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어스 마더 <사운드 오브 메탈>
누구나 삶에서 구원을 바라는 순간이 있다. 자신에게 구원이라 생각되는 길을 발견한 인간은 기회가 찾아와도 그 새로운 가능성을 보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발견한 믿음에 대해 이 길을 유일한 구원의 경로로 지정해 놓고 강박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강박은 구원을 위해 반드시 겪어야 하는 고요함과 고독의 세계를 소음으로 가득 채워버린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건너뛰셔도 됩니당 :-)
영화의 시작은 화려한 헤비메탈 공연 현장이다. 주인공으로 보이는 남자 루벤은 헤비메탈 밴드에서 열정적으로 드럼을 친다. 다음날 캠핑카에서 보컬인 여자친구 루와 아침을 맞이하는 루벤은 녹즙을 갈아 마시고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한다. 루벤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는 여자친구를 위해 무려 4년 동안이나 담배와 헤로인을 끊는다. 이렇게 건강과 사랑, 꿈을 모두 성실하게 이루어 나가고 있는 주인공에게 찾아오는 건 거대한 성공이나 로맨틱한 사랑의 마무리 대신 이명이 찾아온다. 여자친구 몰래 병원을 찾아간 루벤은 큰 소리에 노출되면 영영 청력을 잃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듣지만 다음 장면은 루벤의 공연 현장으로 이어진다. 결국 공연을 하고 있던 루벤(주인공)은 공연 도중 이명과 함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자 드럼스틱을 내던지고 밖으로 나가버린다.
잃어버린 청력을 되돌리려면 8만 달러 정도의 돈이 필요한데 두 사람에게는 당장 수술을 위한 돈이 없다. 루벤은 여자친구인 루의 소개로 청각 장애인 공동체로 향하게 된다. 청각 장애 공동체에 도착한 루벤은 조라는 남자와 대화를 나눈다. 공동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휴대폰 사용도 외부로의 출입도 불가능하다. 당연히 루와 만나는 것도 불가능 하다는 것을 듣게 되자 애초에 예정된 투어를 통해 돈을 마련할 생각이었던 루벤은 공동체에 들어가 생활하는 것을 완강하게 거부한다. 하지만 루벤이 더 망가질까 걱정하는 루는 결국 루벤과의 작별을 결심하고 루벤을 공동체로 보낸다. 루벤은 이방인의 위치에서 공동체에 적응하는 것을 거부하지만 조금씩 마음을 열고 청각 장애인으로 사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루벤은 인터넷이 금지된 공동체 안에서 매일 조의 사무실에 몰래 들어가 루와 메일을 주고받는다. 그러다 루가 파리에서 공연하는 영상을 보게 된 루벤은 청력을 되찾는 수술을 감행하기로 결심한다. 그의 전부였던 악기와 음향기기들, 루와의 추억을 대변하는 캠핑카까지 팔게 된다. 수술을 마치고 돌아온 루벤은 조에게 공동체에서 나가라는 말을 듣게 되고 청력이 활성화되는 4주 동안 떠돌이 신세가 된다. 귀에 기계를 연결하고 처음으로 청력을 활성화시키는 자리에서 루벤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돌아온 청력이 이전 같지 않다는 점이다. 사람들의 목소리는 기계음처럼 들리고 소리들은 끊겼다 들렸다를 반복한다. 청력이 완전히 돌아올 것이라 생각한 루벤의 믿음이 배신당하는 순간이다.
청력을 활성화한 루벤은 여자친구에게 향한다. 초인종을 누른 루벤을 맞이하는 건 루가 아닌 그녀의 아버지다. 루벤은 자신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던 그녀의 아버지에게 식사를 대접받으며 루를 잘 챙겨줘서 고맙다는 말을 듣는다. 얼마 뒤 집에 도착한 루는 루벤을 반갑게 맞이한다. 그녀의 집에서 파티가 열리고 청력만큼이나 모든 게 예전 같지 않음을 느낀 루벤은 묘한 감정을 느낀다. 날이 밝은 다음날, 교회 앞 벤치에 앉아있는 루벤에게 종탑에서 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장치를 달고 있는 루벤에게 종탑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어떤 성스러운 느낌이나 해방감을 주지 못하는 소음에 불과하다.
