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거리
너한테 나는 뭘까?
내 존재의 의미를 상대에게 묻곤 하였다. 타인의 마음에 차지되는 나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었고 그걸 혼자 고민하느라 끙끙 마음을 끓여댔다. 그러다 마음이 넘쳐 오르면 물었다. "너한테 난 어떤 의미야?" 다정하게 굴지만 연락은 잘되지 않던 남자에게, 내가 소중하다면서 필요할 때만 나를 찾던 친구에게 물었다. 심지어 늘 응원과 지지를 보내준 남자친구나 나름의 방식으로 날 아껴주던 친구에게도 확신이 들지 않아 같은 질문을 던졌다.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내어가며 질문을 던졌음에도 대답이 기대하던 대로 돌아오지 않아 울었다. 날 진심으로 대했던 사람들은 내 질문에 되레 상처를 받기도 했다. 사람을 많이 사랑했던 만큼 나는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고 이를 통해 깨달은 바가 있다.
관계에서 나를 괴롭게 하는 건 스스로 만들어낸 두려움과 불안이었다.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내가 받는 마음이 진짜가 아니면 어떡하지?'와 같은 의심과 걱정 말이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생각을 걷어내고 나면 거기엔 진실이 남는다. 내가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못했던 아픈 진실이, 조금 더 소중하게 여겨주지 못했던 고마운 마음이 있다. 그래서 나에게는 용기가 필요했다. 상대의 마음이 나와 같지 않음을 받아들일 용기, 상대가 주는 사랑이 진짜임을 믿고 보는 용기 말이다. 어떤 결과든 받아들일 준비가 된다면 그때는 스스로의 의미를 외부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 상대 마음 알아맞히기 퀴즈로 울고 웃으며 보낸 시간 덕에 나는 더 이상 관계 속에서 나를 찾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타인에게 내 존재의 크기를 질문하지 않는다. 마음의 방향과 크기가 다를 때 받아들인다. 물론 아쉽고 씁쓸할 때가 있지만 얽매이지 않는다. 상대에게 내가 별로 중요치 않은 사람일 수 있다는 걸 인정한다. 내 기대와 달라도 상대만의 방식으로 나를 위해준다는 것을 믿는다. 불안에 속아 나 이외의 것들에 질척이지 않는다. 그렇게 무관심은 무디게, 관심은 귀하게 받게 되었다.
이제야 나는 비로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질 준비가 되었다. 밖이 아닌 안으로, 정말로 중요한 존재에게 던질 핵심 질문말이다. "나에게 나는 어떤 의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