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8일 밤이었다. 119 현장자문단 하반기 전체회의가 끝난 뒤, 뒤풀이 장소에서는 소방 조직에 대한 이야기가 허심탄회하게 쏟아져 나왔다. 얼마쯤 지났을까? 옆 테이블에서는 현장지휘관에 대한 대화가 시끌벅적 오가고 있었다.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 소방위잖아요. 초급 현장지휘관 교육 꼭 받으세요.”
“교육 신청 계속했는데…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어요.”
“맞아요. 인기가 많아서 엄청 밀려 있다고 하던데요.”
경상도와 충청도 억양이 뒤섞인 그곳을 향해 내 귀는 쫑긋. 어느덧 시선도 그쪽을 향해가고 있었다.
“말씀 중에 죄송한데, 제가 광주소방학교에서 ICTC 교관이었습니다”
“아이고, 반갑습니다. 제가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았네요.”
“별말씀을요. 저도 관심 사항이라 깜빡이도 안 켜고 끼어들었습니다.”
“제가 이제 퇴직도 얼마 안 남았는데, 후배들에게 꼭 받아야 할 교육이 있다면 현장지휘관 교육이라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정말 좋았습니다.”
일면식도 없던 누군가로부터 내가 했던 지난 일에 대한 칭찬을 받는 일. 감동이란 표현으로도 부족했다.
때는 바야흐로 2022년, 이제 곧 광주소방학교에 지휘역량강화센터가 구축된다며 TF팀으로 함께 근무하자는 연락을 받았을 때, ‘지휘역량’, ‘현장지휘관’ 이 모든 단어는 내겐 생경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도 2년 전, 나와 같을 수도 있다.
“주임님! 지휘역량강화센터가 대체 뭐 하는 곳인지나 알려주세요.”
“쉽게 설명할게. 명량대첩 알지? 13척의 배로 수많은 왜군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 같은 유능한 소방 지휘관을 만드는 거야.”
통화가 끝나고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오고 갔다. 화재 등 각종 재난현장에서도 대응조직을 이끄는 소방 지휘관의 능력에 따라 피해 규모는 달라지고 있지 않은가. 그만큼 지휘관의 역할과 판단이 중요하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3개월 만에 풀었던 짐을 다시 챙겨 소방학교로 향했다.
“이제는 경험이 많다고 또 계급이 높다고 명령만 내리는 지휘의 시대는 지났습니다. 앞으로는 ‘현장지휘관 자격인증제’ 제도를 통해 지휘관 자격을 인증받은 소방관만이 현장지휘관으로 임용될 것입니다.
지휘역량강화센터 구축을 위한 TF팀에서 근무하면서 소방청과 타 시․도 소방학교 교관을 만나면서 들었던 이야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이다. 그동안 소방에서는 특별한 기준 없이 현장 경험이 많은 간부급 소방관 위주로 재난 현장을 지휘해 온 게 현실 아니었던가. 그렇다고 지금껏 열심히 해 온 소방 지휘관의 자질이나 역량이 미흡하다는 건 아니다. 다만, 앞서 특별한 기준이 없었던 소방 지휘에 대한 문제점을 정리하고 개선 보완해야 더 나은 지휘관이 탄생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정말 소방지휘의 변화가 생길까요?”
“이미 경기도는 지휘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습니다. 광주도 분명 바뀔 겁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은 구름처럼 어쩌면 손에 잡히지 않을 성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을 때쯤, 광주보다 2년 앞서 시작했던 경기도의 교관의 말은 가숨을 시원하게 긁는듯한 짜릿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이제 내 주변에서도 변화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아직 소방관에게조차 낯설 수 있는 자격인증제 시행이 소방지휘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세상에 쉬운 변화는 없다. 전단지 뿌리듯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알린다고 변화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분명한 건 국민안전이라는 핵심가치 실현을 위해 소방지휘에도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 새로운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고 곳곳에서 우린 체감하고 느끼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