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출세
A는 취직 14일 차, 상경 15일 차의 직장인이다. 매일 점심시간은 선임 B와 산책으로 시간을 보낸다. 직장 여기저기 아는 사람이 많은 B는 함께 걷다가도 A를 우두커니 세워두고 다른 사람에게 가 말을 건다. 대화 상대가 A의 눈치를 보며 신입을 저렇게 두고 우리끼리 떠들어도 되냐고 묻지만 B는 확신에 찬 태도로 대답한다.
「쟤는 원래 말이 없어.」
이 말을 신호로 대화는 다시 이어지고, 아직 빠져나갈 이유도 없는 A는 화단의 풀을 관찰하며 상상의 나라에 가잠시 대기한다. 35분의 긴 산책 끝에 A에게도 발언권이 돌아온다.
「자기 주말엔 뭐 해?」
「아 저 내일은 홍대에 팬케익 먹으러 가려구요.」
건물로 들어서며 B가 말한다.
「자기 출세했네~ 촌에서 올라와서. 홍대 가서. 브런치를 다 먹고~」
2. 결혼식
A의 대학 동기 결혼식 날이다. A는 오랜만에 만나는 S부터 찾는다. 태어날 때부터 대학 졸업까지 이 도시에 살았던 S는 돌연 D군에 직장을 얻었다. 결혼하는 신부에게 환호를 보내고 지루한 주례 시간에는 서로를 꼬집기도 하며 학창시절로 돌아간 기분을 즐긴다. 뷔페에서부터 커피 한 잔까지 자리를 옮기면서도 대화는 끊김 없이 이어진다.
「너 근데 평생 D군에 살 수 있겠어?」
「응. 난 여기 살 때 보다 훨씬 좋아.
가끔 예전 동네 가면 너무 번화해서 피곤하다.」
3. 무궁화
A의 아버지는 U군 S리 출신의 시골남자이다. 초등학교 때 한 시간 씩 산을 넘어 학교를 다녔다는 이야기는 그의 단골 소재다. 미군 부대가 던져주는 가루를 뭔지도 모르고 아껴 먹다가 다 굳은 뒤에야 그게 분유였다는 걸 알게 됐다던 S리의 소년은, 차만 타면 토를 하면서도 비닐봉지를 들고 도시에 갈 기회만 노리는 청소년으로 성장했다. 반면 A의 어머니는 한 평생 이 도시-A의 고향이기도 한-에 살았다.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어쩌다 그런 시골 놈이 백화점에서 스카프를 시즌 별로 사게 됐냐며 헛웃음을 짓는 그녀였다.
11월의 어느 주말 아침, 세 식구는 늘상 그랬듯이 브런치 식사를 마치고 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무릎이 아파 잠시 앉은 벤치에서 A의 어머니가 한 나무에 관심을 가졌다. 겨울을 일찍 맞이한 산의 나무는 이미 꽃이 다 떨어져 나뭇가지와 몇 개의 이파리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저게 뭐지? 철쭉인가... 진달래인가?」
「무궁화네」
「아닐 것 같은데. 저게 무궁화라고?
네이버 사진 검색 한 번 해 봐야겠다.」
A의 어머니가 휴대폰을 찾으려 몸을 돌렸을 때 눈앞에 보였던 것은 <무궁화동산>이라는 팻말이었다.
「어머머. 무궁화 맞네? 자기 어떻게 알았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