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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Aug 13. 2015

중정을 기록하다

한국에서 독일인 교수들에게 유럽식의 Urban Design을 배웠을 때는 잘 모르면서 '중정', '중정형 주택'을 외쳤다. 물론 지금도 그러고 있다. 독일에서 살기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Urban Design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크게 몸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은 중정형 공동주택이다.


Blockbebauung 혹은 Blockrandbebauung(Hauserblock) 방식으로 개발된 독일의 건물들은 가로를 면하면서 동시에 블록 내부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형태로 만들어진다. ㅁ자 형태로 말이다. 그래서 모델 만들기가 조금 까다롭다.  


이런 형태의 주거유형은 19세기 중후반의 베를린의 임대주택(Mietskaserne) 건설을 통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Miet은 임대라는 뜻이고, Kaserne는 군대의 병영, 막사라는 뜻으로, 그만큼 획일적이고 동시에 (건설 주체의 입장에서) 경제적으로 효율적인 건축 유형이었다. 또한 사생활이 없는 병영 막사와 같이 개인의 사생활이 잘 지켜지지 않는 형태의 주거유형을 의미하기도 했다. 


Hobrechtplan

(도면 출처: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1/1a/Boehm_Berlin_1862.jpg)

 

베를린에서 본격적인 임대주택 건설은 James Hobrecht라는 젊은 도시계획가이자 엔지니어에 의한 계획을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시작은 19세기 무렵 산업화로 인해 수많은 도시 이주민과 외국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베를린이 도시 문제와 그로 인한 주택난의 해결 그리고 도시 확장에 대한 체계적인 정비를 위해 Hobrechtsplan이 수립기에 이르는다.


Hobrechtplan(Bebauungsplan)은 지금의 파리의 모습을 거의 만들어낸 Haussmann의 파리 대개조 계획 및 건설(1853~1870)과 동시대였던 1862년에 수립된 베를린의 도시 개발 계획이다. 이 계획을 위한 사전 준비기간은 고작 3년에 불과했다고 한다.


짧은 기간 때문이었을까? Hobrecht의 B-Plan은 정확한 건축규제를 미처 담고 있지 못했다. 우리나라 건설사들이 주택지를 개발할 때 용적률을 가득 채워 아파트를 꽉꽉 채워서 건설하는 것처럼, 정해진 법만 지킨 채 지금 기준으로는 말도 안 되는 밀도로 Mietskaserne와 주택들이 건설되었다.


더 안타깝게도 그렇게 꽉꽉 건설된 고밀도 주택 안에서도, 너무나도 높았던 월세를 감당하기 위해 4~5명(1세대)을 위한 집에 심지어 20여 명(3,4세대)이 함께 살기도 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당시의 베를린은 심각한 주택난, 월세난을 겪고 있었다.


Mietskaserne로써 가장 유명한 건물은 Meyers Hof라고 불리는 임대주택군이다. 현재는 다른 주택 건물들이 들어서 있지만, 자세히 자료조사가 되어있는 지역이다. 대표적인 이미지들은 아래와 같다.  



(사진 출처:  http://www.baunetz.de/meldungen/Meldungen-Zum_Tod_von_Jonas_Geist_725701.html?bild=3)



Meyers Hof 내부 통로 사진

(사진 출처: http://betonbabe.tumblr.com/image/18325329676)

베를린을 상징하는 사진 중 가장 도시건축적으로 유명한 사진이 아닐까 생각된다. 총 7개의 중정을 위해 거쳐가는 내부 통로들. 내부통로들은 당시의 소방차가 지나갈 수 있는 수준의 아주 작은 통로였다. 그래도 그런 기본적인 것은 지켰다.)



Meyers Hof의 평면, 단면도

(도면 출처:  http://squarecloud.tumblr.com/post/28751123969/betonbabe-adolf-erich-wittig-meyers-hof)


획일적이고 단순한 형태 속에서도 분명 내부 평면은 구성원에 맞춰 어느 정도 다양하게 변하고 있다.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평면과 비교적 자유로운 평면 구성이 가능한 Berliner Altbauwohnung은 현재 다양한 인원과 용도에 맞춰 내부 평면이 변경되고 있다.



윗 사진은 약 12m의 폭의 중정이다. 그 당시 지어진 중정형 주택들은 보통 6~10m 내외의 폭을 지닌 빽빽한 중정을 지닌 주택들이었다. 즉, 엎드리면 코 닿을만한 거리에 건너집의 창문이, 옆집의 창문이, 윗집의 창문이 혹은 건물 내부의 창고 등이 있었던 것이다.



윗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1층에서는 창문만 열면 거리를 돌아다니는 누구나 남의 집을 볼 수 있을 만큼 가로에 바로 접해서 지어져 있다. 그래서 1층을 아예 지면에서 2m 이상 높여서 짓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반지하 공간은 Keller(지하창고)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렇게 지어지지 않은 경우에는 1층에 사는 사람들은 창문을 두꺼운 커튼, 방화셔터(는 아니고 이와 유사한)와 같은 것을 통해 사생활과 안전을 보호하곤 한다.


보통 이렇게 거리에 면하게 건물이 지어져서 형성되는 공간을 Street wall(거리 벽)이라고 부른다. 공공 장소(거리 혹은 광장)를 면한 거리 쪽과 반대로 반 사유 공간(Semi-private)인 중정을 향한 창문은 중정을 공유하는 이웃들만을 마주 보고 있어 별 장치 없이도 보통 안전히 지낼 수 있다. 날 좋을 때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으면, 가끔은 창문 옆쪽에 자전거 세우는 사람과 인사를 하곤 한다.

