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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Jul 25. 2022

태어나서 처음으로 - 16. 이별한 내 친구에게

23살, 난생처음 홀로 떠난 교환학생

https://youtu.be/EJjzKs-WAnA

오늘의 영상

안녕 아크리비!


오늘 기분은 좀 어때, 괜찮아? 어제 너가 우는 걸 보니, 마음이 편치 않더라. 우리 방의 에너지를 책임지던 너가, 그리도 서럽게 울던 것은 처음이라 더 그랬나봐. 그래서 자세를 고쳐앉고 뭐라 위로해야 할 지 고민하던 순간에 깨닫게 되었어, 나도 너랑 비슷한 순간이 있었다는 것을.

초등학교 때 부터 알았고 고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가 있었어. 안 지는 10년, 친해진 지는 4년 정도 되는 친구였어. 고등학교가 시작될 즈음 친해져서, 내 고등학교의 모든 순간에는 항상 그가 있었어. 매일 같이 공부하고, 놀러가고, 장난치고. 그 사이에서 나는 점점 그에게 의지하게 되었던 것 같아.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도 친했던 우리와 다른 친구들은, 여름에 여행을 가기로 했어. 여행을 떠나기 1주일 전, 우리가 있는 채팅방에 그가 한마디를 올렸지.  

"나 근데 이번 여행 못갈 것 같아."

처음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럴 수 있잖아, 안타깝지만 사정이 있어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머쓱하고 미안한 순간. 그런데 문제는 못가는 이유였어.

"00이랑 여행가기로 했어."

이해가 서운함으로 바뀌는 순간은 그 때였어. 물론 나는 그때 누군가에게 화를 내 본 적도 없어서 어떻게 이 말을 해야할 지 몰랐어. 나 말고 다른 친구가 서운함을 강하게 표현했고, 우리는 많이 다퉜지.

그 동안 난 많이 울었어.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그 관계가 나만 놓으면 끝나는 관계라는 것을 내가 깨닫게 된거야. 막상 그 친구한테는 얘기도 못했으면서, 그렇게 많이 울었어.

그에게 강하게 화를 낸 친구는 그와 더이상 연락하지 않았어. 이제 완전히 남이 된 거지. 그걸 보고 나니까 더 그에게 말을 못하겠더라. 그와의 관계가 나빠지면, 그와 함께한 시간들도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았거든. 두려웠어. 나의 추억과 우정의 대상이던 그의 소멸은, 나의 모든 순간의 추락 같아서.


하지만 지금의 내가 생각하기로, 그때 내가 했던 생각은 정말 웃기지도 않아. 말도 안되는 감정에 휩싸이기만 한 생각이지. 물론 가끔 그와 모든 추억들을 되새김질 하면 좋았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상처받는 관계에서 적어도 벗어나게 되었다는 점에서 난 필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해. 나는 나를 아끼지 않는 사람을 잊는 방법을 배운거야. 인생에서 한 번은 꼭 배워야 했던 것이었어. 우리는 사랑 받아 마땅하니까. 사랑을 구걸하거나, 사랑받을만 하다고 증명하지 않아도, 받는 것이 당연한 사람이니까. 충분하지 않은 애착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난 그때 알게 되었어. 세상엔 나를 사랑해 줄 사람들이 수 없이 많으니까. (마치 내가 널 사랑하는 것처럼!) 그러니 너를 소중하지 않게 대하는 사람을 끌어 안고 있는 것은, 너를 소중히 대하지 않는 행동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너가 어제 그 친구와의 관계를 어느 정도 정리한 것은, 어쩌면 잘된 일이야.


그렇지만 그와의 모든 시간들이 무의미 한 것은 아니야. 그와 너가 함께 얼마나 순수하고, 진실했는지 생각해봐. 어리고 상처받지 않았기에, 솔직하게 사랑할 수 있었잖아. 너의 그런 면을 기억하는 것, 그리고 그 때 충분히 사랑할 대상이 있었다는 것은 좋은 일이야. 덕분에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법을 배운 거니까. 그리고 그 추억은 마치 건물 바닥에 있는 거대한 돌처럼, 나중에 살면서 쌓여가는 무게와 짐을 견뎌내게 할거야.

너와 그가 만든 모든 경험들과 기억들이 지금의 사랑스러운 너를 만든거니까, 사람은 보내지만 기억도 보내지는 말아. 나중에 그 기억들이 조금 안쓰럽지만 무엇보다 아름다운 추억일 테니까, 그 때문에 너의 예쁜 시간까지 변색되게 하지는 말아.


어제 밤에 울던 너의 모습에 몇 년 전의 내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어. 그치만 넌 나보다 더 강하기도 해. 넌 너의 분노와 슬픔을 표출할 줄 알잖아. 난 그 사람에게 화도 못내고, 우는 것도 혼자 방에서 울었다? 바보 같지. 그래도 그렇게 했어. 내 마음을 뭐라고 말해야 할 지 전혀 모르겠었거든. 말하는 게 맞는 것인지도 확신이 없었어, 심지어는. 진짜 웃겨, 그렇게 오래 알았으면서 그런 것도 못 말하고.

어쨌든 그렇게 바보 같던 나 보다, 너는 훨씬 용감해. 과거의 내가 못하던 '표출'을 넌 늘 이루고 있거든. 늘 너는 나를 어른이라고 생각하지? 근데 있잖아, 내가 볼 땐 너가 나보다 어른이다? 얼른 기운 차려. 어른은 그런거야. 식탁에 핫초코도 타 두었으니까 데워 먹고, 저녁에 너가 좋아하는 피자 먹으러 가자. 이따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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