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작가의 사회생활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보고
조직생활 8년차, 텀블러를 바꾼 지는 네 번째. 노트북의 ㄹ과 ㅓ의 오돌토돌 튀어나온 부분을 쓱싹쓱싹 만져본 뒤 본격적으로 메일 확인. 점심 식사 후 사무실로 돌아와 마우스와 키보드를 만져대다가 퇴근. 앞으로 남은 조직생활이 얼마나 남았지. 20년쯤? 아찔하다. 이만하면 조직생활을 청산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나는 바른생활이나 슬기로운생활 말고 즐거운생활이 당긴단 말이다. 이런 마음이 처음 들었던 11개월 차에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다시 봤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보며 울기도 웃기도 하게 되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LIFE' 잡지사 사진 현상부에서 일하는 월터가 인생에서 지루함을 느끼고 속으로 판타지적 상상을 하며 시작된다. 상상 속에서 그는 히말라야 설산을 정복하고 돌아와 옆 팀 여성과 키스하는 등산가이고, 상사와 인형을 가지고 자동차 추격신을 펼치는 갱스터다. 물론 현실에서 그는 양복을 입고 투명인간처럼 8시간씩 사진을 현상하는 직장인일 뿐이다. 시대가 바뀌어 잡지사는 폐간을 앞두게 되고 실수로 마지막 잡지의 표지 사진 필름을 잃어버린 월터는 사진작가에게 사진 필름을 받으러 갑작스럽게 모험을 떠나게 된다. 사진작가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탐험가인 덕분에 월터는 상어도 만나고 화산폭발도 경험하고 하여튼 본인의 상상보다도 더 스펙터클한 경험을 한다.
월터도 오랜 시간 동안 고민했을 것이다. 얼마나 더 다녀야 할까? 내 생활은 왜 멋지지 않고 이렇게 지긋지긋하게 지루하지? 그렇다고 퇴사하면, 사진 인화 말고 내가 할 줄 아는 게 있나? 쳇바퀴 질문 속을 맴돌다 잡지사가 폐간할 때까지 남아있던 걸 테다. 월터의 피곤한 표정을 보니 안온함을 포기하지 못하는 내가 떠올라서 마음이 조금 구겨졌다. 적당히 살면서 스스로에게 매일을 빚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조바심도 났다. 영화 속 월터는 작가가 기승전결을 책임져주지만 내 인생의 스포트라이트는 내가 책임져야 하니까 뭐 하나라도 해야 하겠다 싶었다. 그렇게 요가를 등록하고 투자 책을 뒤척이는, 아, 흔들리는 청년이여.
안다 알아. 나도 안다. 불꽃이 켜질 때는 여러 번 부싯돌을 치고 스파크가 번쩍인다. 그렇지만 한번 켜지면 불꽃은 은은하게 일렁일 뿐이다. 그렇지만 은은하다고 연소하고 있지 않은 건 아니다. 보이는 건 고고한 불꽃뿐이지만 산소와 물이 계속 소모되고 발생하고 있다. 생활감도 이와 같을 것이다. 지루해서 몸을 배배 꼬아도 몸에서 소모되고 쌓여가는 근육이 있다. 그러니 영화에서 폐간 잡지의 표지 사진이 평범하게 일하고 있는 월터의 모습이었다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오열하는 거겠지. 그럼에도 자주 지루하고 가끔 소중하다, 바른조직생활은. 언제 청산해야 하나. 당신은 언제 청산할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