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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더 귀엽다"

정발산에서 만난 인연

by 소똥구리

작가 김훈은 "제일 좋은 산은 가까이 있어서 매일 그 속에 잠길 수 있는 산"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분에게 제일 좋은 산은 정발산이라고.


주말이면 정발산에 간다. 날씨만 궂지 않으면 토요일 일요일 두 번도 간다. 정발산공원에 주차하고 산허리를 따라 왼쪽으로 돌면 작은 생태공원이 나온다.


생태공원 가에는 커다란 벚나무가 몇 그루 있다. 나이가 많은, 아름드리 벚나무는, 키도 커서 봄이면 높은 곳에서 꽃비를 뿌려준다. 응달이라 봄 늦게까지 벚꽃을 볼 수 있다.


조롱박이 주렁주렁 매달린 넝쿨터널을 지나면 마두도서관이다. 마두도서관 옆에는 바오밥나무를 닮은 벚나무가 서 있다. 고르고 낮게 가지를 펼치고 있는 모습이 왠지 어린왕자에 나오는 바오밥나무 같다. 양지바른 곳이라 화려하고 풍성한 벚꽃의 절정을 느낄 수 있다.

마두도서관에서 평심루까지는 절반 이상이 아스팔트 포장길이다. 평평한 아스팔트 위로 걷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부분 포장도로를 버리고 상수리나무 아래 숲길을 걷는다. 여름에는 그늘이 져서 좋고 가을에는 숲내음이 좋은 것이다.

포장도로 끝에서 자연석 돌길을 따라 몇 걸음 옮기면 평심루가 있다. 평심루 평상에 앉아 물 한 모금 마시고 멀리 경치를 바라본다. 동쪽에는 하얀 바위를 품은 북한산이 높고 길게 솟아 있고 서쪽으로는 야트막한 심학산이 누워있다.


이제 내려가는 길이다. 정발산역 지나면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다. 딸은 플레인 요거트를 좋아한다. 아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마냥 기분이 좋아진다. 요거트를 다 먹었으니 이제 아람누리를 끼고 사재정으로 향한다.

아람누리 옆길은 정발산에서 단연 제일 사랑스럽고 예쁜 길이다. 한 길 정도 너비의 흙길이고 양 옆에는 곧게 뻗은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숲이 짙어 공기가 초록색으로 보인다. 이곳에 들어서면 온몸에 숲냄새가 배이고 녹음으로 물든다. 이런 길이라면 언제까지라도 걷고 싶다.

중간중간 강아지와 걷고 있는 사람들도 만난다. 딸은 강아지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달려가 “구경 좀 해도 돼요?” 묻고는 허락되면 강아지를 쓰다듬고 어루만지며 좋아 어쩔 줄 모른다. 그러면서 “아이, 귀여워”를 연발한다.


한 부부는 그 모습을 보고는 “네가 더 귀엽다” 하셨다.


순간 가슴이 뭉클하다. 내 아이 귀엽다 해서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람보다 개가 더 귀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네가 더 귀엽다’라고 말해 줄 수 있는 넓고 깊은 마음이 정발산만큼이나 맑고 깊었다. (17.7.6, 25.9.20)



ps. 언젠가 정발산에서 김훈 작가를 본 적이 있다. 지나치고 보니 김훈 작가 같아서 돌아보니 그분이었다. 산책길이라 노트도 펜도 없어 아쉬웠다. 나중에 보니 일산에 작업실이 있어 호수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정발산을 산책한다 하였다.





정발산숲길ⓒ소똥구리(2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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