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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로파 Jan 15. 2024

그대들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

<리빙: 어떤 인생>과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를 보고

 영화관을 나왔더니 손바닥 안에 폭격 같은 질문이 남아 있었다. <리빙: 어떤 인생>(2023)를 오전에,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2023)를 저녁에 관람한 날이었다. <리빙: 어떤 인생>의 주인공 윌리엄스 씨는 런던의 시청 공무원으로 관료주의의 현신 같은 존재였다. 어느 날 벼락같이 시한부 통보를 받고 그는 한편으로 미뤄뒀던 놀이터 계획서를 꺼내 든다. 그리고 관련 부서를 찾아다니며 아이들을 위해 버려진 공터를 놀이터로 탈바꿈한다. 한편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는 피아니스트 류이치 사카모토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피아노 연주를 담아달라고 하며 시작된다. 영화가 개봉하고 3개월 뒤 그는 죽었지만 스무 곡의 피아노 연주가 남는다.


 두 영화는 죽음이 임박했을 때 세상에 남긴 것들을 조명했다.
두 번의 죽음을 보니 ‘죽음 후에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하는 질문이
내 속으로 스며 들어왔다. 곱씹을수록 막연하게 무거워서 일단 입을 다물었다.

 이대로 두면 답이 나올 때까지 머리에 맴돌 것 같아서 죽고 나서 내게 무언가 남긴 사람들을 떠올렸다. 가장 가까운 죽음은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에게 나는 고유한 인격보다는 막내아들의 왼손잡이 딸에 가까웠다. 매번 나는 밥상에서 왼손으로 숟가락을 썼고, 할아버지는 매번 ‘오른손은 쓰지 않느냐’고 물어보셨고, ‘왼손이 더 편하다’고 답을 하면 더 이상 주고받는 말이 없는 관계였다. 그러다 어느 날 밥상에서 왼손 이야기 대신 동치미 국물을 권하셨다. 오른손도 동치미 국물도 좋아하지 않던 나는 ‘맛이 없을 것 같다’고 거절했는데 할아버지는 본인의 숟가락으로 말없이 동치미를 한 숟갈 떠서 내미셨다. 얼떨결에 한 입을 호로록 받아마셨다. 짭조름하고 어딘가 시큼하면서, 꼴깍 넘어가는 한 숟갈.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시원함과  모자랄 데 없는 담백함. 그때만큼은 막내아들의 왼손잡이 딸이 아니었다. 감칠맛 나는 동치미를 먹은 손주였다.


 영원할 줄 알고서 약간씩 낭비하던 삶을 몰수당할 시간이 왔을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혀끝에서 동치미 국물맛이 난다. <리빙: 어떤 인생>에서 놀이터를 남긴 윌리엄스 씨처럼 지역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지 않더라도, 류이치 사카모토처럼 예술의 생명력이 무엇인지 보여주지 않더라도, 죽음 뒤에 어떤 이에게 동치미 국물로 남으면 충분하지 않겠냐고. 그렇게 생각하니 죽음은 동치미 국물만큼 담백해졌고 삶은 그것보다도 더 단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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