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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기심천국 Nov 30. 2022

모든 것에 놀라워하기

소피의 세계 - 요슈타인 가아더 中

*이 글은 2022.06.12에 쓰여진 글입니다.


'훌륭한 철학자가 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단 한 가지는 놀라워할 줄 아는 능력이다.'

-소피의 세계 中


'소피의 세계'를 읽던 도중, 유독 눈에 들어 온 문장이다.

철학자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주변 하나하나에 놀라워하고 의문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신은 존재하는가?'와 같은 근원적이고 조금은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질문들이 사실은 고차원적인 사고가 아니라, 어린아이같은 천진난만한 의문에서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요즈음의 나는 질문을 잃어버린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내 생활에는 새로움이 없다. 익숙한 환경, 익숙한 사람들만을 만나며 어쩌면 편하다고 할 수 있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서 오는 권태로움이 있고, 흔히 말하는 '인생 노잼기'를 느끼고 있는 참이었다.

그런데 이 책의 말마따나, 세상을, 내 일상을 어린아이의 시각으로 본다면 구석구석 재밌는 요소들이 넘쳐나지 않을까?



김태리의 브이로그 '거기가 여긴가'

https://www.youtube.com/watch?v=yydf7w65l3c

최근에 즐겨본 김태리의 브이로그 '거기가 여긴가'이다.

  최근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유튜브를 즐겨 보게 되었다. 많이들 보는 유튜브에 굳이 사족을 붙인 이유는, 요즘에는 특히 30분 이상의 긴 영상들을 주로 본다는 것이다. 할 일이 있고, 조금 바쁠 때의 나는 영상의 길이가 10분이 넘으면 보다 말거나, 아예 클릭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왜인지, 긴 시간을 할애하는 기승전결이 있는 영상이 좋고, 급기야는 길어야 영상을 본 느낌마저 든다.

요즘 유튜브 영상의 트렌드를 보니, 비단 나뿐만의 특성은 아닌 듯하다. 한때는,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흔히 '한국인이 좋아하는 속도'라고 불리는 짧은 길이의 영상들이 유행하였다. 한국의 사건사고를 1분으로 압축했다던가, 영상에 말을 굉장히 빠르게 삽입하여 시간 대비 최대한 많은 정보를 전달하려는 영상이 알고리즘을 타고 넘쳤다. 그런데 요즘은 사람들도 빠른 속도감에 피로를 느낀 것인지 30분이 넘는 길이의 영상들이 인기 동영상에 심심치 않게 눈에 띄고, 긴 영상도 부담없이 클릭하게 되는 듯하다.

최근 즐겨 본 영상 중에 하나인 김태리의 브이로그 '거기가 여긴가'도 전체 영상 길이는 영화 한 편에 달하는, 상당한 분량이다. 30분 언저리의 영상 4개로 구성된 이 시리즈는 예전의 나였다면 아예 보지 않거나 호기심에 잠깐 보고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영상에 한정하여 참을성이 생긴 나는 또 김태리 배우를 좋아하기도 했기에(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애청자다.) 주저없이 영상을 클릭했고, 4편의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하였다. 사실 멈출 수가 없었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하겠다. 4편의 브이로그는 내 기대보다 훨씬 알차고, 깊고, 재미있었다. 그 중심에는 여행의 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김태리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본인에게 익숙할지도 모르는 과거의 촬영지를 여행하면서도, 먹는 것, 보는 것 하나하나에 마치 살면서 처음 본 양 크게 감동하고, 느끼고 있었다. 혹자는 여행을 갔으니 하나하나 재밌고 신기한 건 당연한 게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30여년동안 수없이 봤을 쨍한 파란 하늘을 보며 '쨍한 것을 보면 슬픈 기분이 든다.'라고 한다. 하늘을 보며 날씨 체크가 아닌 감정을 느낀지가 언젠지. 맑은 하늘에 대해 감탄을 하는 것도 아니고, 슬프다며 새삼스러운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등산을 하면서는 내내 쓰고 있던 모자와 마스크를 벗을 때 상쾌한 기분을 느끼며 '있음은 없음을 더 깊이 느끼게 한다.'를 깨닫는다.

  이렇게 주변의 하나하나를 느끼고 사소하지만 특별한 것들을 깨달아 가는 것이 바로 철학자의 자세가 아닐까 한다. 우리네의 평범한 일상에도 철학과 과학이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사실 어느 곳이라도, 작정해하고 궁금해할 만한 것들이 넘친다. 세상에 처음 난 어린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내가 보는 것, 걷는 곳, 들리는 것, 주변 사람들 하나하나가 모두 새삼스러울 것이다. 우리의 삶은 반복재생되는 영상이 아니라 숨쉬는 시간 속에 흘러간다. 비슷할 수는 있어도 매일이 같을 수는 없는 일상을 진심으로 즐기고 느낀다면 삶이 조금은 더 재밌지 않을까. 일련의 책과 영상을 통해 요즘 나의 권태로움에서 벗어날 실마리를 찾은 듯하다. 어쩌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지조차 않고,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들을 배제하며 대충 비슷한 환경을 핑계 삼은 게으름에서 시작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무한동력 기계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일상에서 무한으로 재미를 느끼는 방식을 발견한 것만 같아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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