영화에서 루벤은 전혀 다른 세 가지의 세계를 드나든다. 첫 번째 세계에서 루벤은 청력을 잃기 전까지 음악을 언어로 사용하는 예술의 세계에 속한다. 이 세계는 풍부한 소리들로 가득 찬 세계다. 루벤은 이 소리들이 자신의 생활을 더 나아지게 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음악과 여자친구는 구원과 같은 존재들이다. 마약 중독자였던 루벤이 헤로인으로부터, 각종 해로운 생각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어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루벤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며 루벤을 둘러싸고 있던 이 소리들은 루벤을 떠난다. 루벤이 긍정적인 미래를 그리며 의심 없는 믿음 가지게 해 주던 소리의 세계는 루벤을 배신한다.
청력을 잃게 된 루벤은 소리가 없는 고요의 세계로 들어간다. 고요의 세계는 루벤에게는 절망의 세계다. 고요의 세계에서 루벤은 청력을 되찾기 위한 수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음악의 세계에 속해있던 모든 물건들을 모두 정리한다. 루벤은 여전히 귀만 고친다면 자신이 음악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여자친구와 다시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계속해서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루벤은 청각 장애인 공동체에서 이러한 믿음과 전혀 상반된 믿음을 전제로 생활하는 사람들로 둘러싸인다. 청각 장애는 문제가 아니고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소리가 없는 고요함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다.
루벤이 온갖 소리로 둘러싸인 세상을 당연한 것처럼 살았던 것과 이들이 소리 없는 세상에서 고요함 가운데 자신의 믿음을 마주하는 것은 별반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이곳에서 루벤은 이방인일 뿐이다. 루벤이 청력을 잃은 것은 지구라는 행성이 더 이상 이전과 같은 행성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루벤은 언어부터 행동 방식까지 모든 것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다. 이야기에서 개인의 변화는 결국 세계의 변화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하나라도 바뀐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행성에 놓이게 된다. 같은 지구라도 말이다. 루벤은 이렇게 전혀 달라진 침묵의 세계에서 침묵의 언어를 배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가면서도 루벤은 자신이 청력을 되찾았을 때의 구원감과 해방감에 대한 믿음을 강박적으로 지켜나간다.
루벤이 결국 수술을 받은 뒤 마주하는 세계는 믿음과 구원감에 대한 박탈감으로 채워진 소음의 세계다. 청력이 온전히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에 대한 박탈과 지금보다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에 대한 박탈은 그의 귀로 들어오는 소음으로 치환된다. 자신이 확신한 믿음의 끝에 구원대신 절망이 자리 잡고 있는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조는 루벤에게 공동체를 떠나 달라는 말을 하며 "지금 네 모습은 영락없는 중독자 같아."라는 말을 한다. 우리가 구원이라 생각하는 어떤 일이나 믿음에 대해 집착을 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어느새 그 한 가지 가능성에 중독이 된다. 중독이란 본디 경험에 의한 확실한 보상을 기대할 때 생기기 마련인데 가능성에 대한 중독은 불확실한 보상에 대한 기대로 생기기 때문에 해독제를 찾을 수 없다.
루벤은 벤치에 앉아 교회의 종탑을 바라본다. 종탑에서는 예배시간을 알리는 듯한 종소리가 울린다. 루벤의 귀로 들어오는 건 종탑의 아름다운 소리가 아닌 찢어질듯한 소음뿐이다. 종탑에서 들리는 소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원에 대한 믿음과 기대감을 가지게 하는 소리다. 하지만 이미 자신이 확신하던 믿음에 배신을 당하고 구원에 대한 절망감을 맛본 루벤에게 이 소리는 루벤이 다시 한번 이방인이 됐음을 알리는 소리가 된다. 결국 종소리가 울리는 순간에 루벤은 귀에 얹어져 있는 장치를 제거하고 침묵의 세계로 돌아간다. 루벤이 공동체에 있을 때 조는 루벤에게 한 번이라도 고요함을 맛본 적이 있는지 물어본다. 구원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있던 루벤에게는 모두가 잠들어있는 새벽도 고요함을 주지 못하고 머릿속에 불필요한 소음을 떠다니게 했지만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 루벤은 이 진정한 고요함을 마주하고 이해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구원이라 생각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만 이해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인정하는 순간 영화는 끝나고 루벤의 삶은 다시 시작되도록 영화는 종소리 뒤에 이어지는 고요함으로 끝이 난다.
이 영화가 탁월한 점은 이 고요의 세계를 관객들이 고스란히 체험하게 한다는 점이다. 영화를 보며 영화의 사운드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청각 장애인들이 느끼고 있을 침묵의 세계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