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편 소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니 Nov 23. 2024

갠지스에 몸을 담그고 (4)

아침 공양은 건너뛰었으나 오전에 있는 포행(布行)에 참여하기 위해 7시에 일어나 서둘러 대웅전 마당으로 갔다. 프로그램에 별로 의욕이 없어 보이는 규진은 그럼에도 이번 일정에도 참여하기로 하고 나를 따라왔다. 새벽 예불 때처럼 그곳에는 이번 템플 스테이에 참여한 인원들이 모두 와 있었다. 세 식구가 함께 온 집을 빼면, 다른 참여자들은 별로 의욕이 없어 보였지만, 이상하게 이런 일이 있을 때면 모두가 모여 있었다.


절 인근의 산에는 암자가 하나 있다. 그곳까지 천천히 걸어가는 산책 코스, 불가에서는 이러한 나들이를 포행(布行)이라 부르는데, 이것 역시 하나의 수행이다. 종무소 직원 아가씨가 가벼운 하늘색 등산복 차림으로 사람들을 인도했다. 나와 규진이 종무소 여인을 따라 맨 앞에 섰고, 그 뒤를 세 식구, 다시 그 뒤를 조금 멀찍이 시우라는 여인과 중년 아저씨가 따라왔다.


길 옆으로 난 계곡물을 따라 걷다가 나무로 된 다리를 건넜다. 계곡물은 겨울이라 수량이 많지 않았지만 언뜻 보기에도 차가워 보였다. 전날 밤에 들었던 시냇물 소리가 아마도 이 계곡물 소리였던 모양이다. 겨울임에도 어디선가 들려오는 물소리를 들으며 잠에 들었던 기억이 있다. 종무소 여인을 따라 걸어가니 드문드문 나무에 노란색과 주황색으로 된 리본 같은 것들이 묶여 있었다. 지자체에서 개발한 트래킹 코스인 듯했다.


길은 평범했다. 포장된 길이 있는가 하면, 숲과 흙길을 지나는 코스도 있었고, 바닥에 미끄럼방지를 위해 야자수 잎으로 만든 야자매트가 깔려있는 길도 있었다.


내 앞을 걷던 종무소 여인과 규진은 언제 그렇게 친해졌는지 길을 가는 동안 계속 대화를 하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가 들어보면 대부분은 먹는 이야기였다. 종무소 여인이


“거기, 법원 앞에 진짜 맛있는 껍데기 집 있는데 아세요?”


이라고 묻자, 규진이


“삼백집이요? 거기 유명하죠.”


라고 대답한다.


“아, 맞는 것 같아요. 근데 왜 삼백집이에요?”


“아주 오래전에는 1인분에 삼백 원이었다고 하던데, 지금은 안 그래요. 만오천 원인가 그럴 거예요.”


종무소 여인은 절에 있으니 때때로 고기 생각이 간절해진다고 한다. 절 입구에만 해도 장어집과 고깃집들이 적지 않게 들어서 있으니, 그 앞을 지나칠 때마다 미칠 것 같다는 소리를 한다.


“그냥 먹으면 되잖아요? 스님도 아니신데……?”


“그러고 싶은데, 절에는 스님들만 계시잖아요. 고기 먹고 들어가면 금방 아실 텐데, 주지 스님한테 혼나요. 스님은 아니어도 저도 나름 불심(佛心)으로 이 일을 하고 있는 건데…….”


“그래도 가끔은 고기도 먹어주는 게 좋지 않아요? 듣기로는 스님들도 고기를 드신다고 하던데? 아주 가끔씩은?”


“아휴, 누가 그래요?”


그들의 음식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았다. 종무소 여인은 규진에게 읍내에 가면 꼭 들르라며 그에게 자신만의 미쉐린 가이드를 알려주었다.


그 사이 일행은 암자 근처에 있는 큰 소나무에 이르렀다. 종무소 여인은 나무가 천연기념물이며 나이가 600살이나 된다고 설명했다. 일행은 잠시 멈춰 서서 나무를 바라보며 한숨을 돌렸다. 한 겨울에도 소나무에는 푸른 침엽(針葉)이 달려 있었다. 세 식구의 딸아이는 늘 그랬듯 신이 난 모습으로 소나무 주위를 돌았고, 아빠는 규진에게 카메라를 건네며 가족들을 찍어달라는 부탁을 했다. 소나무 앞에 선 가족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디지털 사진으로 템플 스테이의 추억을 남겼다.


