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대보름 나물

by 이혜경

올해도 엄마가 까만 봉다리에 나물과 오곡밥을 넣어 배달 오셨다.

등에는 검정 배낭에 지난 명절에 남은 과일 몇 알을 넣어서 지고, 지팡이를 짚고 굳이 건너오신거다.

엄마 집과 우리 집은 내 걸음으로는 3분쯤, 지팡이 짚은 엄마 걸음으로는 좀 더 걸렸으리라.

해마다 엄마의 배달을 받고서야 아.. 보름이구나 한다.



울 엄마는 85세 할머니.

엄마는 그냥 맨날 엄마이기만 한 줄 알았는데 언제부턴가 보니 허리도 굽고 걸음도 느려지고 오늘도 지팡이를 짚었으니 영락없이 할머니다.

엄마는 가끔 예고 없이 전화해서는 잠깐 나오라 신다.

그럼 까만 봉다리에 만두가 들어있기도 하고, 과일이 담겨있기도 하고, 오늘처럼 반찬이 담겨있기도 하다.


"엄마, 이런 걸 뭐 하러 들고 다녀 힘들게. 그냥 가만히 있어."

몇 해 전에 이런 말을 했었다. 그랬더니

"너 가만히 있으면 하루가 얼마나 긴 줄 알어?"

아... 거기까진 몰았다. 그리고 그 이후 절대로 그 말을 하지 않는다.


그 무렵 라디오에서 우연히 들은 사연도 그런 얘기였다.

청취자가 어머니께 "엄마, 그냥 가만히 있어" 했더니

"내가 시체냐?" 하셨다는.


다행히 아버지와 함께하시는 엄마는 아직까지는 연세 대비 건강하신 편이다.

아직까지 내 김치를 책임져 주시고, 세상 그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엄마표 만두도 가끔 얻어먹는다.

엄마는 요즘 낮 시간에는 다이소에서 파는 목욕타월을 비닐에 넣는다거나 행주를 비닐에 넣어 포장하는 알바를 집에서 하신다.

예전 같으면 이걸 해서 얼마나 번다고 고생하냐고 말릴 테지만 지금은 다르다.

"엄마, 손이 보이잖아. 그렇게 해서 나 유산이나 물려주겠어? 손이 안 보이게 하라구"



한바탕 웃으며 엄마의 부업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어둔다.

나는 내년에도 엄마의 보름나물을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