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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Aug 19. 2024

탈모약 90개

처음 배우자와 만난 20대 때부터 남편은 두피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그러다 과로와 스트레스, 마흔을 앞둔 나이 등 다양한 이유로 머리숱마저 점점 빠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회사 쉬는 시간에 탈모라는 주제가 도마 위에 올라오자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그동안 굳이 밝히지 않았던 것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전해주었다.


"아직도 탈모약 안 먹어?"


탈모약을 복용하고부터 꽤나 도움받고 있다는 동료의 후기를 들은 남편은 고스란히 나에게도 들려주었고, 본인도 먹어보고 싶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이것이 바로 몇 해 전의 일이다. 본인 스스로 피부과에 가서 진료를 받은 후 탈모약을 처방받기까지 꽤나 오래 걸릴 것임을 이미 알아차렸다.


사실 둘째 아이를 출산하고 정관수술 하는 것을 미루고 미뤄 결국 신생아를 육아 중인 나에게 같이 동행해 달라는 말에 혀를 내둘렀지만 결국엔 셋째 임신으로 이어졌다. 셋째 임신을 하고서야 제 발로 비뇨기과를 찾아갔다. 이마저도 사실 함께 비뇨기과를 알아본 것이지만 혼자 다녀온 것에 감사했다.


전적이 있으니 이번에는 먼저 손길을 내밀었다. 근처 평이 좋은 피부과를 알아본 뒤 주말 오전에 같이 가보자고 제안하니 바로 승낙했다. 내가 한 일은 자동차 보조석에 같이 타서 병원 진료실에 대기하고, 약국에 들른 것뿐이었다.


진료실에서 상담받고 나온 배우자는 이런 환자가 꽤 많은지 두 가지 약에 대해 각각의 장단점과 부작용 등 여러 사항에 대해서 안내받은 뒤 한 가지를 선택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처음이니 한 달 치만 처방받아서 복용해 보기로 했고, 비급여라 금액이 상당했다.


진료실에서 안내받은 사항에 대해서는 몰랐기에 약국에서 결제하면서 약사에게 부작용은 없는지 물었지만 배우자가 이미 알고 있다는 눈짓을 보내 얼른 입을 다물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전해 들은 부작용은 성욕감퇴, 발기부전 등이 있을 수 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금까지 배우자에게는 해당이 없어 보였다.



한 달 동안 남성형 탈모증 치료제인 프로페시아를 복용한 배우자는 이름을 톡톡히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이유는 알약을 개봉하는 뒤편에 항상 '프로페시아'라는 글자가 크게 적혀있기 때문에 자신이 복용하는 약의 종류를 확실히 인지하는 계기가 된 모양이었다.


한 달이 다 되어갈 무렵에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며 더 복용해보고 싶다는 후기를 살짝 흘리곤 했다. 어느 주말, 아들의 가벼운 감기증상으로 배우자가 함께 집 근처 병원에 동행하게 되었다. 가정의학과가 있다는 말에 아들과 함께 배우자도 진료 접수를 했다. 그리고 배우자는 자신 있게 프로페시아 처방을 말씀드렸다.


처방전을 받아 약국으로 이동한 뒤 복용방법을 듣는 과정에서 아들은 깜짝 놀라고야 말았다. 자신은 3일 치 약을 복용하는 것도 무척 싫어서 몸서리를 치는데 아빠약은 3개월치라 90개라니 처음 들어보는 숫자에 놀릴 건수를 잡은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도 아들의 장난기는 이어졌다. 아빠약은 90개라며 동네방네 소문내는 아들을 보고 평소 장유유서와 부자유친을 넘나드는 배우자는 스산한 미소를 지으며 무반응이기만 했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였다.

"나중에 자기 미래인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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