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lovbe 글롭 Jul 03. 2022

우리 웨딩 촬영하러 갈까?

순간이 뿜어내는 사랑스러움에 대하여 - Budapest, Hungary

    유럽의 유명 도시를 여행하다 보면, 결혼사진을 찍는 커플들을 생각 외로 많이 만날 수 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여행 전에 기대하지 못했던 풍경이라 신선하게 다가왔다. 사실은 신선함을 넘어서 그들 덕분에 지극한 아름다움을 경험했다. 오후의 따스한 햇살이 비치고, 잔디와 하늘은 푸르다. 찍은 몇 개의 컷을 보며 웃음 짓는 커플.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그들은 어디에서 이곳에 촬영을 하러 왔을까. 헝가리의 예비부부일지, 아니면 인근 유럽 국가 혹은 다른 대륙의 커플일지 알 방법은 없다. 다만 그들에게 오늘이 참 오래도록 기억에 남겠다는 생각이 든다. 살다 보면 매일 같이 떠올리지는 않겠지만, 오래오래 선명하게 꺼낼 수 있을 따스한 오후. 그들에게 남을 그날의 인상만큼은 못하겠지만, 내 인생에도 의미 있는 자국을 남긴 장면들이 되었다.


Wedding Photo - Budapest, 2015 ©

        왜 그렇게 인상 깊고 기억에 남나 생각을 해보면, 그때 나는 지극한 사랑스러움을 느꼈던 것 같다. 결혼을 앞둔 커플들의 공존하는 긴장감과 설렘, 자신의 역할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진사, 꽃, 잔디와 나무, 그리고 따스한 공기, 파란 하늘. 축복, 부러움, 그리움 등 각자의 감정을 안고 그들을 보는 사람들. 그 아름다움은 분명 사랑스러움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사랑스러움은 주변을 물들이고 있었다. 말을 잃는 자연경관도, 무진장 오래된 조각상도 아니었지만, 나에게는 여행의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 중 하나가 되었다. 사랑스러움을 목격하고, 그 현장과 시점에서 온전한 평화를 경험했으며, 또 그런 사랑스러움을 닮고 싶다 마음에 새겼다. 그들이 뿜어내는 사랑스러움은 내 마음까지 물들이다 못해, 내 인생에까지 그 색을 은은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The Moment of Peace - Budapest, 2015 ©

    결혼이라는 주제가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 염세주의적인 의견과 쉽게 연루된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하지만 그 순간에, 지극한 사랑스러움의 순간에 염세주의 혹은 회의감이 침투할 틈은 없었다. 사랑스러움과 따스함으로 모든 공간과 순간이 꽉 차오르다 못해, 그런 소모적이고 생산하기 쉬운 논리 및 감정이 자리할 공간이 없었던 것이다. 시간은 멈추고, 아름다움만 남았다. 사랑스러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전망 展望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