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촌일기]
내곡리 밭 귀퉁이에 열 평 정도 땅을 얻었다.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팔순을 넘긴 아버지는 여전히 농사에 진심이다. 아버지가 밭에서 원하는 건 오직 농사뿐. 밭에 손바닥만큼만 자리가 나면 콩이든 깨든, 호박이든 오이든 심고 본다.
반면에 내가 밭에서 하고 싶은 건 꽃도 심고 나무도 키우고 캠핑도 하는 전원생활이다. 육 남매 모두 같은 생각이지만 아버지 고집은 요지부동이었다.
수년간 아버지를 조른 끝에 겨우 얻은 공간이 밭 입구 자갈밭이다. 봄에는 트랙터와 퇴비 실은 트럭이 드나드는 출입로이다. 어차피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공간이기에 아버지는 인심 쓰듯 넘겨주었다.
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지자 곧 마당 만들기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우선 막대기를 꽂아 마당의 경계를 짓고 주변에서 큰 돌을 옮겨 축대를 쌓았다.
큰 돌 한두 개를 쌓아 경계를 짓고 밭에서 흙과 잔돌을 골라 안쪽을 채웠다. 다시 큰 돌을 옮겨 축대를 쌓고 또 안쪽을 채웠다. 그렇게 일 미터 넘게 축대를 쌓았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외발수레로 위태롭게 중심을 잡아가며 돌과 흙을 옮기다 보면 온몸이 땀에 젖었고 겨울에는 몸에서 하얀 김이 솟아올랐다.
하지만 전혀 힘들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농사가 놀이이듯 나에게는 마당 만들기가 놀이였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주말에만 밭에 가니 작업은 더뎠다.
사람 쓰고 중장비 부르면 하루면 끝날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 힘으로 직접 하고 싶었고 급한일도 아니었다. 인내심을 가지고 조금씩 하면 되는 일이었다. 오래 걸려도 나 혼자서 해내고 싶었다.
돌을 옮겨 쌓고 흙을 채우는 단순한 노동이었지만 쌓을수록, 채울수록 머리는 맑아졌다. 밭에 가면 밥 먹는 것도 잊고 마당 만들기에 열중했다. 일 년 반이 지나 드디어 마당을 완성했다.
깨끗한 흙마당이 한없이 부드럽다. 매일 비질하는 사찰의 마당처럼 정결하다. 내내 작업을 지켜보던 아버지도 마음에 들어 하였다. 아버지는 손녀를 위해 소나무 휘어진 가지에 그네를 매달아 주었다.
키 큰 벚나무 아래 해먹을 걸었다. 봄바람이 불면 마당 위로 꽃비가 내린다. 꽃비를 맞으며 딸아이 그네를 타고, 나는 해먹에 누워 하늘을 본다.(17.7.14, 25.11.30)
내곡리마당@소똥구리(2018.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