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상한 제목에 이끌려 들어온 당신, 화면을 잘못 클릭하여 이 글을 보는 당신, 대학원에 대한 정보를 찾으려다가 무심코 이 글을 클릭한 당신, 모두에게 환영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아마 제목을 보는 순간, '이 사람은 어쩌다가 전공을 이렇게 바꿨을까' 생각했을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전공을 바꾼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제목에 쓰여진 '3개의 석사학위' 모두 역사학 석사학위이다. 어쩌다가 나는 석사학위를 3개나 모으게(?) 되었는지, 이렇게도 기가차는 이야기를 언젠가는 풀고 싶었다. 마침 아무 곳에도 적을 두지 않은 상태인지라, 지금에야말로 나를 돌아볼 기회라고 생각했다.
2023년 가을
"기다림을 즐겨야만 한다"
나는 지금 어느 한 대학교의 이메일을 기다리고 있다. 이메일을 보낸 지 이틀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마음 속 한 구석에서 조바심이 이미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이럴 때는 당황하거나 짜증내지 말고 차분히 기다려야 한다. 대부분은 별 탈 없이 지나가기 마련이기 때문에 다시 이메일을 보낼 필요는 없다.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물론 하루 온종일 ‘새로고침’ 버튼을 눌러서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도 없다. 다행스럽게도 몇 년 동안 일어났던 비슷한 경험을 통해,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년 동안 급한 마음을 버리자고 수차례 마음먹길 반복했지만 이런 상황이 막상 코앞으로 불쑥 닥쳐오면 쉽지 않다. 생각만으로는 조바심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 물리적인 조치가 필요했다. 우선 노트북을 닫았다. 한동안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인지 목이 탔다. 마시기 좋게 식은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들이켰다. 코 깊숙한 곳까지 씁쓸하면서 고소한 커피향이 타고 올라왔다. 향긋한 커피 향에 이내 기분이 나아졌다. 커피를 한 모금 더 머금고, 매일같이 드나드는 스타벅스 구석 한 켠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공간을 채우는 느긋한 음악소리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한결 더 여유로워졌다.
내가 이제부터 설명할 것은 꽤 긴 여행에 관한 것이다. 물론 아직 끝나지 않은 여행이기도 하다. 15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여러 장소를 옮겨 다닌 여행이지만, 이 여행을 한 단어로 표현해보자면 기다림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양하고 수많은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여행이지만, 오랜시간을 통해 알게 된 점은 이 여행은 인내심이 거의 전부라는 것이다. 조바심이라는 감정과 끝없이 엇박자로 춤을 추고, 나는 박자를 맞추기 위해 인내심을 가지려 노력했던 여행이었다. 아주 돼먹지 못한 여행인 것이다. 그래도 인내심을 갖고 어렵사리 조바심을 통제할 때 온 몸으로 퍼져가는 짜릿함이 있다는 것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이런 짜릿함으로 인해 나는 이 여행이 무척 짜증스러웠으면서도 지금까지 기꺼이 즐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내가 어떤 이메일을 기다리고 있느냐고? 대학원에 가기 위한 이메일이다. 정확히는 박사과정에 입학하기 위해 보낸 이메일에 대한 답신을 기다리는 중이다. 이 배경을 설명하자면 너무나 길다. 꽤 오랜 세월 동안의 일이기 때문에 기억들을 더듬어 나가야한다. 나로서는 역순으로 설명하는 것이 쉽겠지만 그런 식으로 여행기를 쓴다면 나 스스로도 그리고 이 글을 시작한 여러분도 헷갈릴 것만 같다. 그래서 역순으로 진행될 설명을 피하고 싶다. 힘이 닿는 한 시간 순서대로 내 여행을 풀어나가고 싶다. 그렇다면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아무래도 18년 전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 적당해 보인다. 아, 그 전에 내가 왜 이 글을 시작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기껏해야 몇 달 전이었다. 그것부터 설명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구름 한 점 없고 푸른 하늘과 나무들이 쭉쭉 뻗어 있는 여유롭고 평화로운 남가주(南加州)를 떠올려보라. 불과 몇 달 전 어느 여름 날 나는 남가주 어느 학교 역사학과 행정실에 있었다. 그 곳에 내 사무실 키를 반납했어야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