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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Mar 18. 2024

화장실에 가지고 들어가는 것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1학년 어린이들은 3월 한 달 동안 학교에 적응하기 위해 기본 과목인 국어와 수학보다도 먼저 배우는 것들이 있다. 연필 잡는 법, 용변보기, 신발 갈아 신기와 같은 기본 생활 습관과 급식실이나 도서관 등 특별실을 둘러보며 이용방법을 배우게 된다.


그중에서도 이것만 되면 적응은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화장실 문제일 것이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급하게 용변이 마려운 어린이를 배려해서 선생님께서는 화장실 문제에 한해 암묵적으로 용인해 주신다. 1학년 때 급한 어린이는 손을 들고 가위를 하기도 했고, 3학년 때는 자리에서 손하트로 신호를 보내기도 했다.


유아와 초등에 입학해서 가장 먼저 배우는 화장실 이용수칙은 이러하다. 화장실 칸이 비어있는지 노크를 해서 확인하고, 볼일을 본 후 변기 뚜껑을 닫은 다음 물을 내린다. 이후 손을 씻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변기 뚜껑을 닫고 물을 내리는 것을 힌트로 보자면 위생상 휴지 이외에 무언가를 들고 들어갈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느 주말,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던 배우자는 화장실 신호가 왔는지 보던 스마트폰에 눈을 떼지 못하고 그대로 들고 들어가 버렸다. 하루이틀 보던 광경은 아니므로 익숙하게 잔소리 따위 생략하고 애써 외면한 채 하던 일을 계속 지속했다.


조금뒤엔 배우자보다 서른 살 아래인 초등학생 아이가 화장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는데 이번엔 보던 책을 가지고 그대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배우자와 똑같이 눈은 책에서 떼지 못하고 사라지자 보지 않아도 안에서 벌어지는 풍경이 그려졌다. 한 손으로 책을 들고, 한 손으로는 옷을 올렸다 내리며 모든 것을 해결할 것이다.


차마 아이에게는 잔소리를 생략하지 못하고, 책에 눈을 응시하며 화장실에서 나오는 아이에게 최대한 친절하게 자신의 행동을 인식하길 바라며 물었다. "책을 가지고 들어가서 볼일을 본 거야?"


"응, 아빠도 핸드폰 들고 들어가던데 뭐."


그렇다. 더 이상의 부연설명은 들을 수도 없었고, 추가적인 잔소리는 무의미해 보였다. 화장실에는 휴지만 있을 수도 있고, 무엇이든 가지고 들어갈 수도 있었다. 아주 사소한 생활습관 하나까지 집안 곳곳에 우리의 거울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웠다. '여보 스마트폰은 제발 거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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