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성대 박사과정 학생들을 만났다. 눈길을 끈 것은 그들의 가방이었다. 그들의 가방은 그리 무거워 보이지 않았다. 수업과 논문 자료는 모두 태블릿이나 노트북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오직 내 친구인 늦깎이 학생만이 종이 뭉치를 가방 가득 채우고 있었다. 친구의 두툼한 수업자료를 보니 ‘보따리장수’ 시절이 떠올랐다.
복학 후 만난 시간강사 두 분이 기억에 남아 있다. 트렌치코트가 잘 어울렸던 한국사 강사님은 천천히 말하고 조용히 걸었다. 젊은 전공수업 강사님은 트렌디하고 세련되었다.
강사는 학생과 교수 사이에 있다. 아직 박사과정이니 학생이고 강단에서 강의를 하니 교수이기도 하다. 해당 분야 선배로서 학계나 업계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해주니 학생들 입장에서는 대단해 보이고 멋있어 보인다.
그런 분들이 수업 중에 스스로를 ‘보따리장수’라 신세한탄을 하니 그저 농담인 줄 알았다.
풀타임 박사과정 이 년째 되던 해 한 대학의 강의를 맡았다. 처음의 설렘과 의욕은 논문과 연구과제 그리고 수업 준비에 밀려 이내 사라졌다.
논문 작성에는 참고문헌이 필요한데 그 양이 만만치 않았다. 전화번호부 두께의 바인더 서너 권 분량이었다. 너무 두껍고 무거워서 마트 장바구니에 넣어 차에 싣고 다녔다. 마트 장바구니는 튼튼하고 편리했다.
강사 대기실이든 연구실이든 도서관이든 시간이 나면 장바구니에서 바인더를 꺼내어 논문을 썼다.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바인더를 덮어 장바구니에 넣고 어딘가로 떠나야 했다.
그때 깨달았다. 예전 강사님 말씀이 비유가 아닌 현실이었음을.
그럼에도 그때 논문 더미가 무거운 것은 아니었다. 무거운 것은 졸업 논문과 졸업 후의 진로였다. 이미 아이 둘의 가장이었으니 삶의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지나고 보니 젊은 시절 수고하고 고민하던 그때 내 모습이 그립고 대견하다.
어찌 실수와 무리가 없었겠는가.
가끔씩 가슴 한편 저릿한 후회도 있지만 큰 미련은 없는 무게였다. (17.4.4, 25.8.24)
사진_명동성당ⓒ소똥구리(25.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