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것들이 나를 해한다. 핸드폰 속의 릴스, 본성과 반대되는 일터, 관심 없는 가십거리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 직장 동료들. 나를 잃는 것은 너무나 쉽다. 남의 생각 속에서 시간을 보내면 된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은 의도하지 않았으나 남의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어쩌면 내가 예술을 사랑하게 된 것도 남들의 시끄러운 소음 때문이었으리라. 예술 감상은 오롯이 나의 몫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것을 느끼는지 남이 통제할 수 없다.
감독이 왜 이 대사를 여기에 넣었을까? 왜 이런 에피소드를 구상했을까? 이 에피소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런 것들을 혼자 상상해 본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한 개를 감상하면 솟아 나오는 질문은 끝이 없다. 스스로와 하는 대화라니. 즐겁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궁금해지면, 찾아보면 그만이다. 내가 원하는 만큼만 받아들일 수 있는 소음.
예술을 하는 사람은 예민할 수밖에 없다. 창작의도나 감상에 대해 생각해 보며 인간을 잘 이해하게 되니까. ‘다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할지‘에도 더 공감능력이 발달할 수밖에.
예술이 "기대 이상으로 잘 만든 것"이라고 했던가. 나는 이 정의를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색감과 음악의 조화가 아름다운 영화를 보면 언어로 가둘 수 없는 감정이 느껴진다. 자연스럽게 감독이 궁금해지고, 창작자가 궁금해진다. 호기심이라니. 아이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일 때 행복했다.
첫 글을 발행하고, 생각보다 라이크가 많이 찍혀서 포만감에 다음 글을 쓰지 못할 뻔했다. 그리고 요즘 나의 일상은 행복과 안온으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에 글을 남기기가 더 어렵다.
"사람이 노출 본능 때문에 글을 쓴다는 말은 거짓이다. 더 정확하게는 위장이다. 사람은 왜곡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 현실이 행복해 죽겠다는 사람은 한 줄의 글을 쓰고 싶은 충동도 느끼지 않는다. 오직 불행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만이 글을 쓰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그때 그는 펜을 들어 자신의 불행한 현실에 마취제를 주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렇게 글을 써야만 한다. 반드시 글쓰기를 통해 원점으로 돌아와야 한다. 언제 다시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평소에 훈련한 만큼만 위로 올라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