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흰새결 Jun 18. 2024

당신과 내가 다르지 않다고 말할 때

리하들리카터, <뇌는 팩트에 끌리지 않는다> / 음율, <피차일반>

혹시 주관이 담긴 공개글을 올렸다가 뭇매를 맞아본 경험이 있는가? 도의적으로 맞는 내용인데도 감정적인 비난에 휩쓸리면 억울함은 배가 된다. 이런 상황을 대비한 방어 주문을 알려주도록 하겠다. 먼저 크게 심호흡하고, 본문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이면 된다.


"반박 시 님 말이 다 맞음."


아니 대체 글을 왜 쓴 건가. 하지만 놀랍게도 이 마법의 문장은 글이 재고될 확률을 높여준다. 사람들은 본인의 의견이 인정받았다고 느낀 후에야 비로소 상대의 의견을 검토할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에서 설득은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이치에 맞는 말이라 해서 반드시 설득력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이상한 말이지만, 과거 임금을 설득하지 못해 끌려나간 충신들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설득할 대상의 믿음과 반대되는 증거는 무시당하거나 오히려 극도의 반발심을 불러일으킨다.


<뇌는 팩트에 끌리지 않는다>의 저자, 리 하틀리 카터는 이처럼 설득에 있어 감정은 빠질 수 없는 요소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감정'은 여러 단계로 나뉜다. 억제 감정은 방어적일 때 나타나는 불안, 수치심, 죄책감으로 소통을 진행하기 가장 어려운 상태에 속한다. 다음 단계인 핵심 감정은 두려움, 분노, 슬픔, 기쁨 등이며 이들을 차분히 풀어나가면 4C 감정이라 불리는 차분함, 호기심, 확신, 연민에 도달할 수 있다.


마음의 문을 열었다면 이제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를 제시할 차례이다. 상대의 견해와 설득하려는 의견에 모두 부합하는 사실(fact)을 골라 묶는 작업이다. 언뜻 네모난 동그라미처럼 들릴 수 있으니 예시를 들어보겠다. 미국 사회엔 이슬람계 시민을 테러리스트로 보는 편견이 있다. 이에 대응하는 스토리는 그들 역시 자유주의를 수호하는 국민이라는 걸 강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리 하틀리 카터는 미군으로 근무하는 이슬람계 미국인의 인터뷰를 중점으로 내세웠다.


자, 이렇게 하더라도 매번 설득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이쯤 되면 모든 걸 내려놓고 '팩트로 조진다'며 통계 자료를 첨부하고 싶은 유혹에 휩싸인다. 다행히도 인내심이 바닥났을 때, 잠시 옥상에 올라가 듣고 내려올 수 있는 노래가 있다. 바로 음율의 <피차일반>이다.




https://youtu.be/1sT-sleWrG8?si=Rqmg2oDShV-Pq4Xh


통통 튀는 피아노 사운드와 청량한 음색이 새파란 여름 하늘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J-pop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단박에 매료될 것이다. 한 번만 들어도 저절로 박자를 맞추게 될만큼 친숙하지만, 동시에 신선한 매력도 가지고 있다. 앞에서 설명한 복잡다단한 과정을 명쾌하게 일축하는 쾌감이다.


서로가 다른 꿈을 꾸며 날아가
누가 뭐래도
할 수 있다는 믿음
아, 그걸론 부족해


혼자만의 믿음으로 한계를 느낀 주인공의 한탄으로 가사가 시작된다. 어떤 일이든 노력 없이 이뤄지는 건 없지만 때로는 그 이상으로 다른 이들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하다.


아무도 그런 꿈을 꾸지 않는다
그게 당신이 말한 꿈인가?
도대체 어떤 생각들을 지어내야
당당히 합격점을 받을 수 있나?


아무래도 설득이 쉽지 않아 보인다. 사람들은 화자의 목표를 인정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평가한다. 충분히 화가 날만한 상황이다. 누구라도 소중히 여기는 게 폄하당하면 방어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반전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당신이 믿지 않은 것을 보여줘
믿을 수 있게 할게


상대의 믿음에 반발하지 않고 오히려 수용적인 어조로 소통을 시도한다. 설득의 대가, 리 하틀리 카터도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칠 대목이다. 자기 확신을 기반으로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며 상대에게 호기심과 연민을 갖는 게 4C 감정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믿지 않는 당신도 내일을 꿈꾸잖아
여전히 다를 게 없네
우린 피차일반이네


그야말로 화룡점정이다. 상대가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를 찾았다. 처음부터 '서로가 다른 꿈을 꾸며' 날아간다고 말했다. 같은 방향까진 보진 않더라도 각자가 원하는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건 동일하다. 결국 그들의 꿈을 인정하기 때문에 화자의 꿈도 인정받게 된다. 그 점에서 우리는 피차일반이기 때문이다.




유튜브 알고리즘의 추천을 받아 노래를 듣다보면 대부분의 곡들은 그저 흘러가고 만다. 그럼에도 이따금씩 작업을 내려놓은 채 다음 가사에 몰두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기도 한다. 음율의 <피차일반>이 그랬다. '나의 감정과 생각이 옳다'고 소리치는 곡들 사이에서 신선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당신과 나는 정말 다른가? 이 세상은 흑백으로 이뤄져 있지 않은데 중간지대를 말하는 일은 한없이 어렵게만 느껴진다. 자칫하면 상대의 주장에 굴복하는 것처럼 비춰질까봐 경계하는 부분도 있다. 사실 그런 견해를 가진 상대를 존중하는 것과 그 견해에 동의하는 것은 명백히 구분되어야 함에도 그렇다.


만일 저마다 자신이 옳다고만 외친다면 사회는 '목소리가 큰 쪽'으로 굴러가기 시작한다. 다수가 말하는 진리가 심지어 논리적인 증거조차 없다면 사태는 심각해진다. 태양은 여전히 지구 주위를 돌고 여자는 투표를 할 권리가 없으며 고양이는 영혼이 없기 때문에 천국에 가지 못한다. 그러니 지금은 마음을 다잡고 다시 한 번 말할 때이다. 어느 면에서 분명 당신과 나는 같다고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알 수 없는 타인에 대한 사랑, 또는 공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