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당모의

창업을 비영리로 한다고? 머리가 어떻게 된거 아냐?

by 리처드킴

결국은 도망치듯이 유스호스텔을 빠져나와 비영리인 NGO를 창업하며, 남들이 모두 한다는 스타트업을 시작하였다. 적당한 사무실을 얻은것도 아니어서, 몇 명이 노트북만 들고, 날씨가 좋으면 공원이나 놀이터에서 만나고, 비가 오면 남의 사무실에서 일 좀 봐주는 척 하면서 우리 일을 하며 지내는데, 이건 무슨 남파된 간첩도 아니고, 모양새가 좀 그렇다. 막상 하는 일은 너무 한가하여, 사실 글로벌 자원봉사 캠프 기획하는 것은 하루에 삼십분 정도이고, 그것보다 우리들의 미션이나 기관소개서에 자꾸 집착하게 되었는데 아마 별볼일 없는 우리를 포장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강했나 보다. 그리고 비전이니 핵심가치니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연구하다보니, 몇 십개의 단어가 우리들 입에 자꾸 오르내려지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많이 나오는 말이 여행, 자원봉사 그리고 꿈 등이었는데, 이거를 그냥 영문으로 트레블 볼룬티어 드림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각 단어의 뒤에다가 떠나다, 자원봉사 하다, 꿈을 가지다 등의 동사를 붙이기도 하고 그랬다. 어쨌든 이렇게 어영부영 있다보니, 지인들에게 가끔 찾아오시어, 격려금을 주시기도 하고, 밥과 술을 사주시기도 하던 중, 어느분이 우리들의 로고로 만들어서 명함을 주겠다고 충격적인 제안을 하셨다.

“명함이라, 가질수만 있다면 너무 가슴 설레는 물건일 것이야”

문제는 우리들의 이름이었다. 우선 위에 언급된 단어를 모두 붙여 보았다.

“트레블 볼룬티어 드림은 약간 긴 것 같은데?, 그냥 트레블 드림으로 할까? 아니면 영어약자로 써서 티브이디로 할까?”

고민하다가, 강서구의 어느 NGO 사무실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 입사하려고 면접 보러온 키 큰 키다리 여자청년을 만나게 되었는데, 작년에 아이슬란드 및 유럽 여러 국가의 자원봉사 캠프를 거의 휩쓸고 돌아온 여자청년이었다. 또한, 그걸로 모자라서 본인의 후기를 무슨 자서전같이 100페이지 넘게 남겼는데, 작고하신 김정일 위원장도 울고 갈 지겨운 자서전급 역사서 같은 여자청년 기행기다. 이 여자청년은 H로 생계를 위하여 화장품 알바등으로 먹고사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H가 우리들이 무수히 끄적거려 놓은 글자중에 유독 ‘떠나리’라는 말에 부르르 떨더라는 것이다. 그 광경을 그냥 지나쳤어야 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놓치지 않았던 우리의 킴이 “우리 이름을 떠나리로 할까?”라고 주변에 말을 꺼냈다. 그랬더니 트레블 드림이니 TVD보다 훨씬 더 긍정적인 대답들이 나왔다. 바로 ‘떠나리’가 탄생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시드니

새 명함의 기쁨도 잠시 떠나리 구성원 모두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든 것은 현실이었다. 요새 간첩들은 생계형으로 알바도 한다던데, 우리도 꼭 그걸 따라할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배가 고픈 관계로 번역일이나 마트 판매 알바 등을 통하여 용돈벌기도 하였다. 이때 합류한 남자청년이 한명 또 있었으니, 이름이 B로 말이 너무 많아서 사람들에게 다단계 의심을 종종 사곤 했던 남자청년이었다. 이 와중에 우리 떠나리의 소문이 저 바다 넘어 호주까지 나서 초청장이 발부되었다.

“소문이 해외로 나서 이번에 시드니 회의 초청이 왔는데 누가가지?”

사실 언뜻 이 말을 들으면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청년들은 속으로

“비행기 값은 내주나? 에이, 내가 안가도 누가 가겠지?”

라고 묵묵부답이어서, 결국 킴이 다시 말했다.

“그럼 내가 가볼게.”

모집자 1명에 지원자 1명이라는 경쟁률도 없는 호주행 티켓을 거머쥐고, 킴은 이리하여 결국 2015년 NGO 시드니 정기총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하게 되었다. 가기전에는 영어 때문에 고민을 하였는데, 별로 고민할 필요도 없었는 것이, 24시간 주구장창 영어로만 말하니, 나중에는 이해가 안 되어도 그냥 고개만 끄덕거리고 있는 부처님같은 나 자신을 발견한 킴의 모습이었다. 이렇게 회의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2주동안 계속해서 진행되지만, 중간 중간에 쉬는 시간은 있다. 독일에서 온 여자 대표가 물었다.

“근데 왜 NGO를 만든거야? 내가 아는 한국은 돈을 버는 게 중요하고, 이런 NGO 같은 창업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는데,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질문을 받은 뒤 답하기를

“우리가 좋아하는 캠프를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개최하려고 하니, 조직이 있어야 할 거 같아서 만들었어. 사실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사는 사람이지만 때론, 아닌 것 같다고 느낄때도 많아”

라고 말했더니 독일 애가 다시 말한다.

