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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Y Jun 12. 2022

벗님내방 인생동행

삼십 년지기 친구가 호주의 오지, 캔버라를 방문했다. 마치 옆 동네 마실 가듯 ‘다음 주에 가도 돼?’ 묻고는, 서울에서 날아왔다. 오가는 날을 빼면  겨우 3일을 있겠다고 왕복 스무 시간이 넘는 비행을 마다하지 않는 우정에 감동해야 하나, 혹시 충동적으로 방문을 결정한 건 아닌지 다시 고려하라고 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었다, 아주 잠시. 


우리에게 주어진 3일을 수다와 음악, 그리고 커피와 음식으로 채우며 지냈다. 한국 관광객들은 찾지도 않는, 자극 없는 캔버라의 관광자원과 환경은 그동안 놓친 우정의 편린들을 쌓아 올릴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이었다. 식물원에서 점심을 먹고 수목원에 가서 라떼를 마시다가, 세계대회에서 일등을 한 바리스타가 있었다는 카페가 불현듯 떠올라 자리를 옮겨 에스프레소 원샷을 하고도 밤이 드리우면 서로 잘 자라는 말도 못 하고 곯아떨어졌다. 국립박물관은 마침 원주민들의 구전 설화를 담은 ‘Song lines’를 특별 전시하고 있었는데, 전시 중의 하나는 그 설화를 엮은 영상을 원형의 천장에 투사해서 보는 작품이었다. 모든 관람자는 천장을 보고 누워서 그 영상을 감상해야 했다. 우리도 사람들 틈에 누워서 보기 시작했는데, 내가 대자연 공포증이 있다는 걸 아는 친구는 새카만 하늘에 별이 뜨자마자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우리는 손을 잡은 채로, 무섭지만 아름다운 영상을 감상했다.


친구란 과거의 경험을 공유하며 추억의 집을 짓는 사람이다. 우리가 나누었던 이야기의 반은 학교 다닐 때 이야기다. 우리가 자주 산책했던 삼청동길, 그 길 초입에 있던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에서 단팥죽을 먹으며 옆 테이블에 앉은 전인권을 흘깃거리던 이야기, 건강보험공단 서류를 정리하는 일이 처음이자 마지막 아르바이트가 된 이야기, 도서실로 들어가자마자 식당으로 가서 주전부리한 다음 못다 한 이야기를 마저 하려고 교정을 거닐던 이야기. 그런 밤 유난히도 따뜻했던 가로등. 요즘은 스펙이니 점수니 목이 조여와 그러지도 못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 시절 ‘먹고 대학생’이었다. 그러나 그 먹고 대학생들이 얼마나 정치적 폭거에 좌절했는지, 얼마나 저항하는 사람들의 위선에 실망했는지, 그러고도, 닻 내릴 곳을 찾지 못하는 목선처럼 안개 낀 항구를 더듬던 청춘이라는 시간은, 그 시절을 같이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나이 든 사람들이 과거를 추억하는 일은 늘 자신들이나 재밌지, 남들은 시큰둥한 법이다. 친구가 아니면 그런 추억놀이는 택도 없는 주책이 되기 쉽다. 그래서 친구랑은 옛날 얘기를 많이 하는 모양이다. 


친구가 와서 흥분한 나머지 애들 먹을 걸 소홀히 챙기자, 친구가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만들어 먹였다. 저녁 먹으면서, “얘들아 너희 엄마가 학교 다닐 때 어땠는지 알아?” 하며 시작한 얘기는 내가 아는 내가 아니었다. 그녀의 기억 속에 대단한 내가 너무 민망해서 “그 사람 내가 아는 사람이야?”라며 눙치고 지나가려는데, 눈을 동그랗게 뜬 친구는, “너 기억 안 나? 넌 정말 최고였어. 내가 그때부터 너의 광팬이잖아”하며 자신의 멘트에 만족한 웃음을 보였다.


친구란 나의 찬란한 젊음을 나보다 더 찬란하게 기억해 주는 사람이다. 유물이 되기 직전의 졸업사진을 같이 보며 기억 저편으로 넘어간 친구들을 마구 불러내며 몇 시간을 떠들었다. 친구는 얼굴이 이뻐서 학교 다닐 때 탤런트 누구누구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바 졸업사진 속 그녀는 정말 이뻤다. 그런데 자기 사진은 건너뛰고 내 사진을 한참 보더니 아이들을 불렀다, “얘들아, 너희 엄마 자연인 되기 전 (?) 어땠는지 봐봐.” 누군가의 기억 속에 좋은 사람으로, 어여쁜 사람으로 저장되어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자주 만나지 못해 그리움으로 우정의 가는 끈을 이어간다 해도, 친구의 막무가내식 사랑은 외로울 때 꺼내 볼 수 있는 연서와 같다, 조심스럽게 열어보고 배시시 한번 웃고는 잃어버릴까 가슴에 다시 꼭꼭 여미는 그런 편지. 이민 생활이란 게, 살던 터전을 떠나 어린 날부터 묶여있던 단단한 인연을 끊고 심리적 불모의 땅에 삶을 일구는 일이라 마음이 가난해질 때가 가끔 있다 (물론 자기 고향 떠나지 않고 아는 사람에 둘러싸여 사는 사람도 외롭다. 이민 생활에서 느끼는 가난한 마음은 모든 관계 자본을 잃어버린, 조금 다른 가난한 마음이다). 그럴 때마다 위로가 될 3일간의 추억을 마음의 갈피에 접어 넣어 본다.    


친구란 먼 훗날, 낯선 곳에서 만나도 금세  손잡고 무언가를 꿈꿀 수 있는 사람이다. 둘째 날 저녁 그즈음 인기 있었던 ‘윤식당’이라는 프로를 조그만 핸드폰 스크린을 통해 함께 보았다. 스페인의 한 섬에 차린 식당이 얼마나 이쁘던지….. 별것도 아닌 한식을 먹으며 맛있다고 감탄하는 외국인을 바라보며, 스페인 대신 남프랑스는 어떨까? 엑상 프로방스 같은, 노란 담을 배경으로 일렁이는 라벤더가 있는 곳 말이야. 작은 수레에서 우리의 황금 레시피로 만든 닭날개 튀김을 팔까? 아니면 프랑스에서 새우만두가 통할까? 누가 싫어하겠어, 우리의 새우만두를. 우리 딱 한 달만 장사하고 접자. 엄청 벌 거잖아. 큰돈을 번 다음 니스의 해변에서, 아를의 카페에서 여름을 즐기는 거지. 밤이면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일상으로 즐기면서, 낮에는 작은 마을로 소풍을 다니는 거야. 바게트와 커피를 만들어 체크무늬 소풍 가방에 담아 무작정 길을 나서는 거지. 하하, 생각만으로도 행복하지? 그래, 그런데 생각만 하자. 우리 이젠 젊지 않아 힘들 거야. 여기저기 쑤시는 몸 동무해 잘 지내야 하니, 장사는 힘들 것 같다. 그런데 상상해 봐, 우리가 있어 빛날 남프랑스의 마을들 말이야. 신촌의 커피숍에서 불러들이던 세상이 호주의 카페에서 떠올리는 꿈들과 아주 다르지 않아. 우린 친구의 눈에서 서로를 발견하고 싶을 뿐이잖아. 오직 그곳에서만 발견되는 나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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