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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Jun 26. 2024

겨울보다 여름 홋카이도가 좋은 이유

나에게 삿포로는 눈의 도시다. 뮤직비디오에서 배우 이영애가 키만큼 쌓인 눈길을 걷고 전차가 탔던 곳이다. 실제로 눈 축제에 가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 지역은 겨울이 성수기다. 콕 집어 삿포로에 가고 싶었던 곳은 아니고, 휴가지로 가까운 곳을 찾다 보니 눈에 들어온 곳이 삿포로가 있는 홋카이도지역이었다. 멀미하는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이라 일단 소요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 근거리 나라 중에서 환율이 낮아서 그것도 아주 매력적인 이유였다. 아이 어렸을 때 가본 곳이라 추억여행을 겸해서 가보기로 했다. 다시 간 홋카이도는 첫인상부터 참 좋았다. 기온이 높고 습한 곳에서 3시간 이동했을 뿐인데 뽀송하고 서늘한 공기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쾌적한 기분으로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여행 정보를 찾아보니 근교로 온천여행을 많이 가던데 자유여행인 우리는 제외했다. 그곳에 가려면 렌트를 해야 했는데 운전이 우리나라와 반대 방향이라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대신 도심에 있는 료칸 느낌의 숙소에 묵었다. 호텔 간다고 하면 제일 먼저 수영장이 있냐고 묻던 아이도 수영 대신 매일 밤 대중탕에서 목욕하는 매력에 푹 빠졌다. 아이는 산리오 샵과 다이소, 백엔 샵을 매일 구경할 수 있었다. 편의점에서 종류가 다양한 간식들은 구경하고 맛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남편은 삿포로에서 인생 부타동(돼지고기덮밥)을 만났고, 힘들게 예약한 털게 정식도 아주 맛있었다. 그렇다고 이런 것들이 홋카이도에만 있는 유일한 것들인가, 하면 그렇진 않다.

 

삿포로역 스텔라플레이스에 있는데 ‘특’을 시키면 밥 반, 고기 반이다.

근교에는 전철이나 기차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오타루가 있다. 오르골이 잔뜩 있는 오르골당이 있고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유리공예 상품도 엄청나게 많다. 작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이런저런 소품들을 고르다 보면 계산대 앞에서 깜짝 놀라 골랐던 것들을 도로 가져다 두게 된다. 오타루는 바다를 접하고 있어 해산물이 신선하다. '미스터 초밥왕'이라는 만화책에도 오타루가 초밥의 본고장으로 등장한다. 또 디저트 천국에 온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디저트 가게와 종류가 많다. 홋카이도 지역은 우유가 유명해서 유제품이 특산품인데 우리가 아는 치즈케이크 가게, 르타오 본점이 오타루에 있다. 디저트 거리에 디저트 가게가 즐비해 하나씩 들러 맛보고 사다 보면 시간이 금방 흐른다. 오르골을 구경하고 디저트를 하나 먹고 사서 운하를 따라 걸으면 금방 오타루역에 가게 된다. 참기름으로 튀겼다는 닭튀김을 먹기도 하고, 해산물이 잔뜩 올라간 덮밥을 먹기도 한다.

오타루에는 스테인드글라스 박물관도 있다! 작지만 강력 추천한다.

라벤더로 유명한 비에이, 후라노도 다녀왔다. 이곳은 기차로 한 번에 가기 어려운 것 같아 버스 투어를 신청했다. 아침 일찍 삿포로역에서 만나 전세버스를 타고 정해진 코스를 도는 것인데 오랜만에 하는 패키지투어도 재미있었다. 처음에 규모가 작아서 놀랐지만 물색이 너무나 예뻐서 감탄을 자아냈던 청의 호수. 라벤더 개화 시기(보통 7월쯤)가 아니라 아쉬웠고 언젠가 갔던 우리나라 허브농원이 생각났지만, 꽃들이 많이 있어 즐거웠던 후라노. 중간에 폭포도 보고 밥도 먹었고 자작나무 숲도 들렀다. 여기저기 구경하고 다시 삿포로역으로 돌아오면 저녁이다. 시간이 정해져 있어 충분히 원하는 만큼 머물지는 못했지만, 길을 찾을 필요도 없고 버스로 이동할 때는 쉴 수 있어 편했다.

사진을 보정한 것처럼 물색이 신비로웠다.

삿포로에 오면 근교 도시 여행을 많이 가는 이유는 삿포로에 아주 특별한 관광 거리가 있지 않기 때문 같다. 겨울에 오면 우리나라에서 아무리 큰 눈이 내려도 보기 쉽지 않은 광경이 펼쳐있다고 한다. 산처럼 쌓인 눈을 치워 겨우 낸 거리를 걸을 수 있다. 한여름에는 비에이를 많이 찾는다고 한다. 사진으로만 본 끝도 없이 펼쳐진 보라색 라벤더 물결은 영화나 광고에서나 보던 놀라운 풍광이다.




삿포로의 제철인 겨울을 즐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비에이의 특산품인 라벤더를 만끽하지도 못했다. 한마디로 한 발도 명중하지 못한 셈이다. 혹자는 홋카이도를 제대로 즐겼다고 할 수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 홋카이도를 추천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날씨다. 선선한 가을 날씨라 좋았다.

여행은 새로운 경험하는 것이 우선순위라고 생각했다. 남편이 휴가라고 쓴다면 나는 경험이라고 읽었다. 그래서 휴가를 다녀왔지만, 여행 동안 여러 경험하느라 많은 에너지를 몰아 쓰고 오느라 힘들었다. 다녀와서 일상에 적응하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몰아 쓴 에너지를 평소의 상태로 원상복구 시켜야 했다. 홋카이도 여행도 휴가와 경험 사이를 왔다 갔다 했지만 여행 후에 적응하느라 걸린 시간이 예전에 비하면 많이 준 것 같이 느껴졌다. 고작 며칠이지만 더위를 피해 쉬다 와서 그런 것 아닐까. 때로는 강력한 한 방이 모든 것을 압도한다. 앞으로 여름 휴가지를 꼽으라고 하면, 홋카이도가 제일 먼저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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