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을 넘어 AI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 일주일에 한 번 디지털 안식일을 취하는 일상에서 점점 크고 작은 장벽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주말에 아이가 병원에 가야 하는 일이 생기자 불현듯 집 근처에 개원한 소아청소년과 병원이 떠올랐다. 다행히 운영시간을 알고 있었던 터라 무작정 아이와 곧장 출발했다.
저출생이 화두인 대한민국에서 새로 개원한 병원이 소아청소년과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진료를 받기 전부터 전문의에게 감사한 마음이었지만 접수 후 대기순서를 보자 이내 놀라운 마음으로 바뀌었다. 주말 오전의 대기순서는 23번인 것에 비해 대기실은 꽤나 한산했다.
사람들은 알고 보니 실시간 병원 접수 예약 서비스인 똑닥이라는 앱을 사용해서 미리 대기접수를 해놓고 진료 순서에 가까워지면 현장에 도착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많은 어린이들이 병원 입구에서 진료실까지 지나쳐가는 모습을 한 시간 넘게 보고 나서야 겨우 아이의 차례가 되었다.
덕분에 내원하는 이의 90%가량이 유료인데도 불구하고 똑닥앱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새로 생긴 병원은 똑닥앱 이외에도 모든 접수와 수납 처리를 기계화로 구축해 놓았다. 안내데스크에는 접수를 위한 태블릿이 2대 있었고, 전화번호 혹은 주민번호로 접수가 가능했다.
진료를 마친 뒤 수납처리 역시 안내데스크 옆에 있는 큰 키의 키오스크를 이용해서 결제 후 자동으로 처방전 등 기타 서류까지 출력할 수 있었다.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와 간호사는 정말 기계로 대신하지 못하는 일만 하는 셈이었다.
진료를 담당하는 의사, 의사의 진료를 보조하는 간호사 1, 안내데스크에서 체온을 체크하고 앱으로 접수한 뒤 현장에 오지 않은 환자들을 체크하는 간호사 2. 그리고 이들처럼 앱으로 접수한 뒤 대면 진료를 위한 시간에만 현장에 오는 환자들 사이에서 우리는 아날로그 인간이었다.
귀한 주말 시간을 기나긴 대기와 맞바꿨음에도 아직 똑닥앱을 설치하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지만 할 일과 주간계획은 여전히 다이어리인 종이에 쓰고 있다. 또한 쿠팡이나 컬리 등 각종 새벽배송 멤버십에 가입하지 않고, 커다란 장바구니나 카트를 이용해 굳이 오프라인 마트를 찾아 나선다.
일상의 곳곳에서 아날로그적인 면모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아직 내가 그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긴 기다림에도 스마트폰을 보지 않고 아이와 대화하거나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은 억지로 시간 내서 할 수 없는 일이고, 손글씨와 마트 장보기는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아주 소소한 일들이다.
일상 속 아주 깊숙이 우울한 순간들이 파고든 건 기정사실이지만 우울하게만 살고 싶지는 않았다. 우울한 순간들이 행복한 순간들을 없앨 수 없고, 행복한 순간들이 우울함을 상쇄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안 이후 그저 행복 압정들을 일상에 많이 깔아 놓기로 했다. 새로운 행복 압정을 찾을 때까지 아날로그는 아마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