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촌일기]
합격률 4%.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 중에 하나가 바티칸 변호사이다. 가톨릭 2천 년 역사상 오직 930명 밖에 통과하지 못했다. 바티칸 변호사가 되려면 법을 라틴어로 공부해야 한다.
법률도 어려운데 라틴어까지 통달해야 한다. 그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한국인이 있다. 아시아 최초이고 유일한 그는 바로 <라틴어 수업>의 저자인 한동일 신부님이다.
이런 류의 천재 스토리는 적지 않다. 내 관심을 끈 건 신부님의 화려한 이력이 아니었다. 그의 어머니 이야기였다.
신부님은 청소년 시절 연립주택 옥탑방에 살았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는 술에 취한 날이 많았고 살림은 돌보지 못했다. 어머니가 경동시장에서 도라지를 팔아 살림을 꾸렸다.
경동시장에는 도라지 골목이 있다. 도라지 도매상 사이에 빨란 다라이를 놓고 도라지를 까서 파는 노점상들이 줄지어 있다.
노점의 삶은 고달프다. 저녁에 나가서 밤새 장사를 한다. 밤을 꼬박 새우고 집에 들어가 낮에 잠깐 잠을 자고 밤에 다시 시장에 나간다. 겨울에는 춥고 여름이면 덥다. 추석에도 설날에도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고 시장 골목을 지켜야 한다.
내 부모님 또한 그러했다. 86년 서울로 이사했다. 평생 농사만 짓던 부모님이 서울에서 할 일은 마땅치 않았다. 다행히 고향 친구가 경동시장에서 제법 큰 도라지 도매상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 인연으로 빨간 다라이 두 개를 놓고 도라지 장사를 시작했다.
신부님의 어머니처럼 우리 부모님도 고생하고 애썼다. 살기 위해, 자식들 키우기 위해, 온갖 고생을 무릅썼다. 그때 부모님 모두 사십 대, 너무나 젊은 나이였다. 모든 것을 희생하고 살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나이였다.
신부님의 어머니와 나의 부모님은 80년대 도라지 골목이라는 같은 공간 같은 시기에 있었다. 그는 열심히 공부해 신부님이 되었고 마침내 바티칸 변호사가 되었다. 나는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다. 불쌍한 부모님 생각해서 열심히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제와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힘든 세월 이겨낸 부모님께 죄송할 뿐이다.
도라지 골목에서의 시간은 오래전 끝이 났다. 지금은 추억이 되고 그리움이 되었다. 부모님은 내곡리에 작은 밭을 마련하고 도라지를 심었다.(17.9.4, 25.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