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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새결 Jun 18. 2024

낭만적 사랑 노래가 아닌 야래향

터치드 윤민, <야래향> / 한용운 시인, <님의 침묵>

지상파 mbc 예능 프로인 '복면가왕'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음악대장'이라는 이름은 한 번씩 들어봤을 것이다. 뛰어난 무대를 선보이며 파죽지세로 9연승을 달성하였던 그 위업은 심지어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았다. 하지만 무려 7연승을 달성하며 이 기록에 도전하는 가왕이 생겼다. 그의 이름은 '희로애락도 락이다'.


본래 정체를 가리기 위해 복면을 쓰는 콘셉트인 예능이지만, 유튜브에서 이 댓글을 발견하고 몹시 즐거웠다. "터치드네~? 하고 봤더니 복면을 쓰고 있었다." 앞으로의 글에도 터치드는 언급이 될 예정이니 이 사람에게 빙의하여 '희로애락도 락이다'를 터치드 윤민과 동일 인물로 생각하려 한다. (솔직히 믿지 않기가 더 어렵다.)




지난 4월 21일에 방영된 무대에서 '희로애락도 락이다'의 선곡은 심규선의 '야래향'이었다. 심규선의 노래 중에서 크게 알려지진 않은 곡이기에 아마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https://youtu.be/-ApT8rRHBaE?si=wxz-22DFWypc3Kb9


이처럼 원곡은 자신을 두고 떠나버린 임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한국적인 색채로 그려냈다. 비통함에 가까운 가사에 전반적으로 흐느끼는 듯한 창법을 써서 깊은 한이 느껴진다. 이 노래 속 주인공은 자신이 미련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고 있다. 그래서 '아니 오실 임을 기다려 무엇할까' 하고 자조하지만 '밑가지 채 꺾어버려도' 마음은 '또 피우고 마'는 꽃이며 '향기가 먼저 마중'을 간다. 그래서 야래향이다. 밤에 오는 향기.


이쯤에서 본 주제가 나와야 지루해지지 않을 것이다. 복면가왕 '희로애락도 락이다'의 야래향은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낭만적인 사랑 노래가 아니다. 원곡의 가사와 멜로디는 그대로 두고 섬세한 감정선과 뛰어난 표현력을 통해 전혀 다른 메시지를 내포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제부터 무대 곳곳에서 반짝이는 단서를 모아 이 뮤지션의 천재성을 낱낱이 파헤쳐보려 한다.




다음에 이어질 글을 보기 전에 무대를 먼저 시청하길 권한다.


https://youtu.be/zUWUVa-d_bA?si=68BLS0AqfyAQmD2s


이전 무대에서부터 '희로애락도 락이다'는 섬세한 감정 표현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이름부터 이런 장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즉 심규선의 야래향과는 다른 감정을 표현한 부분들이 눈에 잘 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곡 전반적으로 흐르던 화자의 흐느낌이 전부 사라졌다는 점이다. 자기 연민의 감정이 사라진 자리를 채운 것은 명확한 현실 인지이다. 이 무대에서 노래 속 인물은 비록 통한스러워하지만 내면에 매몰되지 않고 눈을 돌려 외부를 바라보고 있다. 이런 강인함을 기반으로 능동적인 태도를 보인다.


꺾고 채이고 밟히고 짓이겨져도
또 피우고 마노라


위 가사를 원곡이 기어이 "또 피우고 마"는 한탄스러운 심정을 말하고자 했다면, 여기서는 "꺾고 채이고 밟히고 짓이겨져도"에 하나하나 힘을 실린다. 그렇게 꽃은 어쩔 수 없이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워내는 대상이 된다.


차츰 곡이 이어지며 감정선은 보다 처절함이 고조되어 간다.


떠나시던 임의 옷깃에
엉겨 매달려 볼 것을


이 부분에서는 거의 '후회'를 넘어선 '통탄스러움'이 전달된다. 분노가 섞였다고 해도 납득했을 것이다. 그때 엉겨 매달리지 않았던 자신에게 화가 나는 걸까? 그렇다고 하기엔 노래 속 화자는 너무 강인한 사람이다. 이는 마지막 가사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 생에 살아서
못 만난 들 어떠리


원곡에서는 자기 합리화, 또는 위로처럼 받아들여졌던 대목이다. 하지만 이 무대에서는 초연함을 섞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토록 처절하게 부르짖었음에도 진실로 못 만나더라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흡사 달관의 태도마저 느껴진다.

여기까지 도달했을 때, 불현듯 떠오른 시가 있었다.




만해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은 모르는 사람을 찾기 힘들 만큼 유명한 시이다. 해석 역시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님'을 독립으로 보는 시선을 차용하고자 한다. 이처럼 '임'을 단순한 연인이 아닌 대상으로 생각할 때 위에서 표현되었던 감정선들을 한층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다. 꽃(사랑)을 짓밟는 존재에 대한 분노, 그럼에도 피우고 말겠다는 의지, 죽음 이후에 만나더라도 그 의미가 퇴색되지 않을 존재까지도.


무대에서의 감정 표현 외에도 이 시가 떠오른 이유가 두 가지 더 있다. 첫 번째는 가사와 심상이 많이 겹친다는 점이다. <님의 침묵>에서 등장하는 '황금의 꽃', '사랑의 노래', '향기' 등과 같은 단어는 모두 야래향의 가사와 맥을 같이 한다.  

두 번째는 야래향이 수록된 앨범 소개글이다. 이 글은 심규선이 직접 작성하였고 아래와 같이 이 노래들은 시이자 음악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나는 당신이 이 노래들에 아주 찬란하게 충돌해 주길 원한다.
그러면 시와 일체인 음악의 혼연이
부지불식간에 당신을 다른 시공간으로 데려갈 것이다.




이렇게 긴 글을 작성한 목적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았지만 역시 답은 하나였다. 이 해석이 나의 마음을 울린다. 이 시선으로 무대를 보면 단순한 실연으로 받아들였을 때보다 훨씬 깊은 감동이 전해진다. 독립 운동가이기도 하셨던 만해 한용운 시인은 광복을 한 해 남겨두고 타계하셨다. 그분에게 평생을 염원하였지만 끝내 보지 못하였던 것, 그럼에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건 민족의 독립이었을 것이다.


모든 콘텐츠에 대한 해석은 자유롭다. 다르게 느꼈다면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오히려 시선이 통일되지 않을 때, 비로소 콘텐츠는 생명력을 얻는다. '폭풍의 언덕'처럼 광적인 사랑 이야기를 겹쳐 볼 수도 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는 노래일 수도 있다. 각자가 가장 큰 감동을 받는 아주 많은 해석이 존재할 것이다.


다만 그토록 다양한 생각이 떠오를 만큼 감명 깊은 콘텐츠는 결코 흔치 않다. 그런 점에서 이번 야래향 무대는 필자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마음을 움직인다는 의미인 '감동'을 주는 밴드, 터치드(TOUCHED)의 보컬이라는 게 새삼 실감이 난다.


앞으로도 눈부시게 이어질 밴드 터치드의 여정을 응원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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