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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Aug 01. 2022

태어나서 처음으로 - 19. tkfkd

23살, 난생처음 홀로 떠난 교환학생

사랑하는 것은 돌려 받을 수 없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많은 마음들이 있다. 나라는 이기적인 사람들을 향했다는 이유로 사랑을 돌려받지 못하는 안쓰러운 눈동자들이다. 늘 그런 사람들 앞에, 그들을 향한 사랑을 지어내 보였다. 마음을 쓰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게 사랑이 아니라고 느낄 뿐.


할아버지에게 나는 특히 그랬다. 왜인지 알 수가 없다. 정말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런 분에게 사랑을 느끼기는 더더욱 어려웠다. 할아버지가 어릴 적 내 손을 잡으셨을 때 뿌리친 적이 있다. 웃으며 멋쩍어하시던 할아버지가 기억이 난다. 그때 미안함도 못 느끼던 나도 기억이 난다.


엄마는 많이 울어 눈시울이 자주 장미빛이었다. 핼쓱한 얼굴에서 엄마의 고단함이 보였다. 막내딸이지만 할아버지를 책임지고 있는 우리 엄마. 할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실제 아파해야 할 것 보다 훨씬 많이, 하루가 다르게 아파하는 엄마. 엄마는 할아버지라면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늘 그랬다. 몇 명의 형제가 있어도 늘 우리 엄마가 할아버지를 책임지는 모습이었다. 엄마가 할아버지의 엄마 같았다. 늘 울면서 엄마가 할아버지를 걱정하고, 챙겼다. 아기처럼 이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할아버지는 우리 엄마의 고생을 아는지 모르는지, 멍하니 있는 얼굴이었다. 그런 할아버지가 싫었다. 우리 엄마를 고생하게 하는 할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그런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1분의 통화였다. 아무 생각없이 당위적인 이유로 걸었던 통화, 충격적인 소식이 있었다. 조금 아팠던 할아버지는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망가져 있었다. 할아버지는 풍파에 흔들리는 중이었다. 건장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외로운 노인이 된 할아버지.


그치만 오늘 통화에서 보인 할아버지는 그런 생각이 잊혀지게 했다. 오늘도 그 사랑을 나에게 돌려 받지 못한 할아버지는, 어쩌면 이제 사랑 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받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얼굴을 보자마자 환히 웃으시던 나의 다른 아버지. 그리고 당신의 망가진 모습을 보고는, 말도 잇지 못하는 나.


난 어떻게 아직도 이렇게 이기적이고, 못된 걸까? 이만큼 컸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누구보다 어린거였다. 나의 충격에만 휩싸여 당신을 걱정도 못하는 꼴이라니. 당신은 나를 인지할 수 조차 없을 정도로 닳아버렸는데도, 나의 이름만 들으면 웃는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아픈 상황에서도 당신으로 인해 아플 엄마만 걱정했다. 당신을 걱정하기에는 내가 너무 못된 사람이었다.


당신의 사랑을 쫓아갈 수는 없다는 게, 돌려줄 수 없다는게 무엇보다 마음이 아프다. 당신을 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마음이 아프다. 당신을 사랑할 수 없던 시간들이 아깝다. 더 노력했어야 했다. 난 당연히 그랬어야 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한 것에 비하면 난 너무 부족한 사람이었다.


오늘도 나에게 누적된 사랑을 확인하며 깨달았다. 사랑은 돌려 받을 수 없는거다. 나처럼 나쁜 사람은 언젠가 돌려 받지 못하는 날이 와도, 무엇도 원망할 수 없다. 사랑 받아 마땅한 사람들의 마음들도 이렇게 찢어졌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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