가 디자이너로 갈래를 잡기 이전 마지막 다닌 곳은 인바운드 콜센터다. 다양한 아르바이트와 다양한 계약직을 하는 와중 약 절반 정도의 이력이 콜센터긴 한데, 뭐 그리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다. 나의 경우에는 개인적인 경험과 연관이 있어서 면접 때마다 한 마디씩은 꼭 언급이 되긴 하는 파트지만 어쨌든 그건 각자의 사정에 맞춘 스토리텔링을 하면 될 일이니까.


 그때 2년 계약직이었어서 2년치 퇴직금을 받고, 계약 만료라서 실업급여도 수급하면서 정규직으로 이제 정말 어떠한 분야를 잡아 쭉 일을 하기 위한 취업을 하자는 생각으로 국비지원 학원을 등록했다.

분야는 출판편집디자인. 사실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급하게 툴을 배우기에는(어디까지나 툴에 대한 얘기다.) 그나마 좀 쉬워 보여서 선택했던 건데, 지금 생각하면 영상 툴을 배웠어야 했나 싶기도 하지만 그건 이제부터 또 배우면 된다.


 당시에 국비지원 학원에 큰 기대는 안 하고 그냥 등록했었는데, 사실 툴을 가르치는 부분에서는 충분한 것 같다. 그리고 포트폴리오에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물론 강사 선생님이 직접 만들어주고 이런 건 당연히 아니고, 혼자 포트폴리오를 만들면 구성이라거나 하는 부분을 감잡기 쉽지 않은데 지원을 원하는 분야에 따라서 포트폴리오에 어떤 디자인을 더 넣고 어떤 디자인을 덜 넣을지에 대한 부분을 함께 짚어줘서 좋았다.




 전액 무료, 국비지원 과정을 알차게 누리며 4개월 간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인디자인의 세 가지 툴을 배우고 포트폴리오를 들고 신입 디자이너로 면접을 보러 다녔다. 평범하게 사람인과 잡코리아를 주로 뒤졌고, 학력 제한 경력 제한은 다 무시했다. 대졸 이상이든 2년 이상이든 그냥 신입 포트폴리오로 일단 이력서를 넣었다.


 사실 회사 하나하나 이력서를 맞춰 쓰기에는 당시 실업급여와 퇴직금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확신이 없어 마음이 조급했으며 스스로에게 그리 자신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물량 공세에 가까웠다. 이젠 2년 가까이 흘러서 몇 개의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확실히 기억나는 건 학력 경력 미달인 채로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넣었고 해당 회사의 구인구직 사이트 페이지에 학력 미달 지원 불가 표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면접 연락이 온 곳들이 몇 군데 있었다. 실제로 그 중 두 개는 최종 합격도 했다.


 문제는 21년도인데도 불구하고 디자이너 신입 연봉 2200 2300을 말하는 데들이 은근 많았다. 일정 경력 이상을 넘어가면 개개인의 편차는 크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박봉으로 유명한 직군이긴 해도 이건 심하다고 생각했다. 일단 가장 중요한 건, 열정을 떠나서 그렇게 받고는 생활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2200 수준은 실제로 생활이 안 된다고 면접 보다가 인사드리고 중간에 나오기도 하고... 그랬는데 어찌저찌 처음 디자이너로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된다. (물론 위에 말한 연봉으로 입사한 건 아니다.)


 몇 군데에 면접 합격을 했고, 그 중 한 회사를 택했다. 그리 큰 차이가 나지는 않았지만 연봉이 선택 기준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첫 회사 연봉을 기준으로 이후 이직 때도 협상을 하게 되니까,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곳에 가는 게 맞는 것 같았으며 이보다 높은 연봉의 회사를 찾기 위해 계속 취준을 이어가기에는 백수로 보낼 수 있는 여유가 별로 없었다. 현실적 사유다.




 그렇게 입사한 회사는 사실 디자인적으로는 아주 트렌디한 분야는 아니기 때문에, 메리트가 크지 않을 수도 있는 쪽이다. 공공기관을 주 클라이언트로 두는 종합홍보대행업체였다. 대개 포멀하고 나쁘게 말하면 올드해 보이는 디자인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장점으로는, 어쨌든 홍보 대행이다보니 여러가지 일을 할 수 있으며 클라이언트의 네임이 그야말로 '굵직'하다. 입사 후 편집디자인부터 캐릭터디자인까지 홍보 사업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2D 디자인 콘텐츠를 아우르며 정말 다양한 일들을 하고, 사업에 들어가는 디자인 콘텐츠를 전담해서 많은 기여도의 작업물을 만들었다. 이제 나는 1년 n개월차의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딱 1년이 되었을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회사에서 연봉 협상이라는 것도 해봤고, 드라마틱한 상승율은 아니지만 어쨌든 상승도 했다. 사내 연봉 테이블의 벽은 견고하더라...

 그래도 일단 원티드의 직군 평균 연봉을 참고해서 보면 내가 받는 돈이, 동일 직군 평균에 비해 낮진 않다.


 글이 길어져서 읽는 사람이 잊었을까봐 다시 강조하자면,

 나는 무경력 저학력의 디자이너다.

 그럼에도 그럴 수 있다는 거다.


 물론 이쯤에서 의문이 들기는 한다. 과연 내가 앞으로도 이런 인상 폭으로 평균을 웃도는 연봉을 받을 수 있을까? 그런데 그건 내가 앞으로 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이다. 모든 일과 직업이 그렇겠지만, 디자이너는 계속 배우고 나아가야 하는 직업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나는 계속 공부를 한다. 앞으로도 공부할 거고, 나아갈 거다.






 아마 나와 비슷한, 혹은 나보다 나은데도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 한국엔 많을 것 같다.


 나에게 한국은 유독 나이를 많이 생각하는 문화라고 여겨진다. 그에 비해 나는 내 나이도 정말 자주 까먹는 편이라서, 옆에 있는 사람한테 내 나이를 묻기도 한다. 그래서 사실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도 객관적인 취준 시장의 연령대와는 별개로(이건 하다 못해 구인구직 사이트의 지원자 통계만 봐도 모를 수가 없다) 별로 내 나이를 신경쓰지는 않았다. 여전히 그렇다.


 그런데, 보다 보면 나보다 나이가 어린데도 제가 신입으로 가기엔 나이가 많아서... 전공자가 아니라서... 같은 망설임을 갖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리고 연봉 협상을 위해 연봉을 찾아볼 때 정말 말도 안 되게 적은 연봉을 받으며 일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그런 사람들의 존재 때문이다.


 나도 했으니까, 당신도 할 수 있다는.

 그리고 스스로의 가치를 그렇게까지 깎아먹지는 말라는... 뭐 그런 거다.


 그럼 우리 앞으로도 힘내서 잘 살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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