“정말 진심으로 너희를 응원해 주고 싶어, 근데 정말 쉽지 않은 길일거라는 생각이 드는군.. 내가 도울 일 있으면 꼭 연락해”

같이 밥도 먹고 잠도 자는 이 독일애가 국제NGO 유럽본부에서 한자리 하고 있는 신분이 약간 높은 분이었다는 사실도 놀라운 일이었다.

IMG_0015.JPG 국제개발협력 국제회의에 우리는 참석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리고 국제지부설립이 추진되었다.


성남에서 국제비영리법인 설립하다.

어린시절 동네 개들이 몰려다니듯이 스타트업이라고 떠들면서 정신없이 뛰던 이들은 2016년 어느 추워지는 가을날 경기도 성남시청 뒤쪽으로 조그마한 산속마을, 사송동이라는 동네에 모였다. 그 어린시절 이곳의 동네이름이 사람사 송장송이어서 밤마다 송장이 돌아다니는 동네라고 불렀던 이곳에서, 이제는 어엿한 청년과 성인이 되어서 다시 모였다. 사무실이라고 하기엔 매우 비좁은 원룸에 청년협동조합 설립총회를 하려고 사람들이 꾸역꾸역 밀고 앉았는데, 기존의 활동 청년들 외에, 이 청년들에게 기꺼이 몇백만원이라는 후원금을 내어놓아주신 주변분들까지 같이 모였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대만등 외국까지 퍼져서 외국청년들도 이 성남시의 오지까지 와서 앉아있다. K가 운을 뗐다. “성남의 이 사송동 오지까지 자리를 해주신 분들게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비록 성은 다르지만 글로벌 캠프의 활성화라는 마음으로 의를 맺었습니다. 이 창립총회를 시작으로 마음과 힘을 합해 대한민국의 모든 청년들이 여행과 자원봉사로 꿈을 가지는 그날까지 달려보고자 합니다. 함께 해주시는 조합원님들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이리하여 K가 이사장이 되고, 나머지 청년들이 팀장직위를 받고 응원해 주신분들은 조합원이 되며 법인이 설립되었다. 말이 거창한 법인이지, 결국은 몇 명이서 직위를 나눠가지고 마구잡이 식으로 일을 하는 것은 매한가지인데, 하늘이 도우시는 덕분으로 H가 아이슬란드 자원봉사여행 프로그램으로 이슈를 일으키고, 모두들 열심히 분발하여, 2016년 12월에 기재부로부터 우수상을 받으며, 처음으로 현금을 버는데 성공하였다. 돈도 벌었겠다, 사무실도 제법 번듯한 차들이 다니는 거리로 옮기고, 명함도 새로 파면서 한껏 기분이 오르던도중 그러나 좋은일도 잠시, 대만으로 해외자원봉사 여행을 만들어 놓은 타이페이 프로그램이, 악성 택시기사로 인해 대한민국을 도배하게 되어, 떠나리도 휘청거리게 되었다. 에이 그럼 그렇지, 그냥 글로벌 보드게임이라도 만들어볼까? 하고 이렇게 저렇게 놀던 2017년 어느 봄날, 퇴근전에 이상한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모기업과 4년제 6개대학이 연계하여 체코로 큰 항공기를 띄우는 ‘체코 해외자원봉사단’ 사업의 제안이었다. 너무 큰 사업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차피 이렇게 있다가 날씨 추워지면 다시 거리로 나가야 하는데, 무조건 Go~”라는 생각으로 제안서를 넣어봤다. 그런데 이 큰 사업에 떠나리가 덜컥 우선 사업자로 선정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업을 수행할 능력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떠나리 청년들이 어떤 사람들이냐? 생전 비행기 한번 안타본 청년들도 구워 삶아서, 해외자원봉사를 보내는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성남시청으로 달려가서 무조건 도와달라고 떼를 썼다. 그리고 ‘물갈 때 배간다’라는 말을 새기며, 이참에 아예 비영리법인인 사회적협동조합까지 내달리기로 결정을 하였다.

“우리가 사회적 협동조합이 되어 있으면 더욱 모른척 하지 못할것이야!”

얄팍한 잔머리의 떠나리 청년들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우리가 원했다고 해도, 또한 장사가 되지 않는 영리법인이라고 해도, 그래도 비영리로 전환하는 것은 기분이 조금은 이상할진데, 참석한 조합원들이 하나같이 행복해하고 웃으며 전환총회 기념사진을 찍은 것을 보면, 이 떠나리를 만든 사람들은 정말 똘끼 하나로 똘똘 뭉친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되어졌다. 2017년 대한민국의 현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여 명문대학교를 들어가야 하고, 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가 실패하여 어디 한강다리에서 뛰어내리거나, 아니면 남은 여생을 고시원에서 쓸쓸히 보내야 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인데, 이 돌+아이 떠나리 조합원들은 지네들이 낸 돈이 고스란히 기부금을 쓰이는 것도 모른체 밤낮으로 뼈빠지게 일하면서도 웃으면서 사진을 찍다니 말이다. 이렇게 청년 사회적 협동조합 TVDcoop(브랜드명 떠나리)이 비영리 법인으로써 출발을 하게 되었다.

IMG_1374.jpg 조선일보에도 나가고, 상도 받고, 초반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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