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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 Apr 25. 2024

나 혼자 연변 여행

여행이 일종의 회피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어느새 여행이 다 끝나버렸다. 

혼자서 해외여행을 해보는 게 로망이었다.

친구들이 물었다. 왜 혼자 가냐고. 심심하지 않냐고.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랬다. 

1년 365일 거의 모든 시간을 남들과 같이 보내느라 애쓰고 있는데 여행만큼은 혼자 보내고 싶다고.


그때까지만 해도 혼자 하는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가 남들에게 맞출 필요가 없고 혼자가 편안해서라고 생각했다. 물론 친한 친구들, 가족들과 하는 여행도 재미있다. 하지만 가끔은 먹기 전 사진을 찍는 상대방을 기다려야 할 때도 있고, 별로 내키지 않는 관광지를 가야 할 때도 있으며, 심지어는 덥고 힘들면 싸우기까지 하지 않는가? 혼자면 그럴 필요가 없다. 내가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내가 먹고 싶은 걸 먹고, 좋은 경치를 만나면 원하는 만큼 오래 머무를 수도 있다.



연변 온 첫날이다.

연변에 도착하자마자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맡기고 근처 아무 식당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너무 외롭고 무섭기도 해서 난처했다. 

여행 와서 신나야 하는 건 난데 회식하는 연변 아저씨들의 왁자지껄에 질투를 느끼기까지...

완전히 혼자가 되고 싶다며 멀리 왔으면서!


그 날밤부터는 이불속에서 다음날에 갈 곳 리스트를 쫙 정리했다.

그렇게 4일 차까지는 홀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연변 온 지 5일 차쯤 되었을까, 하얼빈에서 친해진 동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수업이 모두 끝나서 언니 있는 곳으로 가서 1박 정도 같이 있을 수 있다고. 


뜻밖에 상황이라 당황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나도 지연이랑 낯선 땅에서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이 순간 외에 없다는 생각에 얼른 오라고 신나게 떠들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지연과 어디를 가면 좋을지 고민하던 도중

마침 연변여행을 가기 두만강에 가면 북한 땅을 있다고 하여 

다음 날 지연과 함께 중간에 옮긴 숙소에 짐을 놓고 택시를 타고 두만강으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가는 도중에 창밖을 내다보았다. 우리나라 70년대 시골 풍경이 펼쳐졌다. 낯설지만 정감 가는 풍경이었다. 


드디어 도문 시에 도착했다. 도문은 중국어로 tumen 투먼이라고 발음하는데 중국에서 두만강을 투먼강이라고 부른다. 도문지역은 도한 탈북자들이 많은 지역이었다. 강 건너 초라한 건물과 민둥산을 보니 정말 저 앞에 북한이 있는가 싶었다. 북한 쪽 초라한 건물들 사이에 좋은 건물들이 보였는데 세트장이라는 설이 있었다. 북한들도 자신들이 잘 살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가 보다. 


도착하니 폭이 넓지 않은 두만강이 앞에 펼쳐졌다. 이 정도면 탈북자 분들이 충분히 헤엄쳐서 건널 만한 거리였다 다리에는 북한과 중국 사람들과 물건들이 왕래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에 북한이 있다니'


나는 한국에 살면서 북한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살고 있었다.  한국에서 조금 먼 중국에 유학하면서도 북한은 바로 우리 위에 있는데 지구상에서 가장 먼 국가로 생각하고 살았다. 부끄러웠다. 

두만강에서 바라본 북한땅

두만강 저편에서 나는 한동안 북한 쪽을 바라보았다. 저 안에는 우리와 같은 민족이 살고 있구나..



덩그러니 홀로 1주일 여행을 하다 보니 알겠다. 혼자 하는 여행은 나에게 자율성과 연대감을 느끼게 해주는 기회였다. 나에게 여행은 작게나마 내가 선택할 있고, 내가 책임질 있고, 억지로라도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을 만나게 해주는 매개체이다. 하루에 60위안만 쓰기로 마음먹었지만 카페에서 벌써 30위안을 썼다. 커피만 마시려 했지만 카페 아저씨가 너무도 친절하게 케이크도 권해서이다. 덕분에 나는 오늘 저녁은 김밥으로 때워야 했지만 그것 역시 선택에 따른 결과다. 물론 60위안 쓰기는 무시하고 김밥 대신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을 수도 있었지만, 라면을 선택한 역시 선택이다.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거지? 연변을 갈 때만 해도 도문시라는 곳을 알지도 못했고 또 오게 되리라고 생각도 못했다. 이렇게 멀리까지, 또 오랜 시간이 걸려서 이곳까지 와서야 나는 나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되었다. 왜 그동안은 안된 거지? 왜 굳이 이 고생을 해서야 난 이제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거지? 하지만 그건 여기까지 오게 되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난 여행 전날까지만 해도 내 여행에 확신이 없었다. 사람들 말대로 회피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여행을 선택했고 그 결과는 회피가 아니라 직면이다. 

낯선 곳에서 살아가는 내 모습, 여기까지 와서 알게 된 나의 진짜 모습


이번 여행은 무서운 순간 10, 어려운 순간 20, 감탄한 순간 5, 여유로운 순간 5 정도로 구성되었다. 

여행지에 더 오래 머물고 싶다거나 그렇지도 않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와서 좋다. 그래도 중간에 옮긴 숙소에 잘못 내려 울다 먹은 국밥이나, 대체로 집중되지 않았지만 어떤 카페에서는 당장 나에게 필요한 문장을 발견해 열심히 받아 적은 순간이나, 우연히 들어간 집에서 경험한 위대하고 특별한 맛, 뭐 그런 기억을 품고 안전히 돌아와서 다행이라고 생각 중이다. 


어떤 고난, 어떤 무능, 어떤 슬픔, 사실은 그걸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지도 모른다는 걸 이번에 제대로 배웠다. 

그래서 기쁘고 산뜻한 음으로 내내 즐거운 여행은 아니었으나 다음을 기약하게 된다.


가진 거 없고, 아는 것 하나 없기에 보이고 경험하는 모든 게 내 전부가 되는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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