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서울 크기의 약 3배라고 한다. 엄청 넓은 곳인데 비행기를 타고 간다는 생각에 한번 놀러 가면 온갖 곳에 다 들르고 싶어 욕심을 낸다. 제주도를 몇 번 횡단하고 종단한 끝에서야 제주의 넓이를 인정했다. 이번 한 번뿐인 것처럼 꽉꽉 채워 여행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내가 사는 지역의 맛집도 다 가보지 못했는데 고작 며칠 여행 가서 그 지방 맛집, 멋집을 섭렵하려 하다니 과한 욕심이다. 그러다 보니 여행에 앞서 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 이유 역시 욕심이다. 최대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추억을 만들고 싶은 욕심. 이번에는 오랜만에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여행이라 욕심도, 고민도 더 많았다.
가보고 싶은 식당 중에 항상 꼽던 곳이 있었다. 이번에 묵은 숙소에서 가까워 드디어 가보게 되었다. 사진을 보내면 이벤트를 신청해 준다기에 이전 여행에서 모두 함께 찍은 사진도 보냈다. 100% 예약제라는데 날짜에 임박해서 예약하려니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어서 도착 다음 날 이른 점심을 이곳에서 먹기로 했다. 점심 전에는 스냅사진도 찍어야 한다. 부모님과 우리는 따로 출발했는데 부모님은 늦은 시간에 도착하실 예정이라 다음 날 일찍부터 빡빡한 일정일지 걱정이 되었다. 식당도 가보고 싶고 바다에서 사진도 찍고 싶어 결국 욕심을 냈다. 출발 전날까지는 비가 오고 흐리더니 도착 날부터는 하늘이 맑게 갰다. 여행의 8할은 날씨라던데 시작이 순조로웠다. 스냅사진을 찍으러 아침 일찍 바닷가에 나갔는데 작열하는 태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을 찍기 시작한 지 10분도 안 되어 녹초가 되었다. 사진이 잘 나올 거라는 사진작가님 말에 힘내서 겨우 찍었다. 촬영 시간은 30분이었는데 가족 모두가 반쯤 더위를 먹은 채 끝이 났다. 바닷가 바로 앞에 있는 카페에서 테이크아웃해서 마신 커피는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카페에서 커피가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잠시 열을 식히고 부랴부랴 예약해 놓은 식당으로 출발했다. 나를 제하고 가족 누구도 마음 급하게 서두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기에 눈치가 보였다. 예약 시간에 간당간당하게 도착해서 식당에 들어가자 그간의 마음 졸임과 우려가 한 방에 날아갔다. 동굴처럼 느껴지는 아담한 공간에 열 명 남짓 되는 사람들이 둥글게 둘러앉아 있었고 해설하시는 분이 앞에 계셨다. 그 공간과 분위기에 마음이 편안하게 풀어지고 얼굴엔 옅게 미소가 지어졌다.
해녀의 삶을 소개하고 해녀분들이 잡은 해산물로 차린 요리를 내줬다. 눈치를 슬쩍 보니 가족 모두 감탄하고 있었다. 그저 예약한 식당에 가는 줄만 알았다가 예상치 않게 마주한 멋진 공간과 이야기에 한눈에 반한 것이 확실했다. 그제야 안도하고 그곳에 푹 빠져들었다. 음식이 나올 때마다 자세하게 설명해 주셔서 맛을 더욱 깊게 음미할 수 있었다. 바다가 입안 가득 들어와 넘실댔고 해녀의 노고가 느껴져 마음이 벅찼다. 어디에서도 맛보지 못한 그곳만의 요리였다. 모든 요리가 마음에 와닿아 한 입 먹을 때마다 없어지는 것이 아쉬웠다. 내가 원래 해산물을 이렇게 좋아했나 싶을 정도로 맛있게 먹으며 그릇을 싹싹 비워갔다.