잠시 쉬는 동안 나는 주위를 살펴보았으나, 시우라는 아가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중간에 오다 내려간 것일까, 아니면 걸음이 느려 아직 여기까지 오지 못한 것일까? 서울에서 왔다는 중년 아저씨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숨을 돌리고 종무소 여인과 규진, 세 식구와 나는 암자를 향해 걸어갔다. 맨 앞에 가는 종무소 여인과 규진은 숨이 차지도 않는지 쉴 새 없이 떠들며 걸어갔다.


암자란 이름을 달고 있었으나 그곳에는 또 다른 절이 있었다. 불전이 여럿 보였고, 그곳까지 기도를 하기 위해 온 사람들도 있었다. 그곳을 지나 돌계단을 따라 조금 더 위쪽으로 걸어가니 길 한쪽에 내원궁(內院宮)이란 이름이 적힌 안내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내판을 지나니 팔작지붕 건물이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건물은 거대한 바위 위에 지어진 것으로, 고통받는 중생 모두를 구원한다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모신 곳이라 한다. 종무소 아가씨는 그곳에서 사람들을 보며 “여기서 경치 한 번 둘러보면서 숨 좀 돌리세요. 내원궁 안을 보시려면 가까이 가서 보시고요. 시주하는 함도 있으니까 자율적으로 시주하세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높지 않은 곳이라 생각했는데, 그 위에서 보니 산 아래가 한눈에 들어왔다. 하기는 육도 중생을 모두 구원하려 한다면, 이 정도로 멀리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곳에서 한참을 산 구경을 하고 있어도 뒤에 있던 두 사람은 여전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중간에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간 듯했다. 나는 여전히 종무소 여인과 수다를 떨고 있는 규진에게 다가가 물었다.


“혹시 뒤에서 오고 있던 두 분, 못 보셨어요?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네요?”


“글쎄요. 중간에 숙소로 돌아간 것 아닐까요?”


“그런가?”


아직도 기운이 넘쳐 보이는 종무소 여인이 나를 보며 말했다.


“아까 오다가 중간쯤에서 돌아가는 것 같더라고요. 그 아저씨는 초입부터 돌아간 것 같았고요.”


“아, 그런가요?”


종무소 여인의 말을 듣고 난 후, 나는 그런가 보다 하고 있으려다가, 문득 두 사람에게 먼저 내려가겠다고 말을 하고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딱히 무슨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니, 어쩌면 무슨 생각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을까? 아니면 그냥 궁금했던 것일까? 간다고 해도, 그녀의 숙소가 어디인지도 모르니 마주칠 일도 없을 테고, 그저 숙소에 빨리 도착해 점심을 먹기 전까지 눈을 붙이는 것이 전부였을 것이다.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 있는 것이 지겨워진 것이었을까? 템플 스테이라고 해서, 고요한 곳에서 조용하게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까 했는데, 생각해 보면 어디를 가든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 혼자 있고 싶다는 마음에 여기까지 온 것이었는데, 함께 방을 쓰는 규진은 말이 많은 편이었고, 말이 없을 때는 늘 유튜브 영상을 틀어놓고 있었다. 오늘 아침 포행 때도 종무소 여인과 규진은 길을 가는 내내 돼지와 소의 모든 부위를 다 말을 했을 정도로, 수다를 멈추지 않고 걸어갔다. 도대체 난 이곳에 왜 온 것일까?


혼자 말없이 걸어가니 생각보다 빨리 절에 도착했다. 걸어가는 동안 혹시나 마주칠까 싶기도 했지만 두 사람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숙소가 있는 근처까지 오고 나니, 이대로 숙소로 돌아가봐야 할 일이 없겠다 싶어, 나는 조금 더 걷기로 했다.