 


Schillerkiez 일대의 위성 사진 ⓒ Google Earth

불행 중 다행으로 열악한 주거환경의 Mietkaserne는 2차 세계대전 전후 복구 과정 중에 다수가 헐리게 되고 적절한 규모로 복원이 되었다. 또한 복원하지 못한 장소에는 IBA 등의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유형의 현대 주택 건축이 들어섰다.


물론 여전히 베를린에는 적지 않은 Mietskaserne 주택들이 남아있고, 남아있지 않더라도 새로 지어진 주거양식 중 중정형 주택을 표방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지금은 예전의 주거 환경에 비해 많이 밀도가 낮아지면서 양호해졌지만, 여전히 한국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는 사생활 보호가 전혀 안되어 보이는 집들 투성이이다.



ㅁ혹은 ㄷ형태로 지어지는 중정형 공동 주택은 주소가 복잡하게 된다.  중정형 주택의 특징은 주소를 정확히 기입하지 않는다면 우체국 직원뿐만 아니라 손님에게도 굉장히 불편한 상황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보통 거리 이름과 건물 번호만 쓰면 되는 경우도 있지만, Vorderhaus, linker Seitenflugel, rechter Seitenflugel, Quergebaude, 혹은 Hinterhaus이 그리고 몇 층의 어떤 위치의 집문인지 설명하지 않으면 배달을 제대로 안 하는 경우도 많다. 초인종을 새로 설치하여 이름을 통해 집 위치가 파악이 되면 그럴 일은 없다.


만약 초인종에 저렇게 표기가 안되어 있으면, 주소를 알려주려면 "XX거리 26번지 블록 내부의 우측 주택(rechter Seitenflugel)에 있는 3번째 층의 우측 문의 집"이라고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반쪽짜리 중정

설계 스튜디오에서 베를린의 Altbauwohnung(주로 Mietskaserne를 지칭칭)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똑같은 Miete를 내면 타워형 고층 주택(Hochhaus)이나 7,80년대에 지어진 현대형 주택에 살지 아니면 Berliner Altbauwohnung에 살지에 대한 짤막한 이야기를 했다. 5명 가운데 Berliner Altbauwohnung에 살기를 원하지 않는 친구는 없었다. 그리고 그게 일반적인 생각이기도 하다.

  

Altbauwohnung라는 명칭에 따라 낡고 오래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지어진지만 오래되었을 뿐이지 실제로는 그 안에서 살고 싶은 그런 공간이었다. 물론 몇 안 되는 인원이었고, 건축을 전공하는 친구들이라 더욱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단점도 많다.


그 누군들 새로 지어진 멋진 집에서 살고 싶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주택은 공급량도 적을뿐더러, 새로 지은 만큼 기본 월세가 굉장히 높은 편이다. 그와 반대로 외형은 보통 낡았지만(월세가 저렴해지는 이유 중 하나), 내부는 다양한 변화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Altbauwohnung은 이들에게 현실과 이상의 중간 즈음에서 만족할 수 있는 최고의 공동주택인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도심부(Ring Bahn 내부)에 위치해있다.


유럽에서는 100, 200년 전에 지어지고 다시 복원된 주택들이 지금도 선호되는 주택이다. 다들 옛날 건물이라고 생각하지만, 적절한 개보수를 통한 이 건물은 사실상 현대식 건물이다. 또한 1층의 상가, 오피스는 임대인이 바뀌면서 시대에 적절한 새로운 인테리어와 거리 장식으로 유행에 걸맞은 건물로 항상 변한다. 즉, 오래된 건물이 아닌 것이다. 그냥 오래전에 지어진 훌륭한 구조를 활용하여 새 시대에 걸맞게 사는 것이고, 항상 변하는 도시에 맞춰 자연스럽게 변하는 것이다.


앞으로의 사진과 글을 통해 소개할 여러 중정의 모습은, 대부분 평범한 주택이다. 누군가의 삶이 어렴풋이 보이고, 다양한 모습과 경계가 존재하는 곳이다. 중정은 중정을 이루고 있는 공동주택에 사는 사람들만의 공유 공간이다.


쓰레기통과 크고 작은 나무들 그리고 화단과 자전거들로 채워져 있는 공간은 공적이지도 사적이지도 않은 그 중간의 (Semi-private) 공간이다. 참고로 보통 이런 중정이 있으면, 중정 청소 및 관리 명목으로 아주 약간의 돈을 세입자들에게 더 받곤 한다


누군가의 피아노 소리, 누군가의 요리 소리와 냄새, 누군가의 사적인 전화 통화 소리, 누군가의 청소 소리 그리고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공존하는 공간. 한 건물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든 소리와 공기가 공유되는 공간을 기록한다.



참조

BerlinWiki, (2015): „Hobrecht-Plan“. Abgerufen am 13. 08. 2015 von http://berlin.wikia.com/wiki/Hobrecht-Plan.

De.wikipedia.org, (2015): „Häuserblock“. Abgerufen am 13. 08. 2015 von http://de.wikipedia.org/wiki/H%C3%A4userblock.

De.wikipedia.org, (2015): „Meyers Hof“. Abgerufen am 13. 08. 2015 von http://de.wikipedia.org/wiki/Meyers_Hof.

Zawatka-Gerlach, Ulrich (2015): „Konzept für Berlin: Magistralen und Mietskasernen: 150 Jahre Bebauungsplan - Berlin - Tagesspiegel“. Tagesspiegel.de. Abgerufen am 13. 08. 2015 von http://www.tagesspiegel.de/berlin/konzept-fuer-berlin-magistralen-und-mietskasernen-150-jahre-bebauungsplan/695065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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