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건대 생후 6개월 아기와의 1박 2일 여행은 욕심이었다. 게임 난이도로 따지자면 '헬모드'. 미래가 불 보듯 뻔해 누군가 하겠다고 나서면 말리고 싶다.(물론 내 아이 기준이지만, 아기들의 공통점을 고려하면 대동소이하리라 믿는다)
늘 그렇듯 여행의 출발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태교 여행으로 제주를 찾았던 지난해 12월 이후, 우리 부부 아니 세 식구는 처음 집을 떠났다. 여느 가을날처럼 햇살은 아침부터 눈부셨고, 아내는 '자고로 여행을 시작할 땐 볼빨간사춘기의 여행을 듣는 게 국룰'이라며 플레이리스트를 정리했다. 운전대를 잡은 나도 신이 나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래, 이게 여행의 맛이지.
놀랍게도 흥은 오래가지 못했다. 첫 번째 휴게소부터 진땀을 뺐다. 검색해둔 정보를 바탕으로 수유실을 찾았다. 2층이었다. 계단이 대수인가, 수유실이 있는 게 어딘가. 데운 이유식을 먹이려 하자 아들이 거부했다. 이유식 초기이긴 해도 곧잘 먹는 편이었는데 웬일인지 평소보다 심하게 보챘다. 그 바람에 말끔히 차려입은 여행 복장은 끈적한 쌀미음으로 범벅이 됐다.
'이유식 전쟁'을 치르며 밥때도 놓쳤다. 미리 찾아둔 맛집에서 현지 음식을 먹으려 했던 계획도 물거품이 됐다. 평소 여행의 8할은 음식이라 여긴 우리 부부의 절망감도 컸다. 결국 아내와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휴게소 음식점 키오스크 앞에 섰다. 아내는 육회비빔밥, 난 라면세트를 골랐다. 상상했던, 바라고 바랬던 맛집은 그렇게 라면 한 그릇이 돼버렸다.(그마저도 아이를 달래며 먹느라 쉽지 않았다..)
숙소에 도착해선 아들과 물놀이를 했다. 귀여운 공룡 모양 아기 수영복을 입히고, 자그마한 자쿠지에 함께 들어갔다. 아내는 물 밖에서 사진 촬영을 맡았다. 아이 안전을 위해 안전하게 목 튜브를 해줬다. 하지만 굳은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엄마아빠를 똑 닮아 물을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결국 물놀이는 10분을 채 넘기지 못했다.
물놀이 후낯선 숙소에서 아이를 씻기고 재우니 몸은 어느새 녹초가 됐다. 아내와 난 포장 음식으로 뒤늦은 저녁을 때우며 한숨을 돌렸다. 숙소 사우나가 좋다길래, '난 됐으니 당신이나 다녀오라'며 보냈다. 그렇게 평온한 밤이 찾아온 줄 알았다.
숙소 침대에서 환히 웃는 아들. 1박 2일 여행에서 건진 몇 안 되는 아이의 웃는 사진이다.
새벽 2시, 아이가 깼다. 세상 서럽게 목놓아 울었다. 기분 탓인지 조용한 강원도 산자락이 쩌렁쩌렁 울리는 듯했다. 아들은 평소에도 새벽에 종종 깨곤 하는데 낯선 곳이어서 인지 더 달래지지 않았다. 어르고 달래고, 동요를 부르고 '쉿' 소리를 무한 반복해도 도통 다시 잠들지 못했다. 결국 아들은 새벽 3시에 분유를 먹고 4시쯤에야 눈을 붙였다. 우리 부부도 그 시간 꼬박 뜬 눈으로 지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새벽에 신나게 놀아서 그랬다면 아쉽진 않을 텐데. 다행히도 비로소 여행이 여행처럼 느껴진 순간은 이때였다. 조식을 먹고 숙소 근처 산책을 할 동안, 아들은 유모차에 누워 세상 편한 얼굴로 엄마아빠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우리에게 아주 짧은 '휴가'를 주는 것 같았다. 산속의 맑은 아침 공기를 한껏 들이켜며 아내와 나는 오랜만에웃었다. 동시에 고작 이 시간을 즐기기 위해 집에서 3시간을 달려온 건가 하는 허탈함도 들었다.
숙소를 떠나 집에 도착한 건 늦은 오후였다. 비로소 홈, 스윗 홈. 몽둥이로 두들겨 맞은 듯 온몸이 쑤셨다. 그 몸으로 아이를 다시 먹이고 씻기고 재웠다. 한가득 여행 짐도 풀어 정리하고 나니 세상의 모든 피곤이 몰려오는 듯했다. 안방에서 곤히 자고 있는 아들을 다시 한번 들여다봤다. 나와 아내그리고 아이까지, 세 식구 모두 힘겨웠던 1박2일이 그렇게 마무리됐다.
지쳐 쓰러진 아내에게 나는 말했다. '자기, XX이가 좀 더 클 때까지 여행은 자제하자. 또 한 번 갔다가는 우리 다 골병들겠어..' 돌이켜보면모두 엄마아빠의 욕심이었다. 고작 6개월 아기가 뭘 안다고. 아이가 함께 즐길 수 있을 때, 여행이 진정 의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아 미안하다. 그리고 당분간은 여행보단 집 근처에서 즐거움을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