천왕문도 지나, 오른쪽의 개울물을 따라 절 입구 쪽으로 계속 걸어가니 어느새 절 입구인 일주문이 보였고, 그 옆의 매표소도 나타났다. 그리고 매표소 근처에는 무인발권기라는 글씨가 크게 붙어있는 부스 같은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 옆에 누군가 땅바닥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평소 시력이 안 좋고 안경도 컴퓨터를 쓸 때가 아니면 쓰지 않는 나로서는 희미하게 사람의 형체만 보였다. 그 옆에는 한 여자가 남자를 일으키려고 팔을 붙잡고 있었는데, 남자는 엉덩이를 바닥에 붙인 채 일어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인상을 한껏 찌푸리고 봐도 잘 보이지 않아, 나는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바닥에 앉은 남자가 템플 스테이에 참여한 오십 대 아저씨 구재필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를 일으켜 세우려고 하는 여자가 최시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두 사람을 향해 걸어갔다.


“뭐 하세요, 여기서?”


내가 두 사람에게 다가가 묻자 시우가 나를 알아보고는 말했다.


“아휴. 잘 왔어요. 이 아저씨 좀 일으켜 보세요. 아까는 잘 걷더니, 갑자기 이렇게 자리에 주저앉아버리네요.”


“어떻게 된 거예요?”


“어떻게 되긴요. 술 취해서 그렇죠. 술 냄새 안 나요?”


아저씨의 팔을 붙잡고 있으니 그녀의 말대로 술 냄새가  느껴졌다.


“아니, 어디서 이렇게 술을 마셨대요?”


급기야 아저씨는 등을 바닥에 붙이고 누워버렸다. 덩치가 그렇게 큰 사람은 아닌데 술이 잔뜩 취해서 그런지, 몸이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저기, 절 앞에 있는 가게들 있잖아요. 거기 풍천장어 집이 하나 있는데, 거기서 마셨어요. 제가 가게에 들어왔을 때 이미 소주 두 병을 깠더라고요.”


“같이 드셨어요?”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여자는 뭘 그런 걸 묻냐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친구가 여기 풍천장어가 유명하다고 그러고, 절밥 먹기도 싫어서, 장어집에 들어갔더니 이미 아저씨가 와 있더라고요. 아저씨가 같이 먹자고 그래서, 뭐, 그러자고 했죠. 그러고는 2인분 더 시키길래 그냥 내버려두었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그냥 숙소로 돌아가는 건데……. 장어 한 번 먹어보겠다고 이게 무슨 고생인지.”


그녀가 혀를 끌끌 차며 계속 말했다.


“그래도 가게에서는 완전 멀쩡했는데. 그래서 아저씨가 술을 되게 잘 마시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 근처에 오더니 그때부터 이리 휘청, 저리 휘청, 제대로 걷지를 못하더라고요.”


아저씨의 팔을 아무리 잡아끌어도 일으켜 세우기 힘들 것 같아서, 그녀에게 차라리 내가 엎고 가는 게 낫겠다고 말했다. 둘이 아저씨의 몸을 상반신만 일으켜 앉힌 다음, 그를 엎으려고 했으나 그 와중에도 그는 “안 가. 안 가. 안 간다니까”라고 뜻 모를 소리를 외치며 손을 휘젓는 바람에 몇 번이나 실패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그를 겨우 엎고 걸어가는데, 평소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았는지라 조금만 걸어갔을 뿐인데도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티를 안 내려고 이를 악 물고 천왕문까지 걸어갔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절 안으로 들어가려던 종무소 여인과 규진이 멀리서 우리를 알아보고는 급하게 달려왔다.


“어머머, 이게 무슨 일이래요?”


종무소 여인이 종달새처럼 뛰어와 아저씨를 살펴봤다.


“요 앞에 장어집에서 술을 많이 드셨나 봐요. 저기 시우 씨가 발견하고는 데려오는데, 일주문 쪽에서 쓰러지셔서…….”


내가 숨을 헐떡거리며 말을 하자 규진이 자기가 엎겠다는 시늉을 했다. 그에게 아저씨를 옮기는 것이 더 힘들 것 같아서, 나는 그대로 아저씨가 묵고 있는 숙소까지 엎고 가겠다고 말했다. 숙소에서 여러 사람이 붙어 아저씨를 방으로 옮긴 후에 소동은 잠잠해졌다. 방 안에 아저씨를 눕혀 놓고 종무소 여인이 밖으로 나오며 말했다.


