휑한 옥상 보도블록 위에 공기만큼 가벼운 작은 씨앗이 날아왔겠지. 바람에 날려 운 좋게 작은 틈 사이에 굴러 떨어지는 행운을 얻은 거야.
씨앗은 그곳이 좁은지 넓은지 깊은지 얕은지 알 수 없었고 알아도 별 수가 없었어. 씨앗은 자기가 뿌리내릴 땅을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잖아? 바람에 날려 그저 어느 곳에 닿는 거지. 그게 다야.
이 작은 풍년초 씨앗도 좁디좁은 보도블록 틈 사이에 뿌리를 내렸어. 다행히 옆에 아무런 경쟁자가 없어 홀로 쑥쑥 자랐어. 바로 옆에 벽이 있어 바람에도 꺾이지 않았어.
시련이 찾아왔어.
머리 위에 벽이 있는 거야. 그대로 위쪽으로 자랄 수가 없는 상황인 거야. 위가 막히자 풍년초는 수직 대신 수평을 선택했어.
큰 고민 없이 망설임 없이 위쪽과 오른쪽이 막혔으니 왼쪽으로 방향을 잡았어. 길쭉한 수직 줄기에 더하여 반 뼘쯤 수평으로 자라니 기억자 모양이 된 거야.
풍년초는 눈이 없지만 계속해서 하늘을 더듬었어. 수직으로 하늘 향해 자라는 게 본능이고 원래 체질이거든.
다행히 왼쪽으로 5센티미터쯤 자라도록 견뎌내니 하늘이 열렸어. 풍년초는 다시 하늘을 향해 쭉쭉 자라게 된 거야. 이렇게 다시 수직으로 키가 크니 이번에는 니은자가 만들어졌어.
너무 많은 생각, 너무 앞선 걱정을 하는 걸까? 목표를 향하되 막혀 있으면 돌아서 가야지. 그 지향점만 잊지 않으면 돼.
언젠가 다시 길이 열리면 하늘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말이야. (17.7.7, 25.9.28)
하늘ⓒ소똥구리(25.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