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22일, 밤 열한 시가 넘어 토론토 피어슨 공항에 내렸다. 열네 시간을 날아왔는데 떠나온 날과 날짜가 같았다.
터질 거 같은 이민가방 네 개를 질질 끌고 각자 배낭 하나씩 메고 있으면서도 이것들이 무겁다거나 성가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럴 겨를이 없었다.
그 순간, 우리가 의지할 건 일주일 간 지낼 곳의 주소가 적힌 종이 한 장뿐이었다.
트렁크를 열어 캐리어 네 개와 배낭 두 개를 테트리스 하듯 차곡차곡 끼워 넣는 택시기사의 행동에는 표정이 없었다. 차에 올라 타 낯선 듯 익숙한 이트 냄새를 맡고 나서야 창 밖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익숙한 건 오직 맥도널드 간판 하나뿐이었다.
30 분쯤 달려 기사는 한적한 주택가 한가운데에 위치한 삼층짜리 벽돌집 앞에 차를 세웠다. 그는 아까처럼 지체 없이 짐 여섯 개를 꺼내 주고 표정 없는 얼굴로 금방 사라졌다.
자정이 넘은 낯선 밤 속에 우리 둘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저 안에는 어떻게 들어가야 하나 막막하기만 했다.
하는 수 없이 집주인에게 문자를 남겨보았다. 바로 답장이 왔다. 휴대폰 액정에는 자동 키 번호인 숫자 네 개만 달랑 떠있었다.
2층 제일 끝 방이 우리가 캐나다에서 머물게 되는 첫 공간이었다.
남편은 27킬로가 넘는 이민 가방을 들고 네 번 계단을 올랐다. 노란 백열등 아래, 잘 정돈된 침대와 이불이 눈에 들어왔다. 둘이 나란히 침대 끝에 걸쳐 앉았다.
이제야 배가 좀 고팠다.
아까 길 건너 아직 영업하고 있는 중국집을 봤었다. 한 시가 넘었는데 손님이 꽤 있다.
사람들은 티브이를 마주 보고 앉았다. 잠깐잠깐 티브이 모니터를 볼 때 말고는 아무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우리는 볶음밥 두 그릇을 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종업원이 주문한 음식을 가져왔다.
그는 우리가 건넨 인사를 받기는커녕 우리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우리도 가끔 고개를 들어 중국 방송을 초점 없이 바라보다가 다시 머리를 처박고 밥을 퍼먹었다.
어서 숙소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비행기 냄새, 이 낯선 도시의 냄새와 볶음밥의 기름 냄새를 씻어버리고 싶었다.
뜨거운 물아래 한참 서있다가 아직 한국 집 냄새가 배어있는 수건으로 몸을 닦고 옆 방 누군가의 머리카락과 내 것이 뒤엉킨 하수구를 한참 쳐다보았다.
스트리트카 정적 소리만 이따금씩 들려오는 낯선 방에 누워서 뒤척이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새벽 다섯 시에 눈이 떠졌다.
온몸을 칭칭 감싼 후 집을 나섰다. 동이 트고 새로운 볕 아래서 만난 이 도시는 어제의 첫인상과는 달랐다.
중국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인 거 같다. 골목마다 중국 상점들로 가득하다. 만둣집 직원이 가마솥만 한 냄비 뚜껑을 열자, 하얀 김이 구름처럼 뭉개 뭉개 솟아오른다.
눈 아래까지 칭칭 감아올려했던 목도리를 내리고 콧구멍을 벌렁벌렁 거리며 냄새를 맡아보았다.
만둣집 옆 아시안 마켓엔 막 배달 온 채소를 정리하는 종업원들과 장 보러 나온 손님들이 뒤섞여 아침부터 북적거린다.
그들의 활기찬 아침을 보고 있자니 우울했던 마음도 조금씩 녹기 시작했다.
용기를 내어 마주치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그들처럼 미소 지어본다.
은행 건물 앞에 섰다. 계좌를 트기로 했다. 이곳에 도착한 후 첫 일정이다.
단지 계좌 하나 여는 건데 대출심사라도 받는 듯 긴장된다.
덩치 큰 동양 남자가 활짝 웃으며 우리에게 손을 내민다.
남편은 직원이 요청하기도 전에 학생비자 서류와 여권 사본이 담긴 봉투를 올려놓았다. 남자는 봉투는 열어보지도 않고, 너네 여기에 언제 도착했는지 서울에서 살았는지, 부산은 대체 어떤 곳인지 물어본다.
남편도 나도, 그제야 웃으며 답답한 패딩을 벗고 토론토가 많이 춥다고 하던데 얼마나 추운 거냐 물으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가 품고 있던 극도의 긴장감이 풀어지기 시작한 건 아마 그 순간이었던 거 같다.
눈을 마주치고 웃으며 인사를 주고받고, 쓸데없는 대화를 시작하자 이 낯선 땅에서 어떻게든, 무엇이든 시작을 좀 해볼 용기가 생기는 것이었다.
매일 아침, 나의 공부와 시험 진행 상황을 체크하던 학교 앞 스타벅스 보라색 머리 직원,
맛있는 파스타면을 알려주는 마트에서 만난 중년 여성, 샌들 어디서 샀냐고 물어보던 지하철 옆자리 승객, 한국은 어쩜 이렇게 질 좋은 옷을 만드냐며 미안한데 목덜미 안 태그를 좀 봐도 되겠냐 묻던 카페 옆자리 앉았던 여학생.
5월에 내리는 눈 따위에 겁먹지 않고 토론토를 있는 힘껏 사랑했고, 지금까지 같은 마음으로 애정을 쏟고 있는 이유는 이방인에게 선뜻 손을 내밀고 옆자리를 기꺼이 내주었던 사람들과 그들과 나눈 스몰토크 때문일 것이다.
스몰토크는 결코 작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