“참,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요. 아저씨가 쌓인 번뇌가 많은가 봐요. 술 깨실 때까지 여기서 주무시게 놔둬야죠 뭐.”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숙소로 돌아가 따뜻한 방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숨을 돌리고 있을 때, 잠시 후 규진도 방으로 들어왔다.


“아휴, 고생하셨네요.”


“네…… 뭐.”


규진은 내 옆 쪽으로 와서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그런데, 그 아가씨는 어쩌다 그 아저씨를 발견했대요?”


“네?”


그의 물음에 내가 영문 모를 표정을 짓자, 그가 다시 내게 말했다.


“아니, 아까 암자에 올라갈 때부터 계속 두 사람만 뒤쪽에 처져서 걸어오더만, 또 어떻게 저 아래에 있는 장어집까지 가서 그 아저씨를 봤대요? 같이 간 게 아닌 이상.”


“그 아가씨도 장어 먹으러 갔다가 가게 안에 들어가 보니 아저씨가 먼저 와서 먹고 있었다고 그러던데요?”


“그래요? 그런가? 아까 종무소 미연 씨 이야기 들어보니까, 아까 그 시우라는 아가씨는 남자친구랑 안 좋게 헤어졌다고 그러던데……. 여자들끼리 모였을 때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들은 게 좀 있나 봐요. 아주 자세히 말하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이 더 듣기가 싫어 화제를 돌리려고 했다.


“그건 어떻게 됐어요? 도? 뭐였더라? 장풍? 어제 스님한테 물어본 거요.”


“아, 기요? 에네르기? 그거야 뭐, 이런 데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것 같아요. 스님도 영 신통치 않은 것 같고.”


“종무소 직원 분하고는 많이 친해진 것 같던데…….”


내 물음에 규진은 히죽거리며 대답했다.


“나중에 법원 앞에 오면 밥이나 먹자고 했죠. 명함 주고받으면서. 좀 수다스럽기는 한데, 귀여운 구석이 있는 것 같아요.”


그의 말에 나는 “잘 됐네요.”라고 대답하고는, 어제 보던 만화책을 가방에서 꺼내와 읽기 시작했다.


“그거 재미있어요?”


규진이 심심했는지 첫날에는 거들떠도 안 보던 만화책에 관심을 보였다.


“네. 저는 뭐 그럭저럭 볼만하네요.”


“나도 한 권만 줘볼래요? 심심해서……. 여기선 더 볼 일도 없고…….”


나는 그에게 만화책 첫 권을 건넸다. 처음에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만화를 보던 그는, 어느새 제법 집중해서 책을 보기 시작했다. 칼을 든 주인공이 멋지게 뛰어오르고, 도깨비들의 공격을 피하며 반격하는 모습을 보니, 자신이 찾던 도가 그 안에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일까? 그는 점점 만화에 몰입하는 표정이었다.


열한 시 반. 조금 있으면 점심 공양 시간이었다. 아침을 걸렀지만 밥 생각은 별로 나지 않았다. 점심 공양 시간이 지나면, 방 정리를 하고 퇴소를 하면 된다. 그즈음되니, 난 무엇을 하러 이곳에 온 것인지 후회가 되었다. 도대체 나는 왜 여기까지 온 것일까? 무엇을 찾으러?


아무리 봐도, 이 템플 스테이에서 무엇을 ‘스테이(Stay)’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사람들의 번뇌와 욕망만을 확인한 이틀이 아니었나? 누군가는 장풍을 쏘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사업 실패에 휘청거리며, 절까지 와서 술기운으로 자신을 망각해 버린다. 절에 와서도 고기맛을 잊지 못하는 여인이 있고, 절에 와서도 누군가의 복을 빌어주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끊으려고 했던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지금, 내게 해탈의 길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담배 연기 안에 존재하는 것이리라. 지금의 기분이라면, 그 담배 연기 속에 불전을 수백 채 세우고 또 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갠지스에 몸을 담그고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