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창하는 나의 세계의 대하여 - Budapest, Hungary
어린 나에게 슈퍼 가는 길은 상당한 여정이었다. 과자를 사러 가는 것은 고사하고, 간단한 심부름마저 위압적인 도전으로 느껴졌다. 사실 이 때는 집 밖이 아니라도 탐험할 공간이 많았다. 거실 바닥은 용암이었고, 침대와 의자 위는 우거진 정글 숲이었다. 그렇게 나는 탐험가를 꿈꾸는 작은 아이 었다. 혼자서 집을 나서는 일조차 드물었지만, 에메랄드 빛 물을 보트를 타고 가르리라 다짐하곤 했다.
정확한 품목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어머니의 첫 심부름을 성공한 후 나의 세계는 급속도로 팽창했다. 길도 못 찾는 꼬맹이가 예고 없이 친구를 데리고 불쑥 귀가하는 바람에 아버지를 놀라게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친구들과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 먹고 눈이 번쩍 떠졌다. 3학년 즈음부터는 학교를 오다니며 동네를 곳곳을 탐험했다. 중학생 때는 버스와 자전거를 타고 몇 개의 동을 통과해 등교하고, 친구들과 잡담하며 도시를 누볐다. 고등학생 때는 부모님을 비롯한 보호자가 없는 첫 여행을 가평으로 떠나기에 이르렀다.
대학교 진학 후에는 서울 이곳저곳을 머릿속 지도에 새기고는, 다른 도시를 향한 기차 여행을 처음 떠났다. 2학년이 되어서는 이 여행기의 첫 번째 배경이 되는, 성인이 되어서의 첫 해외여행을 가게 된다. 이후 군대라는 새로운 사회를 가정을 떠난 온전한 개인으로서 체험하고, 전역 이후에는 유럽의 교환학생으로서 난생처음 살림을 꾸린다. 그렇게 졸업 후에는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사회인으로서의 새로운 관점과 시야를 얻게 된다.
돌이켜 보면 나의 세계는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팽창했다. 세상의 물리적 실체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경험의 주체인 나의 의식이 성장하며 이질적이면서도 광대한 공간이 되었다. 부다페스트에 가기 1년 전만 해도 나는 내가 그곳에 있을 줄 몰랐다. 그러한 일련의 우연 같은 사건들로 인해 나는, 그리고 나의 세계는 결코 경험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변화를 지속적으로 맞이한다.
어부의 요새를 오르기 전, 통화를 하다가 어느 공원에 머무르게 되었다. 자갈들이 모래나 잔디 대신에 바닥에 깔려있는,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형식의 공원이었다. 그 자갈을 집어 들고는 문득 생각했다. 이 돌을 어떤 길고도 극적인 여정을 거쳐 이 공원을 장식하게 되었을까? 시작은 몰라도 반질반질한 모양을 보아하니 큰 강 하나쯤은 반드시 들렀겠지. 나를 깎고, 다듬고, 또 더 넓은 세상으로 보내는 그런 강.
자갈이 세차게 흐르는 물을 멈출 수는 없듯이, 우리 사람들도 삶이 던져주는 사건들을 막을 수는 없다. 우리는 종종 이 강을 운명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 강은 우리를 반드시 더 넓은 세상으로 인도한다. 필연성과 광대함이 작은 마음에 두려움을 일으키는 순간도 물론 있지만, 이에 순응하는 순간 강 밑바닥에 처박히는 일은 없다.
어머니의 첫 심부름을 나서던 나는 그 길이 세찬 급류인지 알지 못했다. 여기저기 구르고 깨지고서야 느낀다. 이 넓디넓은 세상에 스며들어있는 사랑을. 그리고 이제야 안다. 물살이 무서워 바위틈으로 피신하는 것도, 바다로 가는 것도 삶의 목적은 아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