이벤트는 모두의 사진을 보여주는 것인 줄 알았더니 신청한 사람 몇몇만 보여주는 것이었다. 갑자기 나에게 한마디 하라고 한다.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은 내가 못 하는 일 중 1번이라 당황했다. 사진 보낼 때 짧은 메시지를 보내라기에 사진과 같이 띄워주는 줄 알았다. 사진과 같이 나오면 남편에게 찍어 보내려고 했다. 여행을 준비하고 지원해 줬지만 바빠서 같이 못 왔기 때문이다. 새하얀 머릿속에서 또렷한 것은 그 메시지뿐이었다. 자리에 있지 않은 남편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같이 간 가족들이 듣기에도, 열심히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 남편이 들었어도 당황스러울 말을 뱉고는 나 역시 재차 당황했다. 그렇게 이후로 횡설수설했다. 늘 비슷하다. 당황하며 시작하고 횡설수설하고 끝난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거나 말하려는데 긴장했을 때는 '긴장된다'라고 솔직하게 말하면 오히려 긴장도가 떨어진다고 한다. 알고 있으면 뭘 하나, 긴장하고 당황하면 또 잊어버리는데. 여유롭게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하는 경험이 한 번쯤은 있었으면 좋겠다. 다행인 것은 횡설수설한 경험이 하도 많아 대수롭지 않아 넘겨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어휴, 또 횡설수설했네. 하고는 인사이드아웃 2에 나온 것처럼 저 멀리 안 보이는 구석으로 구슬을 던져버린다.
감탄하고 감동한 그곳은 마을의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만든 공간이라고 한다. 마을에 계시는 해녀분들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에게 알릴 기회를 이렇게 멋진 방식으로 풀어내다니 참으로 기특한 젊은이들이다. 상생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확실했다. 주변을 둘러볼 줄 아는 지혜와 여유를 지닌 것 같아 배우고 싶었다. 어쩌면 해녀의 삶을 보고 배운 것일 수 있겠다. 해녀들이야말로 바다와 바닷속 생물들과 함께 어우러져서 사는 것을 몸소 실천하시니 말이다.
해녀는 바다에 들어갈 수 있는 깊이에 따라 하군/중군/상군해녀로 나뉜다고 한다. 상군해녀는 15m 이상을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어떻게 그렇게 깊이까지 들어갈 수 있냐는 질문에 설명해 주시던 상군해녀가 말씀하셨다. "타고나야 하는 것 같아요. 숨의 길이도, 튼튼한 귀도. 오래 한다고 깊이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자기가 가진 것에 순응하고 그에 따라 사는 삶. 깊이 갈 수 있는 사람은 한 번에 깊은 곳에서 해산물을 채취하고, 얕은 바다에서 채취하는 해녀들은 여러 번 반복해서 바다에 들어간다. 각자 주어진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이다. 해녀들의 필수품이 멀미약이라는 말에 물질이 녹록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분들에게는 바다가 익숙한 곳인 줄 알았더니 매번 만만치 않은 일터였나 보다. 바다에서 오래 물질을 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고 했다. 바로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내 숨 깊이를 알고 숨 끝이 느껴지면 물 밖으로 나와야 하는 것. 눈앞에 대단한 것이 있어도,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딸 수 있을 것 같아도 욕심을 내는 순간 목숨이 위험해진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는데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는 지금 너무 욕심내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지 되짚어 봤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내가 가진 것보다 무리해서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숨을 더 이상 쉴 수 없어 혼절하기 전까지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착각하면서 말이다. 욕심을 버리자. 물 밖으로 나와 숨 한 번 크게 쉬고 다시 들어가는 거다.
여운이 길게 남아 그 공간에서 나가기가 싫었다. 좀 더 머무르고 싶었다. 가족 모두가 뙤약볕에서 힘들었던 오전은 맛있는 음식에 모두 잊은 듯했다. 종종거리던 일정과 여행 오기 전 피곤했던 일상은 해녀 말씀에 다 씻겨 내려간 듯했다. 다행히 이 정도 욕심은 허락되나 보다. 내가 방문한 곳은 북촌점인데 짧은 이야기를 들으며 코스로 제공되는 음식을 먹는다. 구좌에 종달점도 있다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연극을 관람하고 뷔페 형식으로 밥을 먹는다고 한다. 다음번에는 종달점도 방문해 보고 싶다. 아니, 꼭 방문해야겠다. 이토록 진한 바다향의 제주에 깊이 빠져본 것은 처